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맥주와 동의어다
안 돼! 그것은 함부로 마시는 맥주가 아냐!
맥주에 있어서는 기부천사 부럽지 않은 나도 혼자만 즐기고 싶은 맥주가 있다. 이는 산타클로스나 빌 게이츠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한. 정. 판. 그것도 야구와 관련된 음료는 나에게는 유형 문화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유일한 취미 ‘야구’ 관람을 위해 만들어진 맥주다.
친구는 묻는다. 야구랑 맥주가 무슨 상관이냐고. 뭘 모르는 소리, 야구와 맥주는 동의어다. 무려 1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게임을 함께 한 동료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야구를 보기 위해 맥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기 위해 야구를 보는 것이다. 나는 말한다. “야구와 맥주에는 말이야. 전설… 아니 레전드가 숨어있어.”
1882년, 독일 출신의 사업가 크리스 폰 데아 아에(Chris Von Der Ahe)는 세인트루이스의 망한 야구팀을 구입한다. 그 팀의 이름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 스타킹스'. 이 팀은 나중에 오승환 선수가 마무리를 하기도 했던 월드시리즈 11회 우승의 앵그리버드 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된다.
물론 크리스가 그런 미래를 보고 팀을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야알못... 아니 크리스가 야구팀을 구입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야구장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맥주를 팔아보려고.
그렇다. 독일 출신의 크리스는 야알못이었지만, 맥알못은 아니었다. 그는 신생구단의 야구경기 입장권을 반으로 낮췄다. 그리고 야구장 내에 여러 놀이거리와 맥주를 팔았다. 현대의 야구장과 유사한 형태라고 할까? 야구장에서 맥주를 파니 안주가 필요했다. 1906년 핫도그가 들어오며 야구, 맥주, 핫도그의 환상 조합이 시작되었다.
미국 야구, 즉 메이저리그는 야구와 맥주의 물아일체 경지를 보는 듯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뉴욕 양키스는 맥주 쟁이의 힘으로 도약한 야구 구단이며 밀워키 브루어스는 팀이름부터 맥주네다. 관객들은 쿠어스 필드, 밀러 파크, 부시 스타디움 등 맥주회사의 이름을 딴 야구경기장에 들어간다.
야구선수들이 공을 던지고 쳐낼 때, 관객들은 맥주를 마신다. 경기 중에 마시는 맥주도 맛있지만, 승리 후에 들이켜는 맥주는 에어컨 아래 자리보다 시원하다. 문제는 응원하는 팀이 승리를 해야 한다는 것. 1984년, 한 야구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행이 좌절되자 마시려던 맥주캔을 냉장고에 넣었다. 훗날 시카고 컵스가 우승하는 날 축배를 들기 위해서다. 그렇게 32년이 지났다.
2016년, 시카고 컵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최종 7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드디어 시카고 컵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백발의 노인이 된 그는 32년 묵은 맥주캔을 땄다. 물론 마실 수는 없었다. 그는 시카고 컵스 기념컵에 맥주를 부으며 기쁨의 인증샷을 올렸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마실 맥주를 우승 후로 미루지 말라'는 것. 안타깝게도 한국의 LG 트윈스는 1994년 우승주를 미리 담가놓고 마시지 못하고 있다.
야구선수들도 맥주를 좋아한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Babe Ruth)는 모닝맥주 2병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다승왕으로 유명한 피트 알렉산더(Pete Alexander)는 술이 안 깬 상태(앞서 2번이나 완투승을 해서 회식을 크게 함)에서 마운드에 들어서기도 했다. 무려 월드시리즈 만루 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한점도 내주지 않고 경기를 막아낸다. 본격 야구계의 취권. 야구만 잘한다면야 아무도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달랐다. 시즌초만 해도 월드시리즈 우승도 보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시즌이 끝나가는 9월 내리막을 걷고 가을야구 진출까지 실패한다. 한국의 야구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DTD라고 부른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own Team is Down).
문제는 경기 도중에 팀의 선발투수인 존 레스터(Jon Lester)와 동료들이 클럽하우스 내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셨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된 것이다. 팬들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존 레스터는 '야구선수들도 때때로 맥주 1캔을 마신다'며 그것을 '9이닝 반격의 맥주'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치킨은 있었지만 반격은 없었다.
