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처음 간 건 중학생 때였다.
사방의 바다 색이 다르다는 게 신기했고, 어디를 가나 까만 돌이 흩어져 있었다.
바람은 세고, 흑돼지는 맛있었다.
관광 명소도 많이 봤지만 어쩐지 의무적으로 사진만 찍은 느낌이었다. 성산일출봉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일어나 봉우리를 오르며 일출을 보는 일은 귀찮기만 했고 그래서 그때의 성산일출봉은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았다.
세월이 흘러 자전거를 타고 성산일출봉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여전히 일출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에 체크인하면서 내일 일출 시간과 기상 안내를 받아도 심드렁하게 흘려버렸다. 1월 1일 해돋이도 집 안에서만 봤던 집순이라 그런지 굳이 새벽에 나가서 해를 봐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던 여행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늘은 구름이 짙어 해를 보지 못해서 내일 다시 일출을 보러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혹했다.
’분명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들은 것 같은데..‘
마치 마트 타임세일에 필요 없는 것도 혹하게 되듯
안 보면 손해일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연스레 일출 보러 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보는 게 맞지’
하고 슬쩍 합리화도 곁들이면서
다음 날 오래간만에 새벽에 일어나 덜 풀린 몸을 이끌고 천천히 걸었다.
자전거로 인한 근육통이 남아 있어서 남들보다 늦게 정상에 도착했지만 다행히 10분쯤 지나자 수평선 위가 조금씩 밝아왔다.
하늘을 바라봤다. 처음엔 선홍빛 여명만 보였다.
오늘도 해 뜨는 건 못 보겠구나 싶던 그때
붉게 물든 하늘이 점점 짙어지더니 수평선 위로 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차가웠던 4월의 새벽 공기가 부드럽게 녹아내려 온기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같은 장면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햇살이 번져갔다.
성산일출봉의 능선은 금빛으로 물들었고 그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붉게 물든 하늘과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천천히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잘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산일출봉 인증센터로 향하던 길에 뜻밖에 전문가인 것 같은 분을 만나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힘들어 보여도 숙련되면 제주 코스를 단 이틀 만에 완주할 수 있다는 말을 전했는데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었지만 그래도 듣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그분은 웃으며 귤과 포도당 캔디를 건네주었다.
아마 나처럼 어설프지만 도전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조용한 격려였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응원은 의외로 오래 마음에 남아 달리는 내내 힘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