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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Dec 03. 2018

삐에로쑈핑 VS 마시즘

#없는게 없다며 정신이 없다

인파가 북적이는 코엑스를 혼자 걷는다. 약속을 잡은 것도, 관광을 온 것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출구를 찾아 나가는 것이다. 내 사정도 모르는 외국인은 나에게 말을 건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략 이런 말 아니었을까? 


당신은 한국이 허락한 유일한 음료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괜히 간다고 그랬어

삐에로쑈핑, 너무 쉽게 봤어


지난 <칼피스의 모든 것> 에서 나는 실언... 아니 공약을 하고 말았다. 알코올 버전의 칼피스, 칼피스 사와(カルピス サワー)가 삐에로쑈핑에 있다는 소식에 '삐에로쑈핑에 떠나야겠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글을 올린 뒤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서야 몸을 움직였다.  


(끝사랑이고 뭐고 귀차니즘 아래에 있다)


삐에로쑈핑. 이곳은 힙스터라면 꼭 방문해야 할 성지다. 이제야 말하지만 세상에는 두 종류의 힙스터가 있다. 개시하기 전에 들어가는 얼리어답터 힙스터. 그리고 폐점하기 전에(?) 찾아가는 백드러머. 그렇다 '뒷북러'다. 많은 리뷰어들이 이곳의 개점을 다녀왔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가는 지금은 어떨까?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칼피스 사와를 찾으러 가는 길. 삐에로쑈핑이 길을 잃기 딱 좋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삐에로쇼핑을 품고 있는 코엑스는 미로 그 자체였다. 한참을 느낌대로 헤매다가 깨달았다. 나는 길을 잃었다. 이래서 이불 밖은 위험한 거였어.



우린 삐에로쇼핑을 찾을 거야

언제나 그렇듯이

(코엑스에서 30분을 걸었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구로 돌아가려는 찰나, 삐에로쑈핑을 만나고 말았다. 코엑스 한가운데에 있다니! 그것도 모르고 측면만 돌던 나였다.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었다.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칼피스 사와'를 구출해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일본제품이 많아서인지 돈키호테 느낌도 난다)

없는 게 없는 것이 특징이라는 코엑스 쇼핑. 하지만 없는 것이 있었다. 일단 노래가 정신없었고, 칼피스 사와가 없었고, 생각보다 손님이 없... 었던 것은 내가 아주 늦은 시간에 왔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삐에로쑈핑을 찾기 어렵게 만든 코엑스의 잘못이겠지. 내 잘못이 아니다.


삐에로쑈핑은 듣던 대로 '대충 정리하는 멋'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입구 쪽에는 일본에 가면 하나씩 사 올법한 음료나 과자 등이 있었다. 지난봄에 돈키호테에서 느꼈던 분주함이 느껴졌다. 그 커다란 돈키호테 매장에 아이폰X을 두고 와서 정말 현기증이 제대로 났었지.


(봐라 이게 삐에로의 컬러감이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을 한국의 돈키호테라고 부르기에는 실례다. 이곳은 뭐지 나쁜 말로 '더 미친 매장'이다. 직원들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 분홍색 문구들 사이에 쿨하게 걸쳐있는 저 이로하스 음료를 보아라. 집 앞 편의점 사장님이 본다면 기절을 하겠지만, 나는 대충 저렇게 걸친 멋이 좋아 보였다. 물론 재고 파악은 포기하는 게 빠르겠지 하하.

 


없는 음료가 없다

물론 한국음료 한정

(우리한테는 단순한 음료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힙터지는 음료겠지?)

정리가 되어있는 환경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곳 한 곳을 음미하며 뜯어보기로 했다. 삐에로쑈핑은 뭐랄까. 없는 음료가 없었다. 문제는 그것들이 다 한국음료라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 마시즘이 있다면 한국음료를 구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삐에로쑈핑을 가는 것이다. 근데 나는 한국인이다.


일본만 해도 여러 기상천외한 음료들이 많은데. 일단은 확실히 사갈 수 있는 것으로 마련한 느낌이 강했다. 또한 이곳을 찾는 주요 관광객이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관광객이 주 고객이면 뭐 정리가 무슨 소용이야. 표지 글씨 읽기도 힘들 텐데.



진짜 삐에로의 음료는

지하에 있다고

(으악 이런 모습을 기다려왔어)

삐에로쑈핑을 둘러볼수록 아쉬움이 커졌다. '다양하긴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음료밖에 없는 것인가!'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바로 지하매장에 음료코너가 크게 있는 것이다. 어쩐지 1층에는 냉장 음료 칸도 없더라니. 나란히 놓인 음료들. 심지어 주류, 주스, 탄산 등 코너 정리도 잘 되어있다. 역시 삐에로쑈핑.



... 방심하면 또 이런 게 나오는구나.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투어였다. 라무네 종류가 많았고(김치 라무네가 있다면 사려했지만). 다른 해외 음료들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가장 빛난 것은 주류 코너였다. 세상에 혼자 마시기 좋은 술들을 이렇게 많이 방치해놓다니!


보통 편의점이나 동네 마트에서는 주류상품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종류가 몇 없으니 매일 마시는 것을 또 마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틀샵이나 주류매장에 들어가면 직원의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지갑을 열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슬램덩크로 치면 존 프레스 급의 압박 마크. 그때마다 내가 원한 것은 이렇게 종류도 많이 프리 하게 널려있는 곳이었다.


맥주, 와인, 위스키, 고량주, 니혼주 상관없이 종류들도 다양했다. 혼술족들을 위한 하프와인이 있거나, 미니어처 위스키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딱 하나가 아쉬웠다면, 우리의 알콜음료 칼피스 사와가 없었다.



정신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삐에로쑈핑

(레어템이다 열려랏 지갑)

사실 삐에로쑈핑에 목적을 가지고 간다는 자체가 우스웠다. 이곳은 정신없고 발랄하게 나타나는 상품들 속에서 우연한 만남을 찾는 곳일 텐데 말이다. 결국 칼피스 사와는 사 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충동구매를 일으키는 물건을 본 것은 분명 삐에로쑈핑만이 줄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뒷 날을 기약하며, 또한 삐에로쑈핑의 주류를 언젠가 공략할 것을 다짐하며 출구를 찾아 떠났다. 원하는 음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이걸 위해 먼 곳을 찾아갔다는 것, 길을 잃고 헤맨 과정 하나하나가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역시 음료는 힘들게 구해야 제맛이니까.


(라고 하고 출구에서 이걸 발견했다. 바닥만 보고 가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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