결국 치맥으로 피어난 팬들의 분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리 프랑코나(Terry Francona) 감독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3년 프랑코나는 클리브랜드 인디언스의 감독을 맡아 팀을 가을야구에 진출시킨다. 기자들은 클리브랜드 인디언스의 가을야구 진출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말한다. "클리브랜드 선수들은 치맥을 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맥주는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맥주를 온몸에 뿌린다. 미식축구 선수들이 승리 후에 게토레이를 머리에 붓는 '게토레이샤워'를 한다면, 메이저리거들은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그 날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맥주샤워'를 해준다.
그렇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야구선수 기사에 맥주가 붙는다면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승환 선수가 첫승을 이뤘을 때 '미국 맥주'를 온몸에 맞았다. 이대호 선수의 경우는 연장 끝내기 홈런을 날린 후에 맥주 샤워를 받았다. 황재균 선수 역시 데뷔 첫 홈런을 기념하여 맥주 샤워를 받았다.
박찬호 선수는 아시아 최다승인 124승을 했을 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선수들이 욕실에 데려가 대대적인 맥주 샤워를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맥주 샤워 때 흠뻑 젖어버린 양말과 속옷을 기념으로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LA 다저스 시절 마이너리그에 강등되어 슬럼프를 겪을 때 야구를 포기할 각오로 맥주 6캔을 사서 집에 온 이야기까지. 맥주를 마시면 야구를 못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아니 잠깐 형 투머ㅊ...
머나먼 세계의 야구로 느껴졌던 메이저리그도 이제는 주요 경기를 챙겨볼 정도로 유명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빛나는 활약을 하는 한국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팬들은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를 응원하러 다저스 스타디움에 직관을 가기도 한다. 다저스 스타디움에 직관을 가면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다. 류현진 때문이냐고? 아니 하이트 바 때문이다. 아니 하이트가 왜 여기 있어?
2012년부터 LA 다저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하이트는 다저스 스타디움 내에 하이트 바를 만들고 하이트맥주와 참이슬을 판매한다. 올해는 더 나아가 LA 다저스 공식 맥주인 '다저스 비어'를 출시하기도 했다. 다저스 스타디움에 간 한국인들에게 ‘하이트’와 ‘다저스 독’은 하나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물론 갈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나 같은 집관러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국내 MLB 팬을 위한 맥주캔이 국내에서 최초로 나왔다. MLB 스페셜 캔. 메이저리그의 6개 인기구단의 로고가 그려진 이 녀석은 어떤 경기를 봐도 승리팀의 건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LA 다저스 류현진의 몫! 이것은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의 몫! 이것은 템파베이 최지만의 몫이다! 물론 말만 하고 캔 뚜껑을 까지 않았다. 아깝기도 하고, 무언가 중요한 경기에 마시고 싶어서.
“그래서 MLB보면서 마신다고? 만다고? 어차피 경기는 한국에서는 아침이잖아.” 친구의 한마디에 갈증이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처럼 느껴진다. 정신이 흐릿해진 순간, ‘칙’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만루홈런처럼 거실 공기를 재빨리 가른다.
기왕 깐 거 어쩔 수 없지. MLB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친구와 맥주를 마신다. 역시 야구는 맥주와 즐겨야 제맛, 맥주는 함께 마셔야 제 맛이다.
참고문헌
ALL ABOUT BEER : BALL PARK BEER
St.Lusis : Forgotten Father, Chris Von der Ahe
ESPN : Jon Lester, We're good people
MBC : [취재플러스] 맥주와 메이저리그
김형준 : 메이저리그 레전드, 한스컨텐츠
스포츠 경향 : 클리브랜드 가을야구 진출 비결은 치맥?
허프포스트코리아 : 오랜 시카고 컵스 팬이 32년간 아껴둔 맥주캔을 시원하게 까다
동아일보 : [제니퍼의 박찬호 스토리] “동료들이 축하 맥주세례 푹 젖은 속옷 평생 간직”
비즈니스포스트 : 하이트진로, 미국에 물류센터 짓고 현지 공략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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