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에서 떠오르는 해, 아사히 맥주의 역사
우리는 이유가 있어서 물건을 사는 것일까, 물건을 사기 위해 이유를 만드는 것일까? 둘 중에 무엇이 되었건 우리가 무엇을 사는 데에는 이유가 따라붙는다. 그것이 새로 나온 음료일 경우는 머릿속에서 커다란 재판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아사히 생맥주캔을 찾아 동네 편의점을 이 잡듯이 뒤진 날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사히 생맥주캔은 왜 산 거야?"
...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일본 맥주시장은 '카스테라 전쟁(오비맥주의 카스, 하이트진로 테라의 맥주점유율 대결)'이 일어나는 한국과 다르지 않다. 기린맥주와 아사히맥주 그리고 산토리맥주, 삿포로맥주가 시장에서 대결을 하고 있다.
아사히맥주는 1892년에야 만들어진(회사 설립은 1889년) 오랜 역사를 가진 맥주다. 하지만 언제나 기린맥주에 밀려있던 2인자였다. 아니 1980년대에 들어설 때쯤은 점유율이 10%이하로 떨어지며 삿포로에 밀려 3위를 기록하게 된다.
1985년 아사히맥주는 시장점유율 9.6%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기린맥주의 시장점유율은 61%를 기록해버렸고, 이제는 맥주시장 4위 산토리맥주의 9.2%와 깻잎차이로 다툼을 해야했다. 그 시점에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아침의 해)'라는 뜻을 가진 아사히를 언젠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유히맥주(석양맥주, 夕日ビール)"
아사히맥주의 추락은 어느정도 예견되었다. 맥주를 제조하는 기술은 덕후처럼 모아왔지만, 기술자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면서 관리와 영업에는 소홀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나 일본에는 60년대부터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맥주가 집에서도 마시는 음료가 되었지만, 여전히 식당이나 술집 위주의 판매를 진행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새로 취임한 사장(무라이 츠토무)은 패배주의에 빠진 직원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장님 아무도 우리 제품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결국 100년 가까이 된 회사는 처음으로 돌아가게 물음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맛의 맥주를 좋아할까?" 5,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아사히 맥주가 예상하지 못한 답이 나왔다. 그것은 풍미가 세고 묵직한 맛의 맥주가 아니었다.
"감칠맛이 있었으면 좋겠다, 목 넘김이 편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었다.
1987년 1월, 아사히맥주는 새로운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아사히 슈퍼드라이'의 탄생이다. 하지만 언론은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맥주의 맛이 나지 않는다"며 말이다.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맥주애호가들이 좋아할 맛의 맥주는 아니다. 보리 맥아 비율을 줄여서인지 담백한 맛도 안나고, 홉향도 안나고, 그저 청량한 탄산감과 깔끔한 끝맛뿐인 이것은 맥주인가 스파클링 보리차 싶은 그런 맛이 난다고 볼 수 있다...는 미안.
하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아사히 슈퍼드라이가 팔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사히 슈퍼드라이에서 감칠맛과 목넘김이 좋다는 점을 발견했다. 원래는 지역한정으로 판매를 하려고 했던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전국 발매를 결정하였다. 너무 많이 팔려 제품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사히는 품절사태에 대해 일간지에 사과문을 올리게 되었다.
"생산이 판매를 따라가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것이 마케팅의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다음해에는 21%의 맥주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2위 자리를 탈환하였고, 1997년에는 기어코 기린맥주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하게 된다. 뒤늦게야 다른 맥주회사들이 '드라이맥주'를 하나, 둘 내놓기 시작했지만 아사히 슈퍼드라이의 오리지널리티를 높여주는 모양이 되었다.
파산위기에 몰린 회사를 살린 제품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20년동안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술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그런 와중에 2020년 기린맥주가 20여년만에 다시 한 번 아사히맥주의 점유율을 꺾고 시장의 1위가 되었다.
기린의 전략은 '다양성'이었다. 아사히가 '슈퍼드라이'에 집중하는 동안 다양한 맥주들을 선보였다. 그 중에는 맥주가 아닌 새로운 장르가 있었다. 맥아 함량을 줄인 '발포주', 맥아를 쓰지 않고 맥주맛을 내는 '다이산', 알콜탄산수인 '츄하이'까지 손을 뻗어 성장시키던 기린이었다.
코로나19를 맞으며 영업용 맥주시장 전체가 폭락하면서, 집에서 마실 수 있는 싸고 다양한 제3맥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판매량은 떨어질지 몰라도, 다른 제품들이 버티고 있는 기린맥주는 굳건했던 것이다. 다시 위기에 빠진 아사히 맥주는 어떻게 이를 돌파할 것인가.
바로 캔맥주로 생맥주 느낌으로 만드는 '아사히 생맥주캔'을 출시한 것이다. 기린이 다양성이라면, 아사히는 끝까지 슈퍼드라이로 간다!
2021년 4월 20일, 일본에서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캔(나마죠키캔)'이 출시되었다. 캔 뚜껑을 열면 거품이 올라와서 생맥주처럼 즐길 수 있는 제품이다. 이 제품을 위해 맥주를 바꾼 것이 아니다, 캔을 바꿨다.
아사히 생맥주 캔의 내부코팅과 뚜껑을 바꿨다. 캔 내부에 까끌까끌한 코팅을 하여 캔뚜껑을 열 때 온도차와 기압차로 생기는 거품을 더욱 폭발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애초에 연구를 할 때도 캔에 넘치도록 거품이 나게 하라고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4년이 걸려 만들었는데... 코로나19가 덮치고, 사람들이 이자카야 대신 홈술을 하게 되었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집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캔맥주로 생맥주 느낌을 주는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캔은 최고의 상품이었다. 출시 이틀만에 공급이 정지되었다. 결국 아사히는 다시 사과문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급을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판매를 임시 중지합니다. 고객과 거래처에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몇 개월 뒤에 다시 판매가 정상화되고, 코로나19로 인한 홈술문화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그것이 다시 한국에 수출된 것이다.
국적을 떠나, 맛을 떠나서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린 맥주다. 어쩌면 기존의 문제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법을 던졌기에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아사히의 문제풀이 방식이 이 '아사히 생맥주캔'에 녹아 있다.
... 라고 말하며 캔맥주의 뚜껑을 딴다. 아, 물론 인스타그램 올려야해서.
참고문헌
일본 아사히맥주 슈퍼드라이 돌풍- 기린맥주 제치고 판매량 1위, 중앙일보, 1997.2.16
[화제의 책]'사장님! 아무도…'/아사히맥주의 '성공신화’, 김형찬, 동아일보, 1999.12.17
아사히 맥주가 일본 맥주 1위가 된 이유는?, 명욱, 디지털 조선일보, 2018.7.17
회사를 살린 맥주 하나, 아사히 맥주의 역사, 날마다 좋은 ㅎㅏ루, 브런치, 2018.10.28
정희선의 재팬토크 '니어 비어'(near beer) 전쟁, 정희선, Japanoll, 2019.1.19
'日 서민문화 상징' 이자카야가 사라진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정영효, 한국경제, 2020.8.10
코로나 긴급사태 日... '거품 나는 캔맥주' 없어서 못 판다, 최진주, 한국일보, 2021.4.25
아사히, 20년만에 日 맥주시장 1위 빼앗긴 이유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정영효, 한국경제, 2021.3.16
“선택-집중에만 취했다” 아사히맥주의 위기, 명욱, DBR 312호, 20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