주변 또래들을 보면 명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취업하면서 부모님이 취업선물로 명품백을 하나 사주시거나 취업 후 본인이 열심히 모은 돈으로 (혹은 할부로) 많이들 명품을 산다. 그치만 나는 그 흔한 명품 카드지갑, 하다못해 명품 립스틱 하나 없다.
사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사지 않는 쪽에 더 가깝다. 사실 돈이 있어도 자격이 안 되면 살 수 없는 에르메스 같은게 아니고서야 명품 가방 저렴한건 2~300만원대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고 카드지갑이나 스카프, 벨트 같은 잡화류는 50~60만원대 정도이기 때문에 손이 떨려서 못 살 정도의 물건들은 아니다. 그저 그 물건들이 나에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할 뿐이다.
명품이라는건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인데 요즘 명품은 예전만큼 희소성이 있지 않은 것 같다. 한창 명품 오픈런이 유행하고 리셀가가 치솟던 때, 왜 굳이 그 돈을 주고 모두가 다 갖고 다니는 가방을 가져야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장인이 한땀한땀 수작업으로 만드는 제품도 아니고 노동력이 값싼 나라에 세운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인데 로고 하나 때문에 몇배의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살 가치가 있는걸까.
한번은 친구가 프라다 가방을 가성비 있게 사는 꿀팁이라며 알려줬다. 3~40만원 정도 하는 프라다 파우치를 사서 줄을 달아 리폼을 하면 미니 호보백처럼 쓸 수 있다는거였다. 친구는 실제로 프라다 파우치를 구매해 리폼을 했고 길을 다니면서 보면 파우치를 가방으로 리폼해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꽤나 볼 수 있었다. 솔직히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은 '그렇게까지 해서 명품을 사야해?'였다. 그게 대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해서 사야하는걸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명품 가방 하나를 산다고 해서 내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만족감을 느낄 리 만무하다. 사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모든 소비가 다 그렇듯 구매하는 그 순간 잠깐은 너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물질이 주는 행복은 잠시뿐 금방 익숙해진다. 그리고 매달 나가는 카드 할부값과 줄어든 통장 잔고는 두고두고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명품을 착용하면 그에 걸맞게 다른 의류, 신발, 잡화류도 비싼걸 사고 싶어질게 뻔하다. 명품 스카프에 보풀이 잔뜩 일어난 보세 니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질 좋은 캐시미어 니트나 실크 블라우스가 더 어울린다. 질 좋은 캐시미어 니트에는 또 그에 걸맞는 겉옷과 하의, 신발도 필요하다. 데일리로 들고 다닐 검정색 명품 가방을 사면 다른 색상의 가방도 사고 싶어진다. 신상은 매 시즌 쏟아지고 내가 산 명품은 금방 철지난 제품이 되어버린다. 결국 점점 사고 싶어지는 것도 많아지고 사도사도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비싸고 귀한 것들을 착용하고 매일 아침저녁 사람들 틈바구니에 꾸겨지는 지옥철을 타서 어떻게든 가방을 사수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내 한두달치 월급에 맞먹는 가방이 사람들 틈에서 구겨지든 말든 때가 타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깜냥이 못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신줏단지 모시듯 옷장에 고이 보관해놓고 중요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손에 꼽게 착용하는 것도 싫다. 비싼 돈 주고 샀으면 뽕을 뽑아야한다는게 내 신조다.
명품 가격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사놓는거 자체로 재테크라고도 하는데 그 또한 공감하기 어렵다. 500만원 하던 가방이 700만원이 되면 200만원을 번 셈이라는데 애초에 그 가방을 안 사면 500만원이 세이브다. 리셀을 한다 해도 오래 전에 사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가방을 제 값 주고 팔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명품은 나에게 값에 비례하는 큰 효용을 주지 못할 뿐더러 그 돈을 지불해야 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는 궁상맞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은 돈 없어서 못 사는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똑같이 500만원을 쓰더라도 비싼 가방 하나를 사는 것보다는 평범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나에게 효용을 주는 적당한 가격의 물건들을 여러 개 사는 것이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