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엔 여미지식물원, 테디베어뮤지엄, 연돈 같은 제주 대표 관광 명소들이 다 모여 있는 중문 관광단지를 지나간다.
그렇기에 힘들긴 해도 그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가긴 아쉬웠다.
어제 그렇게 욕심을 버리자고 다짐한 게 무색하게
욕심이 또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아… 또 시작이네’
언덕이 눈앞에 펼쳐지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산방산부터 시작된 고도는 점점 좁고 가팔라지더니
중문에 들어서자 그 난이도는 차원이 달라졌다.
도로는 좁고 굽이져 있어서 차와 나란히 달리다 보면 공포가 찾아온다.
하지만 사고 날까 조마조마하다가도 체력이 바닥나니 공포고 뭐고 욕만 튀어나왔다.
길이 너무 험한 게 말도 안 되어 순간 내가 자전거도로를 잘못 든 건가 싶었는데,
그때 옆을 스쳐 지나가는 전문 라이더 무리들.
그 가파른 언덕을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는 걸 보고는
그냥 헛웃음만 나왔다.
“아… 길 맞구나. 하하.”
힘들다 보니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자전거를 끌며 가파른 중문 언덕을 오르면서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안일하게 살았나’ 반성도 하고 뱉을 수 있는 욕은 다 뱉고
종교도 없으면서 ‘살려주세요!’를 수십 번 외쳤다.
그러다 자연스레 해탈이 되어 묵언수행 모드로 전환.
눈엔 초점이 사라지고 머릿속은 텅 비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 중문은 관광단지 아니고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너무 지체돼서 가려던 중문관광단지의 볼거리와 연돈은 그대로 패스.
아침에 부렸던 욕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로 옆 직판장에서 한라봉이랑 과즐을 구매해 뜯어먹으며 짐승처럼 알 수 없는 소리 내면서 달린 거 같다.
다행히 법환바당부터 쇠소깍까지는 평탄하게 이어져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했고,
얼굴은 벌겋게 부어올랐으며, 귀까지 멍멍할 정도로
심장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금 진정되고 나니, 평소처럼 후회와 반성이 아닌
점점 독개구리처럼 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면서 벌써 반이나 왔는데
절대 포기 안 해. 반드시 종주한다.’
그렇게 오기와 분노에 불탄 채로 앞으로의 라이딩을 위해 편의점 면장갑을 사서 손가락 구멍을 뚫었다.
모양새는 이쁘지않지만 장갑을 못 챙긴 사람들에게 급하게 쓸 수 있는 강력 추천하는 팁중 하나.
그리고 3일 동안 호되게 당한 덕분에
나만의 제주 종주 3 계명을 세웠다.
첫째 해안가에서는 사진을 남에게 부탁한다.
둘째 자전거는 혼자 세워두지 않는다.
(바람이 장난 아니다. 넘어지면 체인 이탈은 순식간이다.)
셋째 선크림은 몸 전체에 꼼꼼히 두껍게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