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렇게 맥주를 잘 만들어?
만원짜리 지폐에 세종대왕이 있고 오만원짜리 지폐에 신사임당이 있다면, 우유에는 '파스퇴르'가 있다. 파스퇴르를 그냥 우유회사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면 오산. 그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을 꼽을 때 나폴레옹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인물이다.
세균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인류를 위협한 수많은 세균을 물리쳤다. 특히 '저온살균법'을 들 수 있다. 당시는 소의 젖에서 나온 우유를 마시던 시대. 소의 결핵이 우유를 통해 인간에게 대량 감염되고 있었다. 파스퇴르는 이를 막았고 수많은 인간은 목숨을 지켰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그가 이 공법으로 만드려고 했던 것은 우유가 아닌 맥주였음을...
1870년, 독일(프로이센) 비스마르크의 기갑부대가 파리를 포위했다. 독일의 화력에 두 손을 든 프랑스는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독일은 프랑스의 파스퇴르에게 의학박사 학위를 주었던 상태. 하지만 그는 학위를 반납하며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고 말한다.
애국심 가득한 파스퇴르의 좌절감은 엄청났다. 그는 프랑스를 쳐들어온 독일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복수의 칼날은 맥주를 향했다. 그는 독일을 맥덕국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기로 결심한다. 그는 최고의 맥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물론 파스퇴르가 평소에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게 큰 함정이지만.
파스퇴르는 자신만만했다. 이미 과거에 '효모'를 발견해 프랑스 와인 품질을 향상시킨 적이 있다. 하지만 맥주는 제조방법과 보관방법이 달랐다. 그는 프랑스 최고 맥주 양조장을 찾는다.
양조자들이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충격과 공포였다. 맛이 형편없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만드는 과정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다. 이미 사용한 맥아즙을 새것과 대충 섞어서 발효하는 꼴이란... 하지만 이것이 다수의 양조장이 쓰는 방식이었다. 그렇다. 맥주는 손맛이었다.
프랑스 양조장에서 소득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파스퇴르는 맥주의 맛을 상하게 하는 세균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들을 쓸어 '무균맥주'를 만들어낸다. 안타까운 점은 세균과 함께 맥주의 맛과 향이 사라져서 보리차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맥주가 발달한 나라로 떠나기로 한다. 물론 독일이 최고의 선택지지만 그의 애국심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파스퇴르가 독일 대신 선택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그는 영국 런던의 위트브레드(Whitbread) 양조장에서 맥주연구를 시작한다.
문제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영국은 에일맥주를 만드는 곳이다. 평생 카스만 마시던 사람이 기네스를 처음 마신 격이랄까? 파스퇴르는 흑맥주의 효모종자균을 보고 '만족스럽지 않다'라고 말했다. 맥알못이라고 쫓겨나지 않은 게 다행. 하지만 위트브레드와 파스퇴르는 오랫동안 맥주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다.
위트브레드에서 경험은 파스퇴르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면발효의 라거는 물론, 상면발효의 에일까지 그가 다룰 수 있는 맥주 종류가 늘었다. 또한 맥주의 특성을 버리지 않고도 세균을 죽이는 최적의 살균 온도가 50-55도라는 것을 알아냈다.
1876년 파스퇴르는 자신의 맥주 양조이론과 실제 실험을 바탕으로 '맥주에 관한 연구(Études sur la Bière)'라는 책을 낸다. 맥주의 효모를 관찰하는 방법부터 세균으로부터 맥주를 보호하는 방법까지 파스퇴르의 맥주에 대한 땀과 노력이 들어있다. 이 책은 훗날 유럽 맥주 양조자들의 경전이 된다.
하지만 훗날의 이야기다. 파스퇴르의 맥주는 세균에 의한 변질을 막는 완벽한 맥주였다. 그렇게 어중간한 프랑스 맥주는 맛이 더 나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을 뿐이다. 맥주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파스퇴르를 보면 친구들은 이렇게 응수했다. "미생물 이야기는 괜찮은 맥주를 만든 다음에나 하시지!"
파스퇴르의 맥주 실험은 많은 양조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파스퇴르와 함께 연구했던 영국 위트브레드 양조장과 덴마크 칼스버그 양조장은 그의 이론을 적극 활용하여 품질개선을 이룬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만나는 칼스버그 캔맥주를 비롯한 세계맥주 시리즈는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 없이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완벽한 복수는 실패했지만, 파스퇴르는 독일맥주에도 한 방 먹였다. 물과 보리, 홉으로만 맥주를 만들라는 독일의 절대법칙(?) '맥주순수령'에 파스퇴르가 발견한 '효모'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감에만 의존했던 맥주양조자들은 파스퇴르의 가르침을 따라 효모를 따로 배양하여 맥주를 만들었다.
한 모금의 맥주에도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간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기억하는 것은 맥주의 맛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파스퇴르는 사람의 생명도 구했지만, 맥주의 맛도 구한 은인이다. 맥알못이면 어떠랴. 그 덕분에 맥주적으로 발전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을. 오늘은 그를 위해 건배를 올린다.
참고문헌
그때 맥주가 있었다 / 미카 리싸넨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실험 100 / 존그리빈
맥주 상식사전 / 멜리사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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