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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pr 05. 2021

여행인가 고행인가..엄마에게 가족여행이란?

아이들과 여행 가면 일어나는 불상사...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갔다. 코로나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잠잠해질 무렵,  오랜만에 협회 사이트에 들어가니 예약이 되지 않은 콘도를 하나 발견했다.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여행을 결정했다. 그런데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남편이 그냥 가자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있으니 최대한 음식점을 가지 않는 선에서 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 끝나자마자 첫째를 태우고 안면도로 향했다. 처음에는 꽃구경을 하면서 좋아하던 아이들, 그런데 문제는 서해대교를 건너면서부터 발생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한 마디 했다.

"이번에 건너는 다리는 바다 위를 지나가, 한 번 봐 봐"


그때부터 첫째가 징징댔다.

"나 무서워. 바다 위 건너는 거. 그러다 다리 무너지면 어떻게 해?"


이 말을 들은 둘째가 덩달아 울먹인다.

"어떻게 해?!"


다리무너지지 않는다고 달랬지만, 이번엔 첫째의  마디에 둘째가 불편을 드러냈다.

"나는 어린이용 카시트라서 안 불편해. 그런데 은준이는 아기용이라 불편해"


그때부터 둘째는 카시트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울어댔다. 빠져나오고 싶다고 뒷자리에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튜브로 요즘 빠져있는 ' 똥꼬는 힘이 좋아' 계속 틀어줬다. 울려고 하면 가끔 보여주면겨우겨우 도착했다. 도대체 애들은 , 엉덩이 얘기만 나오면 좋아하는 건지  코드는 아마도 평생 이해 못할  같다.


프런트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바닷가 객실은 선착순인데 이미  찼다고 한다. 기분이 딱히 좋지 않았지만,   없다.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둘째는 오늘 여기서 자는 거냐며 물어본다. 하루 자고 간다고 했더니 집에 가고 싶단다. 밖에 나가자고 하니  나가기 싫다고 한다. 그러다 달래어 바닷가에 나오니  장화를 빼먹고 왔다. 다시 콘도로 돌아갔다.  날따라 세미나로 대거 인파가 콘도로 밀려둘었다. 어디 가나 양복 입은 사람들이 바글댄다.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선다. 오래간만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 오니 현기증이 일어났다. 결국 나는 집콕 스타일이  것인가.


바닷가로 가니 아이들은 다행히 잘 놀고 있었다. 남편은 왜 늦게 오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콘도를 왔다 갔다 한 번 했을 뿐인데 이미 난 지쳤다. 그래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놀 때가 평화의 시간이었다. 문제는 저녁 시간. 수산시장으로 해산물과 회를 사러 간 남편은 친절하게도 다음날 먹을 빵과 편의점에 들려 필요물품까지 다 사 왔다. 그러는 와중에 저녁 식사는 때를 넘기고 있었다.


남편의 도착과 함께 음식을 개봉했다. 보자마자 한 마디 했다.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어? 이게 다 얼마야?"


과하게 많은 조개찜과 대하찜, 그리고 회까지  오셨다. 마인드 컨트롤에 능한 남편은 화내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이들 먹일 새우껍질을 까고 있었다. 허나, 둘째는 이미 배가 고파 지쳐있었고, 더는 먹을  없는 감정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8  첫째가 애를 먹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다양한 조개들을 먹으면서 둘째를 유혹했다.  유혹에 둘째가 넘어가버렸고, 드디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조개찜에 국물 하나 없으니 목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소스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맨밥에 조개만 먹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는  밑반찬을 준비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반성을 한다. 그러간장을 종지에 담아 아이들에게 주는 순간, 맛을 보던 첫째가 얼굴을 찌푸린다.


"이거 맨날 먹는 간장이랑 다르잖아"


그다음 날, 소시지에 찍어먹을 케첩을 사 왔을 때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거 집에 있는 케첩이랑 다르잖아. 매워"


첫째는 미각에 예민하고, 둘째는 후각에 예민하다. 둘이 동시에 예민함의 각을 내세우면, 감정에 예민한 엄마는 금세 지쳐버리기 일쑤이다. 여행 오니 밥 먹이는 게 일이다.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코로나로 가족 여행 안 간 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여행이 곧 고행임을 잊은 것이다.


너무 많아 누가 먹을까 싶어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예민하는 나는 가리비를 생각에 잠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가리비는 대부분 일본산이라는데 이건 도대체 어느 바다를 건너온 걸까. 이런 생각이 들자 조개  개를 먹다 보니 목이 메였. 첫째는 호기롭게 키조개를 들었지만, 맛없다고  뱉어냈다. 남편은 힘들게  왔는데 좋은 소리  듣고 가족들 반응도 별로인데도, 아이들 먹이겠다고 조개와 새우를 손질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이번엔 첫째가 뿔이 났다. 껍질까지 통째로 튀긴 새우튀김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줬다. 그나마  먹더니 엄마가 준건 껍질이 남아있다며 먹기를 거부했다.


