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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May 06. 2020

기다려라는 말로 달래지지 않는 것

시간을 유예하는 자는 모두 유죄

"그동안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나중에 하자 나중에.  자꾸 나중에, 나중에라고 했는데 막상 나중이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못된 보호자 같더라고요"



kbs tv '개는 훌륭하다'에서 강형욱이 했던 말이다. 그의 반려견 다올이가 아프다고 한다. 길면 1년,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방송으론 보진 못했지만, 올라온 글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올이한테 '기다려'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려줄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너져버리는 주인...



나는 반려견을 키운 적 없다. 큰언니가 키우던 토끼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울컥했던 게 전부였다. 토리는 온 집에 벽지를 긁어먹고, 전선도 갈아먹고, 뭐든 이로 긁어대던 토끼였다. 토리는 태어나서 얼마 안돼 우리 집으로 왔다. 왔을 때 분명 두 귀가 쫑긋 서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쪽 귀가 아래쪽으로 접혀있게 됐다. 장 속에서 온몸을 부딪혀 생긴 결과일까? 알 수 없지만, 토리는 이제 동화책에 나오는 귀쫑끗한 토끼가 아니다. 언니는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키우면서도 가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줄 몰랐다는 것이다. 나중에 토리가 사라지고 나서 생각했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단순히 처리해야 할 손이 많이 아는 게 아니라는 걸. 온 마음을 다해 키워야 한다. 동물들도 그걸 안다. 마치 아기처럼. 아기가 온 마음을 다해 엄마에게 웃음을 보여준다. 엄마는 힘을 내서 아기에 온 신경을 쓰게 된다. 애완동물들도 생존을 위해 주인에게 최선을 다한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된다. 토리도 점점 더 우리 가족이 되어있었다.



당시 가족 중에 토끼를 가장 반겨맞이했던 건 술에 취했던 아빠와 5살 된 조카였다. 아빠가 암수술을 하기 전, 시절의 이야기다. 가끔 취한 아빠는 토끼를 예뻐했다. 이 집안에서 자신을 가장 반겨주는 게 토끼뿐이라며 말이다. 토끼는 아빠를 잘 따랐고, 아빠도 토끼를 아이처럼 안아줬다. 동물을 내칠 수 없었던 엄마는 맘에 들진 않았지만 점점 토끼를 동거인으로 인정했다. 귀찮다고 내다 팔라고 했지만, 큰언니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주말마다 놀러 왔던 조카는 가장 먼저 토끼를 찾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놀이에 집중해 토끼의 존재를 가끔 잊는다. 하지만 토끼는 항상 사람들 주변을 맴돌고 싶어 한다.



그 뒤 언니가 방을 얻어 따로 나가 살았다. 그때 언니는 토끼에게 자유를 줬다. 토끼장 속에 갇혀있기보다는 방에 풀어놓는 것이다. 토끼는 답답했던 그 간의 기억을 날려버리고 자유롭게 놀았다. 온 집안의 벽지는 남아나지 않았지만, 토끼는 그나마 자유를 누렸다.



그리고 몇 년 후였을까?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토끼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고,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세상을 뜬 토리에 마음이 쓰였다. 주말에 조카가 왔다. 오자마자 토리를 찾았다. 언니는 조카가 집에 간 후, 울었다. 우리 토리를 생각해 주는 건 조카밖에 없다며...



존재의 흔적은 생각보다 깊다.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하나의 우주를 가꾸는 일이라고. 아이라는 우주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엄마는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 미진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엄마의 온 신경가지가 아이라는 우주를 감쌀 때 마음을 논다, 아이도, 엄마도.



아이에게 '기다려'라는 말을 할 때마다 불편했다. 기다려, 나중에...라고 말하고, 참으로라고 하고, 생각해보라고 하고, 멈추라고 하고, 아이의 행동을 자꾸 제지할 때마다, 아이는 답답해했다. 나중에 언제 해주냐며 소리를 치기도 했다. 기다리라는 말 말고 다른 대안이 없을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돌려 말한다고 진실이 감춰지는 건 아니니까. 아이는 진심을 알고 싶어 하지, 긍정과 부정의 어투를 구분하진 않는다.



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습을 불편해한다. 3살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7-8시간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듯이... 특히 어린 강아지는 다 크기도 전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나의 아이가 어릴 때부터 외롭다는 감정을 깨닫는 게 맘이 불편하듯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키운다는 건 손이 많이 간다는 의미이다. 관심도 많이 필요하다. 전에 살던 옆집 개, 토리는 주인인 할머니가 정성껏 키운 덕에 출중한 외모를 뽐내고 다녔다. 할머니는 매일 목욕을 시키고, 자주 미용실에 데려가 털을 정리 해 줬다. 새하얀 토리는 처음엔 우릴 보고 짖었지만, 얼마 안돼 더 이상 짖지 않았다. 첫째는 토리와 가까워지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아침마다 기웃거렸다.



그런데 주인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보였다. 심장부터 해서 안 해온 수술이 없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약을 달고 사는데 하루가 다르게 안색이 좋지 않다. 반면 토리는 건강하다. 밥도 잘 먹고 목소리도 우렁차다. 할머니와 토리가 문득 보고 싶다. 만약에 할머니가 먼저 다른 세상으로 가면, 토리는 어떻게 될까? 근처 사는 딸과 조카가 토리를 책임질까? 토리의 빈 마음은 무엇으로,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모든 생명의 빈자리는 사라지고 나서야 그 가치를 발휘한다.



떠난 사람의 흔적은 어느 순간, 어떤 물건이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갑자기 선명해진다. 관계의 끝이 어떻게 설정되었든 빈자리는 남는다. 옛 친구에 대한 기억이라든가 옛 남자 친구의 흔적들,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의 빈자리는 어느 순간 문득문득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 순간 지배된다. 아주 잠시 꿈을 꾸는 것처럼.



토리의 흔적은 큰언니 책상 아래에 남아있다. 마치 부조처럼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토리가 자주 쓰던 물건들과 말라비틀어진 채소와 과일 껍질들이 가끔 올려져 있다. 어쩜 언니는 의식적으로 토리를 기억하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작은 이별은 없다. 죽음이 주는 교훈이다. 어떤 죽음이든 감정을 뒤흔들고, 일상을 파괴한다. 산자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남아있는 만큼의 몫으로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눈앞의 존재들에게 더 이상 기다려라는 말을 하지 않기도 해 본다. 시간의 유예는 감정의 유예이자 사랑의 유예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현재 나와 관련된 소중한 존재들과의 시간이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눈에 잡히는 지금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인간은 태초부터 영원의 시간을 꿈꿨지만, 이미 길가메시의 생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았다. 시간은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간은 양으로 측정할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다. 100세 인생이라지만 모든 인간이 100수를 누리는 건 아니다.



지금의 시간을 유예하지 말자.

소중한 존재들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골몰하자는 것.이다.



나중에, 기다려, 이런 말은 내가 나에게도 많이 한다.

나중에 대학 가면 해,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즐기자... 등

시간의 유예는 존재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나의 시간들에게, 나의 마음에게, 나의 몸에게

어쩜 가장 많이 요구했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제발 하루를 충실하게 살기 위해 '기다려'라는 말은 되도록 삼가기로 한다.

기다려라는 말은 멈춰와도 같은 말 같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너의 행동을 멈추고,

잠시 서있으라고. 마치 신호 대기에 걸린 신호등처럼 잠시 인생을 유예하는 기분이 든다.

인생을 유예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자.

그리고 어떻게 즐길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도모해보자.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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