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즐긴다던 나는 어디로 가고, 수다쟁이가 되어버렸나
오랜만에 회의를 하러 여의도로 향했다. 집에서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두 아이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각각 보내야 하는 입장에선 오전 회의 시간에 맞추는게 쉽지 않았다. 차가 밀리면 완벽한 지각, 지하철이 조금만 딜레이 되어도 지각생이 되어버린다. 다행히 남편이 조금 늦게 나가는 날이라 아이 둘을 같이 준비시킨 후, 남편이 아이들을 맡는 걸로 하고, 나는 후다닥 준비해서 늦지 않게 회의에 참석했다.
일단 내가 쓴 기획안을 토대로 회의가 진행됐다. 협찬사 측과 방송사 관계자, 제작사 대표와 함께 하는 회의이니 가벼운 회의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게를 잡을 필요는 없다. 가볍지고 않고, 무겁지도 않은, 그 어딘가에 있는 중간 포인트를 잘 잡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머리는 무게를 좀 더 두겠다에 가있고, 내 입은 가벼움의 끝자락에서 얼쩡댔다.
회의 도중, 게임, 에듀테크, 메타버스 등에 단어들이 등장하고, 기획안을 준비하면서 숙지한 내용들과 최근 유튜브를 통해 본 정보까지 나는 나의 얕은 지식을 동원에 떠들어댔다. 고삐를 제대로 묵지 못해 풀린 망아지가 어찌나 날뛰던지 회의실 탁자 위에서 히잉~히잉~ 짖어대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내 속은 타들어가기 시작하나, 내 입은 촉새가 되어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논지와는 상관없고, 그저 카더라 통신에서 본 내용들처럼, 가십거리들을 던지고, 누군가 그걸 물면, 또 미끼를 던지는 식의 말을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옆자리에 부장님은 제작사 대표와의 오랜 인연 때문인지, 나의 수다스러움 때문인지, 되도록 나와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얘기를 했고, 협찬사 대표는 젠틀한 매너를 지닌 공무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제작사 대표만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계산하느라 쉽게 말을 내뱉지 않았다.
메타버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떠오르는 강원대 김상균 교수님 얘기가 나왔다. 심지어 나는 기획안에 한상균 교수라고 적어놨고, 소속인 강원대인데 한림대로 알고 있었으니 나의 지식이 얼마나 털끝보다 가벼웠는가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굴하지 않고, 나는 한 마디 했다.
"그분이 신사임당 유튜브 나와서 싸이월드 얘기하더라고요. 그게 메타버스의 세계라고. 근데 싸이월드 5월 달에 다시 열린대요"
협찬사 관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수긍에 힘을 입어 나는 또 선을 넘는 얘기를 해버렸다.
"에듀테크, 메타버스가 가장 큰 화두로 잡고, 타이틀에서도 게임 색을 지우는 건 어떠세요?"
순간, 관계자의 표정은 난감 그 자체였다.
"그건 좀... 게임 협찬인데 그건 정체성에 문제가..."
회의 내내 나는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할 말 없으면, 안 해도 되고, 가치가 없는 말은 혼자서 주어 삼키면 되는 것을. 왜 나는 이리도 떠들어댔는가.
두서없이 알고 있는 얘기들을 살짝 고리에 끼워 말을 이어가는 다. 머릿속은 부끄러운데, 입은 쉴 새 없이 뭔가 얘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부뚜막에 계속 땔감을 떼고 싶은데 태울 게 없다. 주변에 신문지며, 짚, 나뭇가지도 다 불태웠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까지 회의 가기 싫다던 마음은 어디 가고, 오늘 무슨 작정을 하고 온 사람처럼 떠들어내냐"
문득 회의가 나 때문에 길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제작사 대표가 마무리를 하고, 1시간이 못된 회의는 드디어 종결됐다. 그들 각자 나름 회의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내가 방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토록 어리석을 짓을 자행했는가.
아이들과 있다 보니 어른들과의 대화가 서툴러지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생활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아 감을 잃은 것일까? 나를 과시하고 싶어 그간 내가 숙지해온 것들은 한 군데에 몽땅 투하한 것일까? 집콕만 하다보니 공감능력이 상실된 것일까? 원인을 분석하다 이 모든 것이 원인이라는 결론에 다달았다.
어쩜 나는 대화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던 모양이다. 육아에서 좋은 엄마가 되려면, 청자 입장이 되어야 한다. 모든 육아의 솔루션은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항상 들어줘야 한다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 나의 그릇을 넓고 깊게 빚어가야 하는 것이 육아의 기본이다라고. 그런데 가끔 너무 지겨울 때가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자기 전까지 집안일을 하다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덮어버리기엔 더 우울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육아에 매몰된 나의 감정들이 어느 순간, 발산하고 해소가 되어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 출구가 없다. 건물마다 비상구가 있는데, 내 인생의 비상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남편이 나의 비상구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 언저리에 머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청소기를 돌린다. 감정적으로 지치면 몸도 아파온다. 그러다 남편이 퇴근하면 시름시름 앓다 자버리기도 한다.
회의를 마치고, 아이들이 볼 책을 알라딘에서 사고, 간식과 반찬거리를 사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의 전화가 왔다.
"후다닥 나오느라 집을 정리 다 못했네"
".... (다 치우고 갔는데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지?).. 근데???"
"그런데 방이랑 거실 다 물걸레질 한 번 해야겠더라"
갑자기 두통이 생길 것 같다.
"아 몰라, 그냥 끊어"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내 상황은 절대 그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것 같다. 요새 내가 책을 쌓아두고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근본적인 이유 때문인가? 결국 나의 마음을 자주 들춰보는 방법뿐인 것 같다. 대화 상대를 인간으로만 상정하지 말고, 음악과 책, 글로 범위를 넓혀 내 심신을 가다듬은, 그런 제련의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나를 강철로 제련하기 위해서는 집콕과 사회생활 사이의 균형감각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러니 제발! 말 좀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