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로 보는 봉화 광산사고
이번 계절은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10.29 참사를 비롯한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우리는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마음에 새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의 빛은 비추기도 한다. 무너진 광산에서 221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광부들의 소식처럼 말이다.
음료미디어 마시즘, 오늘 희망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아니, 자세히 말하자면 희망을 지켜준 하나의 음료에 대한 이야기다.
10월 26일 오후 6시, 봉화광산에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지하 205미터에서 아연을 채굴하던 두 사람은 벼락이 치는 소리를 들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광산에는 900톤의 토사가 수직갱도에 쏟아져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아버렸다.
당시 현장에서 작업 중인 광부는 7명이었다. 이 중 5명은 자력으로 탈출하거나, 동료에게 구조되었다. 하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작업을 하던 2명의 무전이 끊기게 되었다. 작업반장과 신참이었다.
떨어지는 토사물과 낙석을 피해 작업반장은 신참을 데리고 갱도 안의 대피소로 향했다. 벌어진 상황에 신참은 광산만큼이나 마음이 무너져있었다. 그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지 4일이 된 신참이지만, 광산 매몰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과 2개월도 되지 않은 8월 29일에도 봉화광산이 무너졌었기 때문이다. 당시 땅 꺼짐으로 인해 일하던 광부 중 2명이 추락하였고, 1명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작업반장은 대피소 안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다른 곳으로 향하는 갱도들은 모두 막혀버렸다. 다행히 산소는 충분했지만, 벽과 천장에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칫 몸이 젖으면 체온이 떨어질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살려면 이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는 주변에 버려진 비닐과 나무 등을 모아 냉기를 차단하고 모닥불을 피워 공기를 데웠다. 베테랑 광부인 작업반장은 신참에게 말했다.
“이게 오늘 우리 저녁밥이다.”
그의 손에 든 것은 커피믹스, ‘맥심 모카 골드’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활용했다. 버려진 비닐로 텐트를 만들었고, 젖어버린 나무는 산소절단기를 통해 물기를 말리고 불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휴식시간에 마시기 위해 챙겨 온 커피믹스 30봉과 물 10리터로 식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물을 끓이기 위한 전기포트가 있었으나 매몰된 광산에 전기가 통할리는 만무했다. 전기포트에 있는 플라스틱 부분을 떼어내어 바닥에 스테인리스만 남게 하였다. 그리고 모닥불에 물을 끓여 커피믹스를 만들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따뜻하고 달콤함이 찾아왔다.
‘이 또한 금방 지나갈 것이라…’ 그들은 빨리 구조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커피믹스를 2봉을 한 번에 마셨다. 하지만 상황은 200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시추작업은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 구조 예정지점으로 생각한 곳으로 땅에 구멍을 뚫는 시추작업을 시작하였지만 대형 암석들이 많아 길을 방해했다. 1차 시추가 실패하고, 2차 시추작업이 실패했을 때는 이미 광산이 매몰된 지 6일이 지나 있었다. 광산업체가 제공한 도면 자체가 20년 전에 만들어졌기에 구조작업에 큰 문제가 있었다.
생존 신호도 진입로 확보도 어렵다는 소식은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애를 타게 만들었다. 내시경을 통해서 매몰된 갱도를 살피는 뉴스 기사가 한 커뮤니티에 공유되었다. 한 회원은 댓글에 이렇게 남겼다. “내일 아침에 커피믹스 드시면서 나타나실 거예요.”
누구도 그때는 이 댓글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갱도 내부의 길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작업반장도 결국 탈출구를 찾는 것에 실패했다. 그들이 대피한 곳은 여러 개의 통로가 모이는 인터체인지 같은 곳이었지만 찾아본 모든 길이 막혀있었다. 다만 막혀있는 벽의 뒤로 들리는 발파 소리만이 그들의 희망이 되었다. 아직 누군가 우리를 구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기에.
하지만 시간과 어둠, 그리고 추위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산소절단기의 가스가 떨어지고, 라이터의 가스도 떨어졌다. 땔감으로 사용한 나무도 몇 토막이 남지 않았다. 한 모금씩 나눠마신 커피믹스와 물도 바닥이 났기에 갱도에 흐르는 지하수를 마셔야 했다.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하지만 그도 떨어진 랜텐의 배터리처럼 희망의 빛을 잃었다.
그때 벽이 무너졌다. 아니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형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신참이 그를 향해 달려왔고 두 사람은 서로 안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삶이 열렸다.
11월 4일 오후 11시 3분경. 작업반장과 신참 보조작업자는 구조대에게 발견되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무려 221시간의 사투를 버텨냈다. 그들은 사흘 정도를 갇혀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다행히 두 사람은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올 정도로 걱정보다 상태가 양호했다. 주치의는 커피믹스를 식사대용으로 3일에 걸쳐 먹은 게 저체온증 극복에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소견을 밝혔다.
실제 커피믹스는 등산객들이 체력이 떨어졌을 때 먹기도 하고, 실제 2017년에 저혈당 증상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급하게 커피믹스를 구해와 살린 일이 있었다. 물론 커피믹스가 가지고 있는 열량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은 커피믹스를 저녁밥이라고 이야기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작업자들의 의지가 아닐까?
두 사람은 병원에서 몸이 회복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작업반장은 ‘쌀밥에 소주 한 잔’, 그리고 신참은 ‘미역국과 콜라를 마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평범해 기억할 의지가 없는 먹고, 마실 것들이 그들에게는 정말 그리운 것이 되었다.
우리에게 일상은 정말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공포이지만, 반대로 우리의 가까이에는 언제나 희망이 되는 것들 또한 함께했음을 알게 된다. 가장 가까운 순간에 여러분과 함께하는 음료, 아니 희망을 찾아보며. 차갑기보다는 따뜻한 소식이 더 들려올 겨울을 기다려본다.
※ 참고문헌
"광물더미 무너지며 매몰"...봉화 광산에서 2명 사상, 이윤재, YTN, 2022.8.29
[안동][4보]봉화 광산 갱도 붕괴로 2명 고립, 김서현, 대구MBC, 2022.10.27
[뉴스큐] '고립 46시간째' 봉화 아연광산 구조 난항...현재 상황은?, 이광연 이수곤, YTN, 2022.10.28
봉화 광산 매몰사고 5일째… “구조작업 늦어 억장 무너져”, 명민준, 동아일보,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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