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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Mar 05. 2021

아이를 낳아야할지 고민하는 후배에게 한 마디했다

모두가 태양계를 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후배의 결혼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낳아야되는걸까 고민중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구축해온 안정적인 환경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낳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한 마디했다.



"모든 사람이 태양계에 속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작은 행성의 위성으로 살아도 만족스럽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삶 아닐까"



후배는 웃었다. 그러면서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이 있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선택에 책임은 내가 지는건데... 선택에 대해서는 자신이 감당해야할 몫이지"



그러면서 굳이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 삶에 대해 얘기했다. 후배 나이는 42세이다.  나는 43에 둘째를 낳았다. 그러니 늦은게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간절히 원한다면 낳으면 되는거다. 물론 원한다고 다 아이가 찾아와주는건 아니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가끔 아이가 없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이가 없는 삶을 이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이제 아이는 내 일생의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없다면 지금보다 색채가 없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색채는 다양하지 않지만, 명도는 다채로운 삶이었을 것 같다. 그레이 그라데이션으로 층위를 나눈 그런 삶이다. 굴곡도 있고, 감정의 높낮이도 존재하나 뭔가 단순한 맛. 물론 나는 그런 삶을 좋아한다. 나는 대단한 격변을 원치 않고, 안정적이며 나만의 시간이 규칙적으로 주어지는 삶을 지향한다.


하지만 지금 나의 시간은 뒤죽박죽되어있어 가끔 내가 뭘 해야하나 잠깐의 멈춤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의 스케줄보다는 아이의 알림장에 집중하고, 아침마다 날씨를 확인하며 아이에게 어떤 옷을 입혀야하는지 옷이 두께감에 대해 고민한다.


물론 나를 위한 고민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부분과 분량 차이가 확연하게 난다. 불만족스럽진 않다. 아이의 에너지는 너무도 강력해서 나란 존재의 성찰을 따로 시간내어 하지 않아도 깨닫게 해준다. 내가 그동안 배우지 못한 인생을 응축해놓은 시간들로 흐름이 바뀌었다. 마치 바다로 향하던 강줄기가 다시 모태의 강으로 역행하는 것처럼 나의 인생은 급선회를 했고,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렀다. 아이가 커갈 수록 아이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런 삶이다. 내게 아이가 있는 삶이란.



그래서 나는 후배에게 굳이 달의 전면을 다 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삶은 옥토끼가 방아를 치는 달의 앞면이었다면, 아이가 있는 삶은 달의 뒷면이다. 달의 전면에 일부가 아니라 아예 다른 면이다. 그래서 같은 삶의 연장선이긴 하나 전혀 모르는 세계이기도 하다. 나에겐 그랬다. 아이가 있는 삶을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려웠다. 삶을 폭넓게 아는 것도 중요하고, 삶을 깊이있게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삶에 질이 특히 중요하다.


 중요한건 내 삶의 질, 그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아닐까. 후배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에게 집중하고 싶다면, 그대로 가도 되지 않을까. 나에겐 새로운 우주가 찾아왔으니 이대로 앞을 향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 후배는 후배가 구축해놓은 세계에서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가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우주가 있고, 각자의 스케일이 있고, 각자에게 배당된 희로애락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양이 정해져있다면, 그 질은 각자의 생각과 취향에 의해 단련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후배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해줄 것이다.



(굳이 나의 속내를 밝히진 않겠다. 다음생엔 아이도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성별을 떠나 나란 존재 그 자체로 만족하며 살고 싶다는 욕구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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