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뒹구는 가을을 혼자 걷는다. 누구의 손을 잡지도, 눈길을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길거리의 붕어빵뿐이다. "저기 우유는 안 파나요?"라는 물음에 붕어빵 장수는 말한다.
당신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 마시즘인데... 여기 왜 거기 있어?!
최악의 더위마저도 그리운 계절이다. 몇 주 전만 해도 파이널 여름휴가를 계획했는데. 이번에는 기필코 참으로 휴가를 내려고 했는데 모두가 야상을 입기 시작했다. 파이널 여름휴가 포기. 이렇게 우물쭈물 대다가 올 첫 여행은 설원 여행이 되지 않을까? 안 돼! 뜨거운 햇살, 시원한 바다를 포기하고 극기훈련이라니!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따뜻한 나라로 갈 수 있는 이동수단이 있다. 문제는 이동수단을 탈 수 있는 돈이 내게 없다는 것이다. 이게 다 버는 족족 음료수만 사 마셔서 그렇다! 그렇게 나는 가을을 타게 되었다.
보통이라면 가을에는 쌍화탕이나 유자차 같은 제철음료(?)를 마셨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허전한 속을 데워줄 수 없다. 그러다가 이 녀석을 발견했다. ‘하와이안 썬’. 윈도우 97 시대를 연상시키는 미국스러운 디자인과 열대과일 주스라는 컨셉에 바로 검거를 했다. 하와이. 갈 수는 없지만! 음료로 분위기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하와이안 썬 2캔을 들고 계산대에 향했다. "얼마인가요?(띡. 네 하나 당 2,000원입니다)" "아니 가격이… 비행기 표보단 싸잖아. 완전 이득(아니다)"
집 앞 편의점에서 하와이안 썬 음료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하와이의 열대과일로 만든 프리미엄 주스인 하와이안 썬을 마시려면 하와이에 가거나, 대한항공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에 타야 했기 때문이다. 구하기 힘든 만큼 특별해지는 하와이안 썬. 하지만 더 이상 이 녀석을 마시지 못했다고 해서 다시 하와이를 간다거나 비행기를 돌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하와이안 썬은 다양한 맛이 있지만 그중 ‘구아바 넥타’가 대표적이다. 구아바(구아버가 옳은 표기다). 어렸을 때 ‘망고와 구아바가 눈 맞았다’는 노래는 들어봤는데. 정작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다. 겉은 참외처럼 생겼는데, 속은 분홍색 수박이다. 또 맛은 또 사과나 포도 사이에 있는 혀가 복잡해지는 과일이랄까.
화와이안 썬 구아바 넥타를 마셨다. 보라색 캔에서 분홍색 구아바 주스가 나온다. 색감 참 미국스럽다. 열대과일 특유의 상쾌하고 톡 쏘는 음료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하와이안 썬 구아바 넥타에서는 딥한 제주감귤 향기가 났다. 오렌지 주스랑 포도 주스를 섞어마시면 이런 맛이 날 것 같다. 굉장히 건강한 맛. 시원하긴 엄청 시원하다. 밖이 추워서 문제지.
하지만 하와이안 썬 구아바 넥타만 마시고 마는 것은 한국에서 하와이로 반절밖에 가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 하와이안 썬 구아바 넥타와 함께 한국에서 판매되는 이 녀석 ‘하와이안 썬 리치 위드 진생’을 먹어야만 하와이에 온전히 발을 딛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이름이 참 길다. 그린티는 우리가 아는 ‘녹차’가 맞다. 분말이 들어갔다고 한다. ‘리치’는 뷔페에 가면 볼 수 있는 딱딱한 빨간색 껍질의 과일이다. 껍데기를 벗기며 하얀색 과육이 나오는데 참으로 귀찮으면서도 맛있는 녀석이다. 진생. 진생은 바로 ‘인삼’이다. 무려 0.002%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하와이에 인삼이 왜 나와? 님 여권 좀.
하와이안 썬 그린티 리치 위드 … 진생을 마셔본다. 이거 알갱이만 있었다면 하와이 버전의 ‘봉봉주스’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달고 시원하다. 그래 이게 바로 해변에서 마시는 시원함이지… 라는 말이 무섭게 혀가 씁쓸하게 굳는다. 아 녹차 분말 이 녀석이 나의 혀를 마비시키고 있다. 건강… 건강 이 녀석이 나의 발목을 또 잡고 말았다.
우리의 지갑은 세계여행을 하기에는 작고 귀여운 녀석이지만. 세계의 음료를 마시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과일주스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만족.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하와이를 음료의 맛 만으로 상상해보는 재미도 함께 있었다.
지나버린 여름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새롭게 만날 음료… 아니 계절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와이안 썬. 언젠가 대한항공에서 한 캔, 하와이 해변에서 한 캔을 하는 날을 기다리며. 니가 가라 … 아니 내가 간다 하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