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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an 20. 2021

엄마는 왜 하나일까?

고민했는데 결국 형제는 하나였다

나를 쪼개 두 개를 만들면 아이들이 덜 싸우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씁쓸하다. 일 때문에 통화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 둘째가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 첫째는 씩씩대며 화를 내고 있다. 이유인즉슨. 이번 주 일요일 엄마, 아빠랑 다 같이 곤충 박물관에 갈 생각에 들떠있는 첫째에게 둘째가 자신은 곤충 박물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첫째는 화가 났다. 이번에는 꼭 엄마랑 가고 싶은데 동생이 안 가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화를 냈다. 게다가 장수풍뎅이 살 생각에 첫째의 기분은 한층 들떠있었기 때문이다.


"너 장수풍뎅이 안 좋아해?"

"응, 안 좋아해"

"그래서 곤충박물관 안 갈 거야?"

"안 가. 집에만 있을 거야"


옆에서 듣는 내내 어이가 없어할 말이 없었다. 급기야 첫째가 울기 시작한다. 곤충박물관에 가서 장수풍뎅이를 사고 싶은데 동생이 안 간다고 하니, 혹시나 진짜 못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서럽게 울어댔다. 아빠가 동생이랑 집에 있으면, 엄마는 차가 없는데(운전을 못하는데) 그럼 곤충 박물관까지 어떻게 가냐고 절망에 빠져버렸다.


"아빠 차 타고 갔다가 은준이는 멍이 인형 사러 다른 데 가고, 우린 곤충 박물관 가면 되지"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옆에서 대화를 듣던 둘째가 단호하게 한 마디 한다.

"곤충 박물관 안 가"


둘째는 요새 첫째가 하는 말의 반대편에 서있다. 얼마나 깊게 말뚝을 박아놨는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가끔 엄마는 왜 둘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엄마가 둘이라면, 한 놈씩 데리고 잠을 잘 것이고, 한 놈씩 옆에 두고 책을 읽어주고, 같이 놀아줄 텐데. 지금은 한쪽씩 놀아주고 반응한다. 온전히 두 손을 가진 엄마가 아니라 첫째와 둘째를 향해 반반 쪼개서 운용한다. 인공지능 보모가 필요한 순간이다.


며칠 후, 곤충 박물관에 가는 날이다. 둘째는 퍼즐을 맞추며 딴짓을 한다. 나는 최대한 아이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놀아준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첫째가 내게 와서 말한다.


"엄마 같이 안 가도 돼. 아빠랑 갔다 올게. 대신 타이탄 장수하늘소 찍어서 보내줄게"


급하게 첫째가 준비를 시작한다. 내내 놀던 둘째가 첫째를 따라 움직인다. 결국 둘은 같이 박물관에서 잘 놀았다. 엄마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곤충에 빠져 잘 놀다 왔다. 간 김에 이번엔 장수풍뎅이도 사왔다. 집은 점점 진짜 곤충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싸우다가도 첫째 말을 가장 잘 듣는다. 취미도 비슷해지고 있다. 둘째는 첫째 따라 곤충 덕후가 될 것 같다.


아빠가 장수하늘소를 보면 말했다.

"장수하늘소는 수염이 참 기내"


둘째가 바로 지적한다.

"수염 아니야. 더듬이야"


곤충 덕후 형아 덕에 둘째도 곤충에 빠졌다. 이 둘의 취향은 점점 비슷해진다. 결국 형제는 하나였다. 이들의 일심동체는 가끔 여러 시너지를 일으켜 각종 소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같이 잘 논다. 요즘 같은 시국엔 둘이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물론 놀다가도 삐딱선을 탈 때도 있지만, 둘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취향이 비슷해서 싸울 때도 많지만, 혼자였다면 몰랐을 감정들이겠지.  각자의 생각을 굽히지 않다가도 놀 때는 결국 최고의 합을 보여주는 이놈들. 


엄마는 다만 뒤에 서있을 뿐이라는 걸 알까. 성장 과정에서 부모보다 형제의 영향력이 더 클 수도 있다. 1남 3녀의 막내인 엄마는 이모들과 삼촌들 사이에서 꽤 많은 꿈을 꾸며 자랐지. 서로가 서로의 꿈에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관계라면 더 바랄게 뭐가 있을까. 살다보면 함께라서, 둘이라서 좋은 이유는 수십가지도 넘는 것 같다. 그러니 지금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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