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으로 가는 길목엔 제주 남서부의 항구 모슬포항이 있다. 거기서 향토 음식 하나를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몸국이다.
해조류인 몸(모자반)을 돼지 육수에 풀어 만든 국인데 모습은 미역국이나 매생이국 같은 맛이 날 것 같았으나 한 숟가락 떠먹고 나니 설명대로 고깃국에 가까운 든든한 맛이 났다.
향토 음식다운 묵직함이 있었다.
모슬포항을 지나 송악산 쪽으로 접어드는 길은
의외로 평탄한 지대가 이어졌고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도로 상태가 좋아서인지, 첫날엔 보지 못했던 할리데이비슨을 탄 라이더들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진짜 서부 영화 속 장면이 눈앞에서 재생되는 기분이었다.
평탄한 라이딩이 계속 이어졌으며 송악산 쪽 둘레길 입구 유채꽃이 만발한 풍경을 보니 행복감마저 찾아왔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그런데 긴장을 놓았던 탓이었을까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삼각대를 설치한 순간 바람이 몰아쳐 삼각대가 그대로 돌바닥에 쓰러졌다.
그 충격에 카메라 렌즈는 휘어지고, 삼각대도 파손되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어쩔 줄 몰라 그저 휘어진 카메라 렌즈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선 숙소에 들어가 씻고 나면 방법이 떠오르겠지 싶어 서둘러 이동했다.
그러나 도착해 손을 씻으려 보니 손가락에 언제 탔는지도 모르는 화상 자국이 있었다.
4월 초였지만 자외선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긴팔과 쿨토시로 어느 정도 가리긴 했지만 핸들을 잡는 손가락 쪽은 커버가 안 돼 타버렸던 것이었다.
카메라는 고장 났고, 손가락은 따갑고, 꼬리뼈는 아프고, 온몸은 근육통으로 지쳐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한계였기에 마땅한 해결방안은 떠오르지 않고 괜히 시작한 거 같다는 자책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산방산 인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내 처지를 듣고 한마디 해주셨다.
“여기서 창문으로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산방산을 오르는 라이더들이 보여요. 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저렇게 힘든 걸 할까?’ 생각하곤 합니다.”
나는 그저 구부러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정말 이게 고장인가 수리 가능한가? 견적이 얼마 나올까…’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다시 물었다.
“자전거 종주하는 목적이 뭐예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실 목적이라는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완주증서가 멋있어 보여서였다.
“... 완주증 갖고 싶어서요?”
“그럼 아무 생각 말고 완주증만 생각하면서 달리세요.”
그 말 한마디에 울컥했다.
맞다. 나는 완주는 뒷전인 채 사진 찍고 관광하고 SNS인증까지 챙기려는 욕심만 가득했다.
‘아, 내가 너무 욕심부린 거였구나…’
체념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계산해 보니 이미 종주에 쓴 돈도 적지 않았을뿐더러 중도 포기하면 돌려받지 못하는 비용도 있으니 결국 내 의지가 흔들려도 기회비용 때메 강제로 달리수밖에 없다. (눈물)
산방산부터 쇠소깍인증센터까지는
고도가 높은 중문 지역을 통과하는 제주 종주 중 가장 험한 구간이다. 그래도 사장님의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완주라는 목표만을 향해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3일 차의 라이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