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의 쓸모

성에, 또는 드라이아이스에 대하여

어느 한 시절에 대한 기억

by 델리러브


내가 말했다. 더는 너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내가 선언했다. 더는 너에게 선언하지 않겠다고.

너는 이게 무슨 말장난이냐며 화를 내고,

나는 너에게 처음으로 등을 보였다.


너는 나의 등에 낀 성에 덩어리들을

맨손으로 만지다 화끈거린다고 했다.


세상에 나오는 순간,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삶을 열망했던 나

어쩜 내 안은 함부로 만질 수 없는 드라이아이스일지도 몰라

돌아서는 나를 향해 차가워도 좋으니 형체로 남아달라고 애원하는 너.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너를 멀리하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너에게 곧 사라질 터이니


하얀 김을 내뿜은 어느 겨울,

너인지 겨울인지 모를 그 때가 올거라고 악담을 했다.

밤눈은 이가 시리도록 치를 떨리게 할 것이라고 했다.


너를 보내고 돌아서 오는 길.

도시를 지키는 건 길냥이들 뿐일지 몰라.

길냥이들이 지배하는 밤의 시간대로 진입하는 순간,

나를 가로막은 울음소리.

누군가 숨죽여 우는 건지 마는건지 알 수 없는,

주술처럼 울음을 외우고 있다.


마치 이슬람 사원의 아잔처럼 규격화된 울음소리는

박스 안에서 바스락대는 길냥이의 움직임과 비슷했다.


몸으로 울 수도 있는 거지


나는 반동하는 검은 그림자를 찾아 주변을 둘러본다.


그곳에서 어쩜 웅크리고 있을 너를 찾고 있을지도 몰라.

가끔 너는 술에 취해 길에서 똬리를 틀 듯

몸을 동글게 말아 잠을 자기도 했잖아.

다리에 쥐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나는 그때 너에게 핀잔을 줬지


길냥이의 저린 몸을 주물러 주고 싶은데,

그럼에도 바이러스가 무섭다는 생각을 하는 이기심

어차피 이 생에서 연기처럼 사라질지로 모르는데


나의 과대망상이

나를 구름 위로 둥둥 띄웠다고 생각하는 너에게

나는 한 없이 가벼워진 것일 뿐 망상이 아니라고 응답했다.


나의 응답이 너에겐 답이 되지 못한 시절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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