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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l 06. 2021

아이가 생애 첫 가출을 했다

엄마는 벌써부터 너의 사춘기가 두렵구나

아이가 집을 나갔다. 형제의 난에 끝은 결국 첫째의 가출이었던 것. 시간을 되집어본다. 아이는 어디서부터 단단히 뿔이 난 걸까. 집을 나가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는 어떤 심정으로 집 밖에 있었던 걸까.


학교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두 녀석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장난감 활이 칼이 되어 칼싸움을 한다. 내내 고성이 오가고 결국 힘에서 밀린 둘째가 우는 형국에 치닷는다. 그러다 보니 둘째는 형이 다가오는 순간, 소리부터 지른다. 더 다가오면 물기도 한다. 최후의 발악인 것이다. 장난기가 심한 첫째는 일부러 더 다가가 공격하는 시늉을 하고, 맞지 않아도 그 공포감에 둘째의 울음은 서럽게 폭발한다.



나는 어느 선에서 지켜보다 결국 개입을 한다. 첫째에게 상대방이 하지 말라고 하면, 거기서 멈춰야 된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첫째는 뿔이 단단히 났다. 계속 반복되는 공격과 울음의 교차. 결국 둘째가 계속해서 울음을 터트리니 달래느라 내내 옆에 붙어있었더니 첫째가 화가 났다. 그러다 폭탄선언을 한다.



"나 집 나갈 거야. 찾지 마"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가출을 선언했다.  온갖 짐들을 가방에 집어넣는다. 가방에 채 들어갈 수 없는 물건들은 일일이 하나씩 현관 앞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일단 가만 지켜보기로 했다. 불만이 거센 쓰나미처럼 몰려든 아이를 순식간에 잠재울 묘안이란 없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길래 물어봤다.


"마스크는?"

"집 앞에 있을 건데 필요해?"

"집 앞 어디?"

"여기"



집 앞, 그러니까 현관 바로 앞에 있겠다는 거였다. 문을 닫고 현관 앞에서 뭐하나 궁금했는데 기타 소리가 들린다. 장난감 기타에서 나오는 구슬픈 선율. 아이의 심경을 담은 소리가 울린다. 내 생애 이렇게 구슬픈 연주는 난생처음이다^^;;;;;. 아이의 울분이 선율을 타고 집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다시 벨이 울린다. 현관 벨을 자꾸 울리는데 의도가 뭘까 궁금했다. 일단 문을 열고 나가니 공책에 숫자 쓰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닫으라고 소리쳤다. 관심을 끌기 위함인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문을 닫으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몇 분 후 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등을 가지러 왔다는 것이다. 현관 앞 등이 켜졌다 꺼지면서 어두워지니 전등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또 몇 분을 현관 벨을 또 누른다. 나가면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엄마를 응시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 말라고 해서 화가 난 걸까? 왜 화가 난 걸까?'



정확하게 아이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30분도 못되어 아이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온갖 잡동사니들을 거실입구에 쌓아두고는 잠시 티브이 시청을 했다. 그 사이는 아이와 아침에 한 약속대로 과일 샐러드를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과일을 자르기 시작하다 두 녀석들이 나타나 서로 같이 하자고 난리가 났다. 썰 수 있는 크기로 다듬어 각자 배분시킨다.


또 둘째가 울기 시작했다. 양식용 칼로 너무 과하게 힘을 주니 손끝을 찌른 모양이다. 약간의 피도 나온다. 밴드를 가져와 얼른 수습해주고 달래고 있었는데 첫째의 볼멘소리가 또 터져 나왔다.



"나 집 나갔다 들어왔는데 관심 안 가져줄 거야? 그럼 또 나간다"

"그럼 엄마가 계속 있어야 돼?"

"어. 옆에 계속 있어, 나 하는 거 계속 봐"



결론적으론 아이는 30분이 못돼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에겐 관심이 필요했던 것. 가출을 통해 자신을 봐달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아이의 불만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떻게 불이 지펴졌는지 이제 이해가 갔다.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정말 어렵다.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다. 둘은 모두 성향이 달리 화의 뿌리를 찾다가 헤매기 일쑤이다. 그런데 오늘은 명확히 알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형제의 난을 지헤롭게 해결하는 방법은 오은영 박사님의 조언대로 둘 다 억울한 일 없이 끝나야 한다는 것. 첫째는 엄마의 태도에 수긍할 수 없었고 억울함만 쌓였던 것이다. 자신만 공격한 게 아니라 동생도 자기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상황을 들어줬어야 하는데 나는 둘째의 울음을 달래는데 초집중한 것이다.



아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반성을 한다. 그럼에도 좀 두려워진다. 이 아이와 나는 무사히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을까. 이미 가출(?) 전력이 있는 아이인데... 다만 멀리 떠나지만 말아달라고 기도해본다.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떠날 때 분한 감정이 아닌, 자신의 독립의지를 발현해 자연스럽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가족이니까, 엄마니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고 아이가 느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좀 더 드넓은 들이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들판은 바람에 흔들대지만, 그 자리를 뜨지 않는다. 온 세월 그 자리를 지킨다. 잔잔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속삭이다. 들판이 하는 말은 매번 동일했다.



"괜찮다"



들판의 밀어를 해독한 후, 나에게 필요한 건 포용력과 감정조절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여러 감정들이 오고 거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아이의 가출 시 필요 목록들.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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