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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Sep 15. 2022

에메랄드빛 호수를 커피에 담다 , 카페 '엔학고레'

#3대가 지켜온 내 집 같은 공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좋은 음료는 ‘좋은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남다른 ‘시그니처’라고 불리는 음료들은 만든 이의 철학과 시간과 노력이 배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시즘은 맛과 모습 속에 숨겨져있는 음료를 만든 사람의 ‘생각’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뷰가 예쁘면 맛은 포기해야 한다고? 
여기는 다릅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시그니처를 찾아서 전국을 여행하는 마시즘. 오늘 다녀온 곳이 어땠냐고? 한 마디로 ‘물아일체’였다. 산과 호수뷰를 즐기면서, 풍경을 오롯이 닮은 시그니처를 맛볼 수 있었거든.


‘도대체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고?’ 인적 드문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눈앞에 거짓말처럼 맑은 호수와 하얀 건물이 나타났다. 이때 누군가 다가와 잔을 내밀었다. “맛은 자신있어요” 그의 이름은 황상두 바리스타. 이 곳을 오랫동안 지켜온 그와 함께 시그니처 ‘엔학고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숲과 저수지가 함께하는

카페 엔학고레

만약 신이 지구에 숨겨둔 비밀공간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이 아닐까?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계룡산 자락에 위치한 곳. 

바로 카페 ‘엔학고레'다. 여기에 오면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나무들과 드넓은 저수지를 한눈에 바라보며 맛있는 ‘물멍뷰'와 음료를 한번에 맛볼 수 있다.


“<차경借景>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었어요.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이에요" 


황상두 바리스타는 자신의 카페를 ‘차경'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한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건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조성하면서, 풍경의 한 조각을 떼어온듯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수지 물 색이 에메랄드색이잖아요.

에메랄드 색을 피스타치오 크림으로 해석한거죠.”


심지어 자연에서 떼어온 풍경은 시그니처 음료에 담았다. 바로 시그니처 ‘엔학고레'다. 저수지가 에메랄드 색을 띈다는 것에서 착안해, 피스타치오를 활용해 에메랄드빛 크림 라떼를 만들었다. 덕분에 음료를 바라만 보아도 저수지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덤이다. 


원래 카페가 아니라 

고깃집이었다고? 

“그런데..

여기는 원래 고깃집이었어요.”


그렇다. 사실 엔학고레는 작년까지만 해도 다름아닌 ‘고깃집'이었다. 그의 부모님이 18년 전부터  ‘엔학고레' 간판을 내걸고 가든식당을 운영했다. 이 곳을 거쳐간 메뉴만 해도 닭백숙, 코다리찜, 삼겹살 등이다. 

(고깃집 운영 당시 모습)

특히, 고깃집은 지역을 넘어 대전, 천안에서도 찾아와서 먹을 만큼 꽤나 유명한 맛집이었다. 그런데 왜 아들은 부모님의 잘 나가는 식당을 카페로 바꾸었을까? 


“첫째는 고기 연기가 나무들한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줬어요.

둘째는 아내가 예전에 카페를 운영해본 적이 있어서, 아내 믿고 시작했죠.”


그렇게 아들은 2021년, 오래된 식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올린다. ‘차경’의 원리를 이용해 어느 자리에 앉든, 모두가 공평하게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엔학고레에서 바라본 여름과 가을)

가령 안에서도 바깥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과감한 통창을 사용하고, 2층으로 만들어 마당의 터줏대감 나무가 햇볕을 맘껏 쬘 수 있도록 직접 설계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엔학고레 시즌2, 카페 엔학고레의 탄생이다. 


에메랄드빛 저수지를 닮은

시그니처 엔학고레의 탄생

카페를 대표하는 메뉴는? 바로 엔학고레의 시그니처이자 에메랄드빛 저수지를 표현한 음료, ‘엔학고레'다.


“처음에는 저희도 생소했어요.

(그런데 맛을 보니)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피스타치오가 커피랑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거든요.”


엔학고레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피스타치오맛 크림 라떼다. 직접 여러 가지 견과류를 섞어서 만든 우유 베이스에, 꾸덕하고 고소한 수제 피스타치오 크림이 듬뿍 올라간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에스프레소 1샷을 둥글게 부어주면 완성이다. 

“젓지 말고, 잔째로 드시면 

세 가지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추천드려요.”


그는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잔을 통째로 들고 입술로 마시는 방법을 추천한다. 빨대를 사용하게 되면 아래에 깔린 우유만 잔뜩 먹게 되고, 그렇다고 저어버리면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꿀팁을 따라 나도 잔째로 들고 마셔봤다. 첫 입에는 꾸덕한 크림의 질감이 느껴지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듯 꼬소한 우유의 맛, 마지막에는 커피가 치고 올라오면서 쌉싸래하고 고소한 맛을 남겼다. 견과류 들어간 커피를 많이 마셔봤지만, 이건 하나도 텁텁하지 않은 맛이랄까? 고소함과 쌉싸름함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 타기를 하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달콤씁쓸한 맛.

시그니처는 여기에 끝나지 않았다. 봄날의 벚꽃을 표현한 ‘피치썸 에이드'와 노을 물드는 시간을 담아낸 ‘선셋 에이드'까지 맛볼 수 있었다. 피치썸 에이드에는 달달한 복숭아가, 선셋 에이드에는 진한 한라봉 퓨레가 들어가서 자연을 닮은 비주얼과 함께 달달한 맛까지 즐길 수 있었다. 만약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면, 두 시그니처 에이드를 통해서 이 곳의 풍경을 대신 맛보면 좋겠다. 


3대째 지켜가는

엔학고레라는 소중한 터전

이제 20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엔학고레. 황상두 바리스타에게 이 곳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뛰어다닌 유년의 추억이 있는 공간이자, 이제는 그의 두 자녀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는 곳이 됐다. 이 곳을 지키는 남다른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무들은 부모님이 거의 다 심으셨고, 

올해부터는 저도 한 700그루 정도 심었어요.” 


그는 부모님과 함께 오래전부터 주변에 매년 나무를 심어왔다. 긴 세월에 걸쳐 조금씩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점차 멋진 모습으로 변해가자 이제는 멈출 수 없는 연례행사가 됐다. 저수지 정중앙에 마스코트처럼 자리한 두 그루의 메타세콰이어 나무 역시 그의 어머니가 남겨둔 것이다. 나무는 물론 수질관리에도 진심이다. 1년에 서너번 씩 저수지 물을 싹 빼내고 대청소를 한다. 1급수에만 사는 민물조개, 민물새우가 서식하고 여름 밤이 되면 반딧불들이 찾아올 정도로 깨끗한 환경은 그의 또 다른 자부심이다.

“실제로 사용되는 저수지라 농번기에는 물이 좀 빠져요. 

6월에 피는 여름 꽃을 심어서 또 다른 재미를 드리고 싶어요"


요즘 그의 새로운 취미는 정원 유튜브를 챙겨보는 것이다. 카페를 안팍으로 관리하다 보니, 환경을 가꾸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어릴 때 뛰놀던 아름다운 풍경을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 멀리에서 엔학고레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도 언제 와도 기분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 진심에서다. 이쯤되니 가족이 먹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어느 요리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소중한 ‘내 집'을 지키는 마음으로 엔학고레를 수호해왔던 것이 아닐까? 


(+ 도대체 얼마나 멋진 곳일까 궁금하시다고요? 아름다운 숲 속 풍경과 에메랄드빛 호수를 닮은 시그니처, 엔학고레의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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