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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Dec 21. 2020

나는 그냥 엄마? 나는 어떤 사람?

나란 엄마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어느 아침, 울어버렸다. 기사에 보낼 사진을 연출해서 찍어야하는데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편은 남은 일이 있어 집에 못들어왔다. 홀로 해결해야한다. 첫째와 둘째는 내가 판을 벌리자 옆에 등장했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어야하니 혼자선 역부족이었다. 첫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첫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둘째는 사진용으로 준비한 물감을 꺼내 손가락을 파랗게 물들였다. 이제 1시간 남았다. 사진을 보내야하는 데드라인까지는.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나는 안 되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애나 봐야하는 사람이다'


육아와 동시에 무언가 의미있는 행위를 하는 건 너무 힘들다. 돈을 벌겠다고 아둥바둥 일을 하다가보면,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후회한다.


'내가 얼마나 벌겠다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가. 그만 둬야하나"


정해진 글을 쓰고, 정해진 분량을 책을 읽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서 또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거 해서 뭐하려고. 엄마를 찾는 아이들과 놀아줘야하는게 우선이 아닐까.'


이런 마음이 내 반대편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잠깐만!이라고 외치고, 분량의 책을 읽는다거나 정해진 블로그 글을 후다닥 쓰고 있으면, 이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방치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부지런해야하는지, 엄마가 엄마로만 살지 않기 위해서,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아둥바둥 살아야하는지 깨닫는다. 


사실 남편은 잘 모른다. 남편이 있는 아침 식사 시간 동안 내내 집안을 정리하고,  그날 입을 옷을 꺼내고, 이불을 개는 나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그저 다 같이 식사하는게 의미있는 행위이니 와서 같이 먹어라. 같이 먹지 않고 네가 그러면 아이들이 너를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나도 같이 앉아서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집안일하는 사람으로. 본인은 그저 준비하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남아있는 나는 수습해야할 일들이 많다.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데 말이다.


아이들과 집콕하는 동안, 나는 매번 끼니 걱정을 한다.(뭘 먹여야하나, 메뉴 구성) 너무 새로우면 먹지 않고, 매번 같아도 먹지않고, 그 중간을 공략해야하는데 둘의 입맛은 다르다.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게다가 무한하지 않다. 빠른 시간 내 둘의 입맛에 맞는, 새롭지도 그렇다고 식상하지도 않는 메뉴를 창조해야한다. 이 어려운 숙제를 매일 3번 풀어야한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수십번 부엌을 왔다갔다하고 배고프다며 냉장고를 열어댄다. 정신을 2분할해서 요리와 감시를 동시에 해야한다. 그렇게 겨우겨우 식사를 차리면, 반은 먹고, 반은 버린다. 


그 버리는게 아까워 나는 나의 밥을 따로 차리지 않고, 아이들이 먹다남은 음식을 먹는다. 이런 생활을 지속한다는 건 좀 힘들다. 그러다가도 음식물을 버리는 행위(안그래도 많이 버리는데)와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지구애를 키워가고 있는 나는 또 남는 걸 먹게 된다. 나의 피와 살은 남은 음식들의 잔해로 이뤄져있다. 슬프지만 진실이다. 지구를 생각하면 슬픈 행위가 아니라고 자위한다. 


이런 감정이 우르르 몰려오고, 체력까지 다운될 때 무너지고 만다.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다 다시 톤을 낮추고, 다시 분위기를 바꾼다. 화를 내지 않기로 했으니 여기까지!라고 내 마음이 얘기해준다. 와인잔에 와인이 식탁의 진동에 의해 출렁대다 다시 잠잠해지는 것처럼 나의 화는 출렁대다가 잠잠해지길 반복한다. 샴페인처럼 폭발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위안한다. 분명 나의 화를 아이들은 눈치챘으나 더 크게 화를 내지 않고, 감추면서 분위기를 최악으로 이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까지 겹치면 화를 잠재우느라 에너지를 다 쏟고 만다.


그럼에도 다른 한 편에 서 있는 나는,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이미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고, 그런 시간들이 내게 그 어떤 도움을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좀더 부지런히 나를 단련 시키는 것만이 유한한 삶을 후회없이 사는 것이라고. 언제 또 내가 이렇게 부지런하게 생이란 밭을 일궈봤을까. 피곤해도 피곤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 몸을 불태워 하루를 견뎌야하는 사람.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는 건 절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안의 화를 점점 다스리는 법을 깨닫고 있으며, 집안일은 적당히 하는 노하우를 터득했으며, 너무 힘들면 배달이나 포장 음식으로 대처하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전쟁이다. 나는 새벽 기상 이후, 7시 반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자리를 떠야한다. 거실로 나가 후다닥 청소를 하고, 어제 쌓아둔 설거지를 정리하고, 아침을 챙길 것이다. 아이들이 깨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틈틈히 분량의 책을 읽고, 틈틈히 글을 쓸 것이다. 나만을 위한 마법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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