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테크 Dec 28. 2022

나도 내 집이 갖고 싶어


내가 처음 부동산 시장 관심을 갖게 된 건 2020년 12월쯤이었다. 당시 나는 입사 2개월차였고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기쁨에 취해있었다. 집값이 마구 오르고 있었지만 그런건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부동산 시장에 눈을 뜨기 시작한건 남자친구가 부동산을 증여받으면서부터였다. 당시 2년 넘게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는 부모님께 노도강의 구축아파트 소형 평수를 증여받았다. 그 전부터 부모님이 증여를 해주겠다 했지만 필요없다며 거절하던 남자친구는 당시 천정부지로 올라간 집값을 보며 집이라는게 자신의 능력만으로 살 수 없는거란걸 깨닫고 냉큼 증여를 받았다. 당시 그 집에는 세입자가 살고 있었고 증여세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부담부 증여를 택했다. 그리고 그는 약 2억 8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그 집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남자친구를 통해 증여를 받는 과정에서의 갖가지 고민들과 세금 문제, 절세 방법, 대출 실행 과정 등을 보고 들었다. 그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저 집의 위치나 노도강이라는 지역의 특성, 20평도 되지 않는 작은 평수를 생각했을 때 저 집을 증여받는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저 정도 집은 남자친구가 모은 돈에 대출 끼면 충분히 사고도 남을 것 같은데, 나도 이제 돈 벌기 시작했지만 몇 년 모으면 금방 저 정도 집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남자친구가 증여를 받은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억소리 나게 집값이 올랐다. 21년 9월 꼭지 시점의 그 집은 우리가 모은 돈에 얼마 나오지도 않는 대출로는 절대로 쳐다도 볼 수 없는 집이었다. 물론 지금은 집값이 40% 가량 떨어져서 충분히 살 수 있는 집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 절망감과 현타는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서울 외곽에 별볼일 없는 구축 소형 아파트라고 무시했던 곳이었는데 그 곳 조차, 아니 전국의 웬만한 아파트는 감히 넘볼 수 조차 없었다.



회사에 가면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집 얘기만 했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1인가구든 3인가구든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이든 딩크족이든 자녀를 키우든 상관없이 모두의 관심사가 집이었다. 우리팀에 유독 집 얘기를 많이 하는 3명이 있었다. 나보다 5살이 많았던 같은 팀 선배는 결혼 전에 미리 집을 사야겠다며 경기 남부에 30년된 구축 주공 아파트를 매수했다. 같은 팀 대리님도 살고 있던 전세를 미리 처분하고 대출을 받기 위해 미뤘던 혼인신고를 하고 사내대출에 신용대출까지 끌어모아 경기 남부에 30평대 구축 집을 샀다. 같은 팀의 과장님은 빚이 무섭다며 살고 있는 전세에 계속 살겠다고 했다.



집을 사기 전 선배와 대리님은 많이 불안해보였다. 인생 첫 내집마련인데다 이미 집값도 많이 올랐고 대출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막상 집을 사고 난 이후에 그 둘은 말은 "대출 때문에 이제 퇴사도 맘대로 못해~"라고 했지만 마음은 편해 보였다. 반면 과장님은 날이 갈수록 불안해하고 힘들어했다.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에 당시 전세가격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갑자기 보증금을 몇 억이나 올려줘야 하는 상황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 알아봐도 다 똑같이 말도 안되게 가격이 올랐다. 자녀분의 학교 때문에 쉽게 이사를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과장님은 무능한 자신 때문에 딸을 고생시키는 것 같다며 매일 한숨을 쉬었다.



여태까지 서울 부모님 집에 살았기에 주거 불안을 느낀 적이 없었다. 잠시 학교 때문에 이사를 간 적은 있었지만 부모님이 계속 1주택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니지도 않았고 대학을 다니거나 회사를 다닐 때 자취방을 구해야하는 불편함도 없었다. 취업을 했어도 부모님이 생활비를 내라고 하진 않았기 때문에 매달 꼬박꼬박 주거비가 나가는 부담이 어떤건지도 모르는 온실 속 화초로 살았다. 그런 안락함에 취해있었던 나에게 남자친구가 증여받은 집, 집으로 희비가 갈린 회사 사람들, 그리고 돈이라곤 몇 푼 없는 내 현실은 나에게 '내 집'을 갖고싶다는 열망을 갖게 했다.



엄마아빠 집 말고, 남자친구 집 말고, 내 이름으로 된 내 집. 내 이름으로 된 집은 나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집주인에게 쫓겨날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집값이 미친듯이 오를 때 어디로 이사가야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는 안정된 주거를 제공하는 보금자리였다. 물론 나는 부모님과 살고 있었기에 주거가 안정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남자친구와는 결혼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독립을 할터이니 내 한 몸 뉘일 집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열망만 있을 뿐 내겐 돈이 없었다. 이제 직장 생활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은 아무리 열심히 모아봤자 수중에 있는 돈은 2~3천만원 남짓이었다. 그 돈으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강의를 듣고 임장을 다녔다.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난 집이 없지만 모은 돈은 1억원에 가까워져가고 있고 초부린이었던 때에 비하면 아는 것도 많아졌고 아는 지역도 많아졌다. 그리고 그 2년 동안 부동산시장 분위기도, 규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작년에 비해 규제가 완화되고 집값이 3~40%씩 빠진 지금은 뭐라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집을 사면 정신 나간 놈 소리를 들을게 뻔하지만, 그리고 지금 당장 집을 살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더나 기회가 오고 있고 나는 그걸 잡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도 내 집이 갖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