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도 괜찮다는 다정한 위로
참 신기해요.
노래도, 책도, 만화도 언제 어느 때에 접하느냐에 따라 달리 와닿더라고요. 제게 선우정아 님의 노래 <도망가자>가 그랬어요. 워낙 좋아하는 가수라 신곡이 나올 때마다 꼭 챙겨 듣는데 사실 당시에는 무던했거든요. '역시 이번에도 좋은 음악을 만들었구나!' 하는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죠. 한데 사람들에게 또 스스로에게 지쳐있던 상태에서 이 노래를 들으니 그때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녀는 담담하지만 뚝심 있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힘들면 마음껏 울어도 돼. 도망가도 돼. 내가 어디든 같이 가줄게. 근데, 우리 다시 꼭 돌아오자. 알았지?"
도망가고 싶은데 너무 비겁한 건 아닐까 망설이던 제게 언제든 그래도 된다고 읊조려주어서 얼마나 고맙던지. 그리고 그날, 저는 음악 볼륨을 한껏 올린 채 속 시원하게 펑펑 울었습니다. 당신의 위로가 너무 다정해서.
하지만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기엔 '마감'이라는 중대사가 있으므로 지금은 아주 조금씩만이라도 내려놓는 연습 중이에요. 사실 저는 성격상 오롯이 쉬는 것을 잘 못해요. 쉬면 일이 없어질까 봐 너무 불안해서요. (프리랜서의 비애...) 하여 원고 마감은 먹고사니즘을 위한 디폴트라 여기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벌리는 편이에요. 최근까진 그것이 글쓰기였는데 이마저도 책을 출간하고 나니 또 불안병이 도졌어요. 그래서 사부작사부작 다른 일들을 벌려 놓았습니다. 개중에 돈이 되는 것은 없고 사실상 자기만족을 위한 것들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그림일기로 살짝콩 소개해 볼게요!)
그런데 마감과 사이드 프로젝트로 일주일을 가득 채우다 보면, 정작 '내 시간'이 없어요. 통 쉬질 못했고, 덕분에 불면증이 다시 도졌고, 사람을 못 만나니 서러웠고, 그럼에도 쳇바퀴는 계속 돌렸지요. 그리하여 현재, 올해 가장 못생긴 얼굴이 되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얼굴이 이렇게 뒤집어져본 적이 없어요... 엄마가 낯빛이 왜 이러냐고...
한데 <도망가자>를 듣고 포효하듯 운 그날 이후 저는 하루 정도는 꼭 쉬기로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자니 이마저도 너무 심심해서 유튜브를 본다거나 일상툰 소재를 정리해 놓는다거나 하고 있지만. 이 정도의 휴식은 '열심병'에 걸린 제게 일탈이니까, 괜찮겠죠?
저는 조금 더 내려놓고 싶어요.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강박을 덜어내고 싶어요.
조금 더 가볍게, 산뜻하게 살고 싶어요.
꼭, 그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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