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지옥 같던 서귀포 코스를 지나온 나는 이제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앞으로 힘들어봤자 어제만 하겠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큰엉 해안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큰엉은 ‘크고 깊은 절벽’이라는 뜻을 지닌 곳이다.
이름처럼 커다란 검은 현무암 절벽이 해안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파도가 부딪칠 때마다 하얀 포말이 절벽을 타고 흩어졌다. 그 장면이 밤새 쌓인 피로를 씻어내 주는 듯했다. 바닷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그 바람 덕분에 다시 몸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웬걸.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게 무색하게 페달을 밟을수록 오히려 즐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체감상 쇠소깍을 지나면서부터 길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남쪽의 거친 절벽길을 벗어나자 바람결도 달라졌다. 날카롭던 바람이 온화해지고 바다는 잔잔한 빛을 띠었다.
4일 차에 예정된 표선해안인증센터에서 성산일출봉인증센터까지로 표선해수욕장과 신산해안로를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평지였고
그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가 생겼다.
비록 서귀포 구간처럼 장엄한 기암절벽이나 다채로운 바다는 아니었지만 동쪽 해안의 풍경은 고요하고 잔잔하다.
바다와 평행하게 뻗은 도로를 따라가면 멀리 성산의 바위산이 점점 가까워진다.
중간중간 바닷가에는 검은 현무암 바위 위로 해녀들의 모습들도 보였다. 벌레가 많고 풍경은 단조로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길이다.
3일 차가 7~8시간의 사투였다면 4일 차는 같은 키로수였는데 고작 3시간 반 만에 끝이 났다.
신기하게도 타는 내내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3일 동안 제주도에서 욕 밖에 하지 않던 내가 그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고 처음으로 달린다는 기쁨을 느꼈다.
훗날 이번 여행을 떠올리면
아마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하루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이래서 마라톤을 하고, 전국 일주를 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넘어서는 도전을 반복하는구나.
결국 모든 과정이 삶과 닮아 있네’
성산일출봉이 점점 커져간다.
섭지코지를 지나 성산일출봉 앞,
제주도의 동쪽 끝에 도착한 순간 비로소 이번 여정이 진짜로 완성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