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곧 군입대와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
엄마이긴 엄마가 된 모양인데, 아직은 군대로 치면 이병은 지났고, 일병 정도 인듯하다. 첫째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둘째는 4살이니 갈길이 멀기 때문이다. 육아의 끝이 보이는 병장 말년의 친언니를 볼 때면, 나는 언제 병장 말년의 여유를 부려보다 싶다.
며칠 전, 첫째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잠깐 놀다간 그 이후, 첫째와 둘째는 뭔가 감정적으로 업이 된 상황. 집안은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었다. 어제는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숙제를 해야 하는데 책가방까지 다 들쑤셔 놓아 찾을 수가 없었다. 첫째에게 한 마디 했다.
"너는 더 이상 4, 5살 아이가 아니야"
첫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8살이야. 네가 놀고 난 후, 네가 치워야 해.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어지르고 놀아야 돼"
덧붙여 네 방에서만 노는 것도 좋다고 했더니 불만을 내뱉었다.
"내 방이 작은데 어떻게 놀아"
볼 멘 소리를 내면서 삐쳐버렸다. 이후 첫째는 계속 '치, 치, 치'를 연발하며 내게 불만을 표시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잠시 감정을 잠재운다. 나는 매일매일 어질러진 흩어져있는 집안 물건들을 같은 장소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 않은가! 군대에서 관물대 정리하듯 하루도 쉬면 안 된다는 거 이 정도야 인이 박힐 정도로 많이 해보지 않았나. 욱하는 마음을 꿀꺽 삼킨다.
그러다 저녁밥을 먹으며 첫째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이제 저런 밥은 싫어. 새로운 밥"
아이는 흰쌀밥을 싫어한다. 매일 먹어서 질린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밥해줘야 할지 매번 고민한다. 볶음밥에 질리면, 간장, 쌈장, 소금에 비벼 먹기도 하고, 가끔 나오는 군대리아 버거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나 면요리로 대처한다. 물론 이 역시 자주 쓰면 안 먹힌다. 짠 밥처럼 누가 매일매일 밥을 해주면 좋겠다만, 나는 우리 집의 취사병이다. 내가 짠 밥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거야말로 정말 어려운 임무이다. ㅠㅠ
언젠가 새벽에 거실로 나와 부엌 테이블에 앉아 일을 하는데, 두 아이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리며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화생방 훈련받다가 눈물 쏟는 것처럼 애들이 뛰쳐나왔다.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둘을 달래 다시 잠을 재웠다. 새삼 깨닫는다. 나는 우리 집 안전을 수호하는 보초병이다. 나라 지키기가 군인의 사명(?)이라면 나는 이 두 아이가 잘 클 때까지 보초를 서야 한다. 아이들이 울며 엄마를 찾을 땐 뭉클하기도 하다. 어린 두 아들이 엄마에게 기대어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모습이니 말이다.
이런 인식을 하다가도 가끔 우울해지도 하다. 나의 노동으로 집안이 정리되고, 하루를 또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그런 공간으로 매일매일 재창조된다면, 이보다 유익한 노동은 없을 텐데 나는 왜 아직도 이리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여전히 내게 엄마라는 역할을 잘 맞지 않는 걸까? 다음 무대에 오르면, 엄마 말고 비혼녀로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잠든 두 아이의 표정을 보면, 또 그렇게 마음을 누그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하고 싶다. 육아 병장 말년의 기분은 어떨까? 시원섭섭할까? 마냥 신날까? 이 또한 나의 마음에 달려있는 거겠지만, 아쉬움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기분을 빨리 느끼고 싶다가도 또 더디게 찾아와도 좋겠다는 이중적인 감정... 많은 엄마들도 느끼지 않을까? 애들이 빨리 크길 바라면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린 기분 말이다.
언젠가 육아를 제대하게 되면, 나란 존재를 탐색하고, 또 키워나갈까 막막해하겠지. 하여, 그 준비를 미리미리 해두지 않으면, 나는 텅 빈 둥지를 보면서 허전한 마음에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다. 여전히 엄마와 나란 존재가 양립할 수 있도록 중립을 지켜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