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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an 06. 2021

 잘하든 못하든 칭찬은 옳다

아들의 5초 그림, 그 놀라운 능력에 대해

7살이 되면서 어느 순간, 너는 도화지 앞에 앉아 있었는 시간이 길어졌다. 8살이 된 요즘에도 너의 가장 큰 취미는 그림 그리기. 더 신기한 건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정말 짧다는 것. 너는 머릿속의 생각을 그림으로 구현하는 게 얼마 걸리지 않아. 아마도 어른들의 편견, 자기만의 시선이 생기기 이전의 원초적인 감각만으로 그리는 게 아닐까 생각해. 사실 아이들은 그림을 오래 붙들고 있지 않지. 우리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림 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 어른이 되면, 괜한 잡념에 집중하지 못하고, 괜한 자격지심과 과욕으로 뭐든 쉽게 그리지 못한다고 생각해. 그러다 보니 아직 어린이인 네가 썩 잘 그리진 못 해도,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너의 그림을 지지하기로 했다.


네가 그림에 미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요한 건 너는 어느 순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 4~5살쯤 나는 너와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때 너는 내게 말했어. '나는 그림을 못그린다'고. 하지만 이제 너의 그림은 근사해졌어. 물론 엄마관점이지만. 게다가 5초만에 완성되는 그림을 보면 감탄을 하고 말지.


문득 너를 보다, 어린 나를 떠올렸다. 일하러 나간 부모님과 학교에 간 언니, 오빠를 기다리며 나는 텅 빈 방 안에 찬밥처럼 웅크리고 있었지, 그러다 주변 사물들과 얘기를 했었나? 책도, 이불도, 베개도, 숟가락도 다 친구였던 시절이야. 그때 어린 엄마 손엔 연필이 들려있었어. 누런 벽지가 발린 벽에 그림을 그려댔어. 그림 속의 엄마는 자유롭게 떠다녔지. 밤이 되면, 일 마치고 들어온 부모님이 그림을 보시고 칭찬해 주셨어. 잘 그렸다고, 그림 솜씨가 좋다고. 아마도 진짜 잘 그려서 칭찬해 준 그림이 아니었을 거야. 긴 시간, 혼자 집에서 잘 버텨준 막내가 대견하다는 의미였겠지. 그림을 그릴 때면 엄마와 아빠는 한 번도 나를 혼낸 적이 없어. 책이며 벽에다 엄청난 낙서를 해댔지만, 내게 그만하라 강요하진 않으셨지. 대신 5살 많은 오빠가 어느 날 한 마디 했어.



“이제 넌 7살이야. 더 이상 책에 그림 따위 그리지 마”



아마 그때부터 그림이 갈 길을 멈추고, 정지된 상태로 지금까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채 굳었어. 이건 사실 변명이야. 엄마는 더 이상 그림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할 것 같아. 재능이란 걸 알아버렸거든. 스스로 재능 부족이라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에 갇혀 시작을 주춤거리게 하거나 시작도 못 하게 몸이 굳어버리지. 


너는 엄마처럼 되지 않길 바라. 엄마는 계속해서 단지 네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너의 그림에 칭찬 세례를 할 거야. 그 칭찬의 양분이 너의 꿈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엄마는 너를 지지한다. 조건 없는 칭찬이야말로 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성장 동력이라고 생각해.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릴까? 대부분 곤충을 그리는 너는 오늘도 곤충 채집을 나가겠지. 기라파 톱사슴벌레든 헤라헤라든 장수풍뎅이든 하나에 집중하는 너를 응원한단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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