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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pr 15. 2021

집 안에 욕조가 있다는 건

이제야 깨달은 나이 든 자의 피로 해소법

뒷골이 당기면서 결국 초저녁부터 누워서 끙끙 앓았다. 다행히 남편이 일찍 들어와, 저녁 먹이고 난 후부터 내게도 휴식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출장을 다녀와 피곤했을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도저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눕자마자 결국 녹다운되고 말았다. 그러다 잠들기 직전에 접어든 첫째와 둘째가 번걸아가면서 칭얼대 달래면서 잠을 재웠다. 다시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평소 기상시간보단 이른 2시 반. 새벽에 눈을 뜨면, 보통 난장판이 된 거실을 청소하고, 뒤늦게 전날 저녁 설거지거리들을 식기세척기 안으로 안착시킨다. 미라클 모닝엔 매번 성공하지만, 그 절반의 시간은 집안일로 소요된다.


대략의 간단한 명상을 한 후, 글을 쓰거나 하루 다이어리를 작성하는데 2시 반이란 시간은 너무 이른 것 같아 다시 잠이 드니 4시 반. 그런데 몸은 천근만근. 지구의 온 중력이 내 몸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물전 앞 축 쳐진 오징어처럼 나의 몸과 정신은 따로따로 새벽을 헤매고 있었다. 일단 누어서 명상을 했다. 기지개 한 번으로 우주의 신에게 내가 깨어났음을 신고하고, 5초의 법칙을 적용해 두 다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책을 펼쳐졌지만 도로 잠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보통 나의 샤워시간은 10분 내외. 아이들이 깨기 전 새벽 시간에 최대한 빠르게 진행된다. 샤워부스 안에서의 짧은 상념은 나의 새벽을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번엔 현관 옆 욕실로 갔다. 샤워기에 물을 튼다. 뜨거운 물줄기가 내 몸을 두드린다. 좀 더 뜨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화들짝 놀란다.


'좀 더 뜨거웠으면 좋겠다니... 나이가 든 걸까?'


새벽 기운을 머금은 물줄기는 메마른 내 몸을 촉촉하게 해 준다. 그 기를 받아 멍했던 머리가 점점 깨어나고 있었다. 나올까 하던 찰나, 욕조에 주저 앉았다. 물속에서 오랜만에 유영을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최대한 물을 뜨겁게 하고 욕조에 물을 채운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땐 욕조의 크기가 작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이겠거니 했다. 내가 한 번도 욕조의 사용자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집안 물건들도, 나의 시간들도, 우선순위에서 아이들에게 항상 밀리기 때문이다. 이사 와서 아니 출산 이후, 집안 욕조에 몸을 담그는 행위를 처음 해본다.


수도가 연결된 곳에 욕조는 90도 각도 형태이고, 반대편은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형태라는 것도 이제야 제대로 인식한다. 기울어진 곳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욕조의 디자인에 대해 이제야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다.


물 위에 둥둥 떠있는 새벽. 한 때 찜질방이 유행했던 시절에도 나는 찜질방을 싫어했다. 내 몸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곳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은 너무 덥다. 20대 시절에 나는 과한 열정과 허세로 가득 차 온몸이 뜨거웠다. 사우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월은 나를 무뎌지게 한다. 나도 보편의 나이,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나보다. 나이가 들면 차가운 것보다 따뜻하고 뜨거운 걸 선호한다고 하는데... 찬 물을 들이켜다가 체하기도 한다. 물을 먹고 체할 수도 있다니... 나의 장기들과 내 몸이 예전과 달라졌고, 내 몸을 관장하는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욕조 안에서 20 분간, 가만히 누워있었다. 물은 적당히 출렁댔고, 적당히 따뜻했다.  몸에 쌓여있던 온갖 독소들이 물속에 용해되고 있다.  위에 둥둥  입자들이 그간  몸에 달라붙어있던 피로 덩어리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아마도 가끔 나는 새벽 또는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전 시간을 빼내  욕조의 시간을 마련할  같다. 주기적으로 욕조 안에서  안에 쌓인 무수한 념들과  몸을 헤매고 있는 욕망과 근심 덩어리들을 둥둥  밖으로 내보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야 깨달은 피로 해소법. 어른들이 사우나를 즐겼던 이유에 대해, 지난 시절 욕조에 대한 몰이해에 대해, 나는 드디어 알게 됐다. 세상 모든 것들은 모르는 것 투성이임을. 젊든 나이가 들든, 나이와 상관없이 세상의 이치나 여러 노하우들은 결국 몸으로 직접 깨달아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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