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매일매일 자가 번식하게 만드는 주범이 있었다
집안에 있는 물건이란 생명체가 매일 우리 집에서 번식 중임을 나는 인정한다. 특히 아이들의 장난감들과 개수대 안 설거지거리들은 잠시 잠깐 여유를 주면, 순식간에 번식한다. 분명 오전에 아이들이 원에 간 시간에 맞춰 정리를 했다. 게다가 애들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다. 시계를 본다. 단 10분 안에 온 집안이 이런 식으로 초토화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물리적인 시간과 집안 상태를 대비, 이건 수치상으로도 계산이 되지 않는다.
특히 빨래의 번식설은 가장 설득력이 있다. 빨래통의 빨래들은 매일매일 세탁기를 돌려도 뒤돌아서면 쌓여있다. 마른빨래를 개어 잠시 한 곳에 처박아 둘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걷은 빨래보다 더 많은 옷들이 쌓여서 산을 이룬다는 착각 아닌 착각이 매일매일 든다. 예전엔 집이 좁아 시각적인 대비로만 이를 이해했다. 하지만 빨래 더미들은 그때그때 치워야 한다. 시간을 주면, 자가 번식하는 게 분명하다. 빨래는 자웅동체임이 분명하다.
그러다 내 뒤로 우당탕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집안에 있는 온갖 것들을 장난감화하는 두 아이들이 놀고 있다. 장난감 수납함에 장난감을 바닥에 탈탈 턴다. 또 뭘 만드는 걸까? 공룡나라일까, 곤충이 산다는 인도네시아 어느 숲일까. 거실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첫째와 이를 옆에서 따라 하는 둘째가 동시에 각자의 나라를 만든다. 전엔 보이지도 않았던 물건들도 갑자기 등장한다. 안 쓰는 냄비부터 군고구마 직화 냄비까지 총동원하여 물건들로 어른들은 상상 불가한 세계를 만든다.
이놈들이구나
번식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두 아들들의 만행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과 장난감 이하 집안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맞장구치며 흥을 돋우는 현장이다.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이 현장을 직시한다. 다시 물건들을 제자리로 보낼 수는 없다. 이미 이들의 흥은 머릿 끝까지 올라가 있다. 물건들을 철수시키기엔 이미 늦었다. 내내 놀다가 잠들기 직전까지 책을 들고 와 안방에 책더미들이 한쪽에 형성된다. 뒹굴 뒹굴 하다 보면, 나도 같이 잠이 든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스르르 일어나 거실을 둘러본다. 개수대에 설거지거리들은 다행히 자기 직전, 식기세척기 안으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어느 날은 안착하는데도 실패하기 일쑤다. 그러다 새벽녘에 눈을 뜨면, 그릇들이 높이높이 승천하고 있다.(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어쩌면 집안에 있는 물건들과 쌓여있는 것들엔 생명이 깃들여있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 집을 그들에게 내어줘야한다. 그러니 나는 집사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열심히 치우고 정리하는 집사. 나는 오늘도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