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를 정복한 자, 베트남 음료계를 정복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술이 있고, 술이 있는 곳에 숙취가 있다. 술을 좋아하는 문화에서는 언제나 숙제처럼 숙취를 달고 살기 나름이다. 때문에 여러 나라에는 그 나라만의 숙취해소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은 북엇국이나 콩나물국을 먹고, 중국은 날달걀을, 싱가포르는 묽은 쌀죽을, 독일은 청어 절임을, 영국은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를 섞어(블러디 메리) 마신다. 잠깐만, 그건 해장술이잖아.
오늘도 갈아 만든 배로 숙취해소를 한 마시즘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떻게 숙취해소를 할까?
베트남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맥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6년 1인당 맥주 소비량이 42리터로 증가하여, 세계에서는 10위권, 아시아에서는 3번째로 맥주 소비가 많음을 증명했다. 문화나 종교에서 술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심지어 국민 평균 연령 30세로 술을 더 마실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숙취해소에 대한 개념은 별로 없다는 게 함정. 그.. 그럼 뭐로 숙취해소를 해요?
지난 <베트남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신다고?>에서도 말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독한 술보다는 시원한 맥주를 즐긴다. 때문에 숙취가 올 일이 별로 없다고. 다만 민간에서는 라임주스나 생강차 등으로 숙취 후 갈증을 해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비록 ‘지금은 비록 맥주를 적당히 마시지만, 나중에는 각종 독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한다’는 음주 불변의 법칙이 있지 않던가(없다). 아직 아무도 숙취해소에 대한 개념이 없는 베트남 시장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낸 두 음료가 있다. 바로 한국과 일본의 숙취해소 음료다.
첫 번째는 CJ 헬스케어의 ‘컨디션(Condition)’이다. 2014년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컨디션은 약국, 편의점, 한인 마트 등의 다양한 유통채널로 진출을 하고 있다. 문제는 베트남에서는 ‘숙취’에 대해 모르는 만큼 컨디션의 주요 성분인 ‘헛개’에 대해 알지를 못한다는 것. 컨디션을 알리기도 전에, 숙취해소와 헛개를 알려야 하다니!
2016년에 진행한 베트남 컨디션 광고(무려 컨디션 최초의 해외 광고)를 보면 이들의 전략을 볼 수 있다. 바로 사회적인 맥락을 담아내는 것.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동료들의 승진 파티를 주도하면서도 음주 전후로 컨디션을 마시고 쌩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숨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마셔야 할지를 보여주는 좋은 가이드라인이 아니었을까?
한국의 숙취해소 음료 경쟁에서 배운 기술도 가득 사용했다. 바로 배치 전략이다. 처음에는 대중들의 인식이 부족하여 주로 ‘약국’에서 판매되었지만, 한국의 진열 방식을 참고해 슈퍼마켓과 한인마트에 입점한 것이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거나, 숙취가 심해 인사불성(?)이 될 때 가장 좋은 동선을 차지하는 전략을 세웠다.
2014년 첫 진출 때는 월평균 2,000여 개가 팔렸던 컨디션은 2018년에는 월평균 50,000~60,000개 정도가 판매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아직 만족할 정도의 수치는 아니지만 베트남 내에서도 ‘숙취해소 음료’에 대한 인식이 늘어나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지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 중이다. 바로 아래에 나올 녀석만 없다면!
베트남 숙취해소 음료 시장에 진출한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일본 역시 베트남에 일찌감치 숙취해소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헤파리제(Hepalyse W), 우콘파워(Ukon No Chikrra)를 들 수 있다. 컨디션과 같은 숙취해소 음료라고 불리기에는 국적도 성분도 다른 녀석이다.
가장 구별되는 점이 이들 숙취해소 음료는 ‘강황 추출물’을 주요 성분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전통적으로 강황이 복통과 피부미용에 좋다고 알려진 상태. 익숙한 원재료를 사용한 일본 숙취해소 음료들은 마셔보진 않았어도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게 하였다.
문제는 역시나 아직은 미미한 ‘숙취해소’라는 단어다. 하여 일본 숙취해소 음료들은 ‘숙취해소’라는 타이틀 자체보다는 ‘자양강장제’ 느낌의 보조 음료로 자리를 잡고 있다. ‘간 건강에 좋은데, 술 마시고 힘들 때도 좋다’ 식의 숙취해소는 거들뿐…이라는 작전이랄까?
베트남에서 펼쳐지는 뜻밖의 한일전. 하지만 ‘숙취해소’라는 용어가 제대로 박혀있지 않은 베트남에서 어떤 제품의 승리를 점치기는 어렵다. 아직 카테고리를 따로 구분하기에 숙취해소 음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적고, 가격은 비싸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쟁이 없는 틈새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면, 급격하게 변화하는 베트남의 생활상에서 중요한 음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베트남에 진출한 숙취해소 음료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한 잔만 마시고 끝낼 게 아니라면, 또 기왕 마신 김에 내일을 제대로 보내고 싶다면 숙취해소 음료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냐’고.
과연 베트남 사람들의 음주생활에 동반자가 될 숙취해소 음료는 어떤 제품이 될까?
번외 : 베트남 사람들은 잘 모르는 베트남의 해장음식 쌀국수
베트남에는 해장음식이 별로 없다고 이야기하기가 무섭게 생각난 것이 베트남 대표음식 ‘쌀국수’다. 소고기로 우린 국물에 국수와 숙주, 고수를 넣고, 레몬즙으로 짜낸 베트남식 쌀국수야 말로 먹으면 숙취가 스르르 내려갈 것 같은 음식이 아니던가. 알아보니 베트남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을 중심으로 베트남 쌀국수가 해장음식으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국가대표 컨디션의 라이벌은 오히려 쌀국수가 될지도?
참고문헌
베트남 숙취해소 음료 시장동향, 윤보나, KORTA 해외시장뉴스, 2018.5.22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아시아 각국의 숙취해소 문화, 이정윤, 매일경제, 2019.7.5
베트남, 亞 맥주소비 3위… 숙취해소 음료 시장은 ‘블루오션’, 양성모, 아주경제, 2018.5.29
씨제이헬스케어, 숙취해소음료 컨디션 통해 '베트남' 현지 사업 박차, 김윤선, CEO스코어데일리, 2019.8.19
中·日·베트남…숙취해소제 영토확장중, 이혜미, 헤럴드경제, 2018.11.29
CJ헬스케어 ‘컨디션’, 베트남서 ‘Good job, 컨디션!’ 외친다, 채널CJ, 216.3.28
해당 원고는 VEYOND MAGAZINE에 기고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VEYOND'는 베트남을 거점으로 세계 각국에서 성공신화를 건설하고 있는 대원 칸타빌의 베트남 전문 매거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