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다른 형제가 복숭아를 대하는 자세
천도복숭아에 빠진 녀석들이 어느 날 미황이란 품종의 금복숭아, 즉 황도를 사 왔을 때 앉은자리에서 1인당 두 개씩 먹어치웠다. 하나 더 먹는걸 저녁 먹어야 하니 말렸다. 그때부터 복숭아에 대한 두 놈들의 광기가 시작됐다. 첫째는 원래 황도를 좋아했다. 그런데 하우스가 아닌 이상, 황도는 원래 복숭아 품종 중에 가장 늦게 수확한다. 세상 좋아져 이제는 황도가 빨리 출시됐다. 황도는 금방 물러 단단한 과육을 잘 골라내야 한다. 숙성이 금방 되고, 물러지면 벌레도 생기기 때문에 동네 마트에서는 품질 떨어진다. 동네보다는 조금 더 큰 마트에서 구매해야 한다. 구매자가 많으면 새물건이 바로바로 들어오는 원리이다.
집에서는 버스 두 정거장 지나는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 황도가 판다. 그나마 이곳이 가장 품질이 좋다. 백도는 멀진 않지만 차를 타고 가야 갈 수 있는 하나로마트에서 구매하는 것이 좋다. 가장 싱싱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 이제는 동네 마트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이미 두 놈들은 거의 최상급의 복숭아를 맛봤고, 입맛의 수준이 조선시대 임금님 못지않아 과일 중에서도 가장 성하고 잘 익은 놈들을 골라 진상(?)한다.
첫째는 황도를 먹은 다음날 사온 백도에 빠졌다. 둘째의 입맛은 황도에서 백도로 아직 넘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됐다. 황도도 먹고 싶고, 백도도 먹고 싶은 첫째와 황도는 오직 자신만이 먹을 수 있다고 고집 피우는 둘째 사이에서 팽팽한 접전이 시작된다. 원래 먹는 속도가 느린 첫째지만, 복숭아만큼은 스피디하게 입안으로 직행시킨다. 백도 한 접시를 다 먹고 나면, 놀면서 빈둥대며 먹는 둘째의 황도를 노린다. 하지만 둘째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절대 안 된다고 불호령을 내리고, 첫째는 계속 먹겠다며 장난친다. 이때 접시 간의 간극을 만들어 갈등을 잠재우려고 한다. 하지만 둘째의 손에 들려진 포크는 무기용 삼지창 용도로 바뀐다. 둘 다 칼싸움하듯 황도 쟁탈전에 나서고, 첫째가 황도 하나를 찍어 입속으로 직행하는 순간. 둘째의 울음보가 터졌다. 황도 때문에 자주 터진다.
품종에 예민한 입맛을 가진 아이들에게 과일을 대는 일에 지친 엄마. 그래도 사건 수습을 위해 몇 개 남지 않은 황도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두 놈의 입맛처럼 까칠한 복숭아의 털을 물에 뽀드득뽀드득 씻는다. 말랑말랑한 과육이 물러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힘 조절이 필요하다. 복숭아 껍질 같은 약간의 질김도 허용하지 않는 두 놈의 입맛에 맞춰 껍질을 살살살 벗겨낸다. 사과처럼 팍팍 힘줘 깎을 수 없다. 최대한 얇게 벗겨내야 한다. 과육 손실을 막기 위한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먹기 좋게 자른다. 이때 주의사항은 씨 부분의 단단한 과육이 같이 잘리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은 이것이 마치 이물질이라도 된 듯 바로 뱉어낸다. 굴비의 작은 가시도 입안에서 걸러내는 놀라운 거름망이 달린 놈들이다.
그렇게 해서 황도 하나가 접시에 올려지고 첫째는 바로 황도를 저격한다. 둘째는 자신의 접시에 놓은 황도를 사수하느라 최대한의 방어력을 발휘해 지켜낸다. 순식간에 접시에서 사라지는 복숭아. 하루에 1인당 4개 이상을 섭취하니 박스채 구입해야 할 정도이고, 과일값으로 인한 올여름 엥겔지수는 올라가겠구나 생각한다. 사탕, 과자, 아이스크림에 빠지기 보만 복숭아에 빠졌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복숭아를 배불리 먹고도 아이스크림을 찾는 두 녀석들. 밥양은 많지 않으나 과일 배, 아이스크림 배가 각각 따로 있는 두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복숭아를 사러 또 언제 가야 하나 시간을 재고, 분량을 체크하는 여름날.
이렇게 나의 여름날은 복숭아 향으로 시작한다. 향기롭고 달콤한 향 때문에 벌레들도 그냥 지날 칠 수 없는 복숭아 홀릭이 시작됐다. 나는 배불리 못 먹어도 아이들만큼 배불리 먹이기 위해 복숭아 몇입 먹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 엄마가 생선 머리만 먹는 것처럼 그런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나도 엄마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