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육아란 무엇인가
아이는 스스로 학원을 거부했다. 6살 무렵 아파트 단지 내 또래들이 우르르 몰려 태권도 학원에 갔을 때 나도 무임승차하듯 그 차에 올라타고 싶었다. 하지만, 학원 문턱도 넘지 못했다. 아이는 버럭 화를 냈고, 절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에게 학원이란 존재는 여러 의미가 있다. 단지 아이들의 배움 공간이 아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학원에 데리고 가고, 또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주는 과정. 그 과정에 있어 엄마의 수고를 하나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둘째가 있어 걸어서 10분 거리의 학교를 오가는 게 매우 어렵진 않지만,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둘째의 컨디션이나 날씨 상황에 따라.
단지 내에 사는 첫째 또래 아는 아이들은 학원을 두 개씩 다니고 있다. 유치원 다닐 때는 태권도를 다니더니 이번엔 다들 (입학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피아노를 추가했다. 이른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에게 두 개를 가르치는 것이다. 일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많으니 1시부터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엔 다들 부담스러운 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를 더 가르치기보단 요새는 1인 1스포츠, 1인 1악기 분위기인 탓에 영어가 아닌 피아노를 택한 것 같다.
학원을 다니진 않지만, 첫째는 추첨제인 방과 후 돌봄 교실에 뽑혀 3시 반에 하교한다. 어제는 돌봄 교실이 끝난 후, 아이가 친구들과 옆 아파트 놀이터로 몰려가 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몰려가 놀다 다른 아이 엄마가 한 마디 했다.
"5분만 놀다 갈 거야!"
"네"
순한 아이들은 '네'를 연발하며 진짜 딱 5분 있다 가버렸다. 첫째에게 우린 언제 집에 가니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한 마디 했다.
"000은 학원 가는 거래"
초등학생 중에 하교 후 놀이터로 직행하는 건 우리 집 아이밖에 없는 것 같다. 3시가 넘는 시간은 또래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5시 이후에나 아이들이 몰려들어 함께 놀기 시작한다. 그러다 1시간 정도 놀다가 6시가 넘으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간다. 아쉽지만,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눈으로 지켜만 보고 있다. 태권도는 아예 모르니, 피아노도 영어도 엄마표로 시작해야 하는 건가. 엄마도 세월이 다 지나 가물거리는 것들이니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남들과 다른 육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파트라는 틀 속에 박힌 공간에 사는 것도 부족해 교육마저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건 아닐까? 나의 육아는, 나의 교육관은 지금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학원 안 다닌다고 인생에 도태되는 건 아닐 텐데 나는 왜 또 불안이란 감정을 자꾸 수면 위로 떠올리는 걸까?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소개를 했나 보다. 활동지에 순위를 적어 집으로 가져왔다. 사람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활동지엔 곤충들이 순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전부터 아이는 선언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넓적이. 장수풍이, 왕돌이... 그리고 엄마는 4위, 아빠는 5위, 동생은 6위. 엄마도 곤충들에게 순위에서 밀렸다.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 넓적이가 겨울잠을 깨 요새 한창 아이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요즘 놀이터에 가면, 부쩍 아는 얼굴들이 많아져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래 아이가 없으면, 형을 좋아하는 동생들이 어디 가나 있고, 그 동생들과 아이는 또 어울려 잘 놀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다. 지금도 코로나로 인해 모든 걸 안심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밖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많아졌다.
요즘 아이의 루틴이다. 먼저 놀이터로 향한다. 곤충을 발견한다. 잡을 수 있는 곤충이면, 잡아다 관찰을 시작한다. 그리고 한 참을 곤충과 논다. 그러다 아이를 따르는 동생이 있으면 함께 논다. 아무도 없으면 친동생과 논다. 2시간 가까이 곤충 관찰과 놀이는 반복하다가 집 앞 놀이터로 간다. 그때부터 또래들과 논다. 6시가 되면 정리하고 집으로 놀아온다. 집에 와서는 넓적이와 논다. 겨우 밥을 먹인다. 밥 먹고 나면, 겨우 앉혀 숙제를 한다. 숙제를 하다가 기분이 좀 좋은 날엔 문제집 한쪽 연산을 겨우 시킨다. 물론 실패하는 날이 많다. 그리고 내내 놀다가 10시 이후 체력이 남으면 곤충 공부를 하고, 아니면 책을 읽다 잔다.
내내 놀다가 잠깐 숙제하고 내내 놀다가 자기 전 독서로 마무리하는 초등학교 1학년. 영어 흘려듣기라고 시키려고 TV 영상으로 영어노래를 들려준다. 재미있었는지 요새는 알아서 본다. 이게 다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자식들은 영어도 유창하게 하고, 첼로도 켜고, 공부도 열심히 하던데... 이런 상황을 직시할 때면 약간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학기초엔 더 많이 시켜보려고 해 봤지만, 이게 다 헛수고임을 며칠 못가 깨달았다.
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이 집 저 집과 비교하면서 아이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게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행히도(?) 나는 교류하는 이웃들이 많지 않아, 나만의 육아를 고집하고 있다. 나처럼 팔랑귀는 교류하는 이웃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을 탑재하고, 아이를 더 공부로 체근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타인과 비교하다 보면, 괜한 부분에서 느슨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래들도 다 게임하는데 약간 시켜주는 것도 괜찮아'
'스마트폰 들고 다니는 애들도 많은데 지금 사줘도 괜찮을 거야'
'다들 영어 공부하는 당장 ORT를 사야 하나. 파닉스 학원부터 보내야 할까?'
그러다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처음에 아이를 좀 더 자유롭게 키우자고 했었는데 요즘 갑자기 왜 그래?"
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 스마트폰은 되도록 늦게 사준다. 게임도 되도록 늦게 늦게 늦게 늦게 접하게 한다. 영어를 공부처럼 시키지 않고, 여유롭게 장기플랜으로 계획한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허용한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작년 한 해는 또래 친구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지 않은가. (사실 지금도 자유롭진 않다) 마스크를 쓰며 놀이터에서 잠깐 노는 정도이지만 이를 만끽하게 하자. 학원에는 연연하지 말자. 때가 되면 다니겠지라며 마음 편히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