어찌어찌하며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새로운 콘도에서 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콘도 큰방과 거실에 연결된 베란다에서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놀다 잠이 들었다. 첫째와 자다가 둘째가 자정 무렵 울먹이며 엄마를 찾는 탓에 둘을 데리고 작은 방에 깔린 요에서 잠을 청한다. 침대에서 자본 지 너무 오래됐다. 굴러다니면서 자는 아이들을 위해 집에서도 침대는 남편용으로 쓰이고 있다. 본인이 자취했을 때부터 사용한 매트리스(당시 고가로 해외직구로 구매)를 아직도 쓰고 있다. 나의 몸은 이제 침대보다 요에 더 적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두 아이들이 새벽녘에 한 명 씩 깨서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 막힌 코를 뚫어주기 위해 수건을 적시고, 물을 떠 오고,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여행 와서도 마찬가지.


다음날 아침, 남편이 어제 힘들게 사 온 음식들이 아침 거리로 등장했다. 소시지는 생김새부터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물에 데쳐서 올려놨다. 맛을 본 첫째가 맵다고 타박한다. 이건 절대 은준이가 안 먹을 거라고 했다. 케첩도 맵고, 소시지도 맵다. 빵마저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소보루 빵이다. 포카치아를 좀 먹던 첫째가 그나마 생크림 소보루빵을 먹고, 둘째는 포도만 약간 먹고 굶었다. 여행 내내 응가가 마려웠던 둘째는 방에만 들어가면 응가 자세를 취한다. 결굴 아침에도 실패했다.


체크아웃을 했다. 나의 생일에 맞춰 미리 연락하면 선물을 준비해주겠다라던 콘도의 문자를 뒤늦게 확인했다. 주는 것도 못 챙기다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다. 뭔가 자꾸 울컥하는데 몸이 피로해서겠지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해변에서  놀다 가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콘도 1 식당에 가서 칼국수를 시켜 먹었다. 더는 멀리   없는 상태였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은 아이들을 데리고 또다시 맛집을 찾아다닌다는 불가능하다. 비싼 전복 해물칼국수였지만 첫째는 칼국수의 면이 가장 맛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비싼  주고  먹기 아까운 맛이라고 평했다. 둘째는 식당에서도 풀리지 않는 응가 때문인지 불편해했다.  묻은 신발과 옷도 불편했고, 비에 젖은 바지도 벗고 싶어 했다. 결국 옷도 벗기고 기저귀도 갈아줬다. 하지만 칼국수는 절대 먹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 어린이 숟가락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집에서 가져온 숟가락을 주니 이게 아니라 식당에 있는 어린이용 숟가락을 달라며 억지를 부린다. 식당 주인이 '이놈'하면서  마디하니  서럽게 울었다.


아이를 안고 밖에서 서성대니 금세 잠이 들었다. 잠투정을  것이다. 점심이라도 먹지 그냥 자버리니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오는 내내 다행히 아이들이 잠을 잤고,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물론 잠에서 깬 이루, 가는 도중에도 집엔 언제 도착하냐는 아이들의 성화, 초콜릿 과자가  녹아서 울먹이는 둘째, 아이스티 음료가 맛없다고 불평하는 우리  미식가 첫째 등의 원성을 받아주면서 엄마는 녹아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쯤 편히 여행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없다고 맘 편한 여행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나는 아이 엄마가 되었고, 내 몸의 대부분의 촉수가 아이들에게 반응하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여행은 각각의 고행을 선사해줄 것이다. 성공적인 여행의 지름길은 결국 남편처럼 마인트 컨트롤에 성공하는 길 뿐인가? 인생의 성공은 마음가짐에서 시작한다는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처럼 여행의 성공 역시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성패가 달린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은 여전히 오래 기억된다. 그것이 고행이 되어도 또 그 힘든 상황이 기억 속에 박혀 추억으로 되뇌어진다. 내 일상의 모든 루틴은 파괴되지만, 여행이 값진 이유는 새로운 경험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사유와 시야가 내 삶을 특별하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과 더 많은 고행을 경험하기 위해 계속해서 여행을 계획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진 않지만, 결국 인생에서 남는 건 여행뿐이 아니던가. 나는 나의 지난 여행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번 여행은 고행이었지만 다음번엔 좀 더 멋진 추억을 남기자는, 진부한 결론을 내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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