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결혼을 앞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집 구했어요?"이다. 아직 구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은 "신혼이니까 신축 전세 가면 딱 좋겠다"이다. 하지만 나는 신축 전세를 살 생각이 없다.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다들 의아해 한다. 신혼인데 새 집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없나? 왜 신축 전세를 놔두고 구축을 가려고 하지? 돈이 부족한가? 라는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당연히 나도 신축이 좋다. 집 구조도 구식이고 주차 지옥에 녹물, 누수를 걱정해야 하는 복도식 구축 아파트보다는 집 구조도 잘 빠지고 주차도 널널하고 커뮤니티 시설도 잘 갖추어진 신축 아파트가 당연히 훨씬 좋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입주장에 전세 물량이 일시에 많아지면서 전세 시세가 낮아지기 때문에 입주 시점에 맞춰 전세를 구한다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세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축 전세를 살 생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입주 5년차 이내인 신축 아파트의 20평대 전세 시세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마포, 흑석, 성동 등 비강남 서울 중심 지역의 신축 전세 시세는 현재 평균 7억원 수준이다. 신길동, 홍제동 등 서울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들의 전세 시세는 평균 5억원 수준이다. 5~7억이라는 돈으로 서울에서 아파트를 매수하기는 어렵지만 이 돈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 비싼 신축 전세를 본인 돈으로 사는 사람보다는 전세 대출을 받아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 내 돈 1억에 전세대출 4억을 보태 사는게 대부분이라는거다.
대출 4억을 받아서 5억짜리 신축 아파트 전세를 산다면 연이율 5%를 가정했을 때 매달 166만원의 이자만 내면 된다. 그런데 만약 대출 4억을 받아서 5억짜리 아파트를 매수하려고 한다면 서울 외곽 구축 혹은 경기도 구축으로 가야한다. 주담대는 이자만 납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원리금을 같이 갚아야 하기 때문에 원리금 균등 상환을 한다면 똑같이 금리 5%로 대출을 받아도 매달 납부하는 금액이 215만원이다. 48만원은 원금을 갚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매달 나가는 금액이 더 크다.
이렇다보니 어차피 똑같은 대출을 받는다면 주거비용은 더 적게 들면서 주거환경은 훨씬 쾌적한 신축 전세를 선택하는 것이 구축 매수보다 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내 수준은 경기도 혹은 서울외곽의 구축 3~5억대 아파트가 적정한데 무리해서 5억짜리 서울 중심부 신축 전세를 사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 차이가 있으니 같은 돈이라면 굳이 실거주 만족도가 떨어지는 집을 사는 것보단 실거주 만족도가 훨씬 높은 전세를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형편에 맞지 않는 신축 전세는 내 분수에 맞지 않게 내 눈을 높여놓는다.
전세를 살다보면 그 집은 내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그 집이 마치 내 집인마냥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소비 수준도 덩달아 높아진다. 하지만 그 집은 내 집이 아니고 내가 가진 돈으로는 절대 매수할 수 없는 곳들이다. 문제는 전세 만기가 끝났을 때다. 지금이야 전세 시세가 많이 내려갔지만 시세라는 것은 유동적이고 지금은 내려갔어도 2년 뒤인 2025년에는 다시 또 올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부동산 침체기에는 아무도 집을 사려하지 않기 때문에 전세 수요가 급증해 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시세도 상승한다.
2021년 전세 폭등을 생각해보면 쉽다. 만약 2019년에 신축 전세를 5억 주고 살다가 2021년에 시세가 갑자기 7억, 8억으로 올랐다면? 당장 2~3억의 현금을 마련할 방법도 없을 뿐더러 다른 곳들도 똑같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갖고 있는 전세 보증금 5억으로는 신축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가 없다. 결국 준신축이나 구축을 가야 하고 만약 죽어도 신축에 살아야겠다면 외곽 지역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한 번 신축에서 살면 쾌적하고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서 출퇴근이 힘든 외곽지역이나 거주 환경이 훨씬 나쁜 구축에서 살기 힘들어진다. 그렇게 신축만 고집하다보면 결국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고, 지역을 고집한다면 점점 구축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러나 저러나 거주 만족도는 점점 나빠지게 된다.
내 개인적인 가치관에서는 지금 당장의 거주 만족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분수에 맞는 선택이 더 중요하다. 신축 전세에서 달콤한 신혼 생활을 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2년의 달콤함 끝에는 갑자기 보증금을 올려줘야 하는 당혹감, 내 형편을 깨달은 후의 좌절감 같은 씁쓸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당장의 실거주 만족도는 떨어지더라도 내 분수에 맞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