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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ug 11. 2021

육아의 시간은 빠르게 흐를 것이니

아이에게 배우는 마음수련법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아이는 동네 작은 계곡에 놀러 가기 전날, 비가 올까 걱정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을 바꿔 이내 비에 촉촉이 젖어도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나타날 수 있으니 상관없다고 했다. 비가 와도, 비가 안 와도 계곡으로 놀러 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다. 사실 대단한 계곡도 아니고, 도심 속 공원에 작은 계곡이지만, 아이는 가기 전날부터 신이 났다. 


난 아이의 이런 면이 참 맘에 든다. 부정적인 인식이 기반으로 깔려있는 나는, 예민한 아들에게도 이런 나의 에너지가 드리울까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엄마를 닮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엄마 우리 여기 이사오길 잘했어"

"엄마 우리 여기 놀러 오길 잘했어"

"엄마 우리 이거 하길 잘했어"



학기 초,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조하면서 했던 말을 활용한 것이다.



"엄마, 선생님이 7반 되길 잘했대. 7반에서는 앞으로 책 좋아하게 될 거래."



그리하여 곤충을 잡으면서, 뭔가를 하면서도 지금 집으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말을 참 많이 쓴다. 더불어  나나는 동네가 좀 맘에 들지 않아도 이사를 꿈꿀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나의 몸 상태는 걷지 못해 생기는 병인가 싶을 정도로 아프다. 아마도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의 부채 의식에서 발현된 것 같다.  무수히 산재된 다양한 일거리들 앞에서 무기력하게 유튜브에 의지하고 있는 걸 보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의미 없이 쓸 수 있는지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 같은 게 작동한 것 같다. 이는 마음이 안정을 찾지 못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하며 마음을 다진다. 며칠간 친정집에 잠시 있다. 이곳에선 매미 소리에 맞춰 명상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매미 소리가 비처럼, 바람처럼 쏟아지는 곳이다. 도시의 곤충들은 결국 아파트 숲으로 몰려들기 마련이다. 차 소리나 사람 소리보다 매미 소리는 원초적인 감각을 일깨워준다.



그러다 깨닫는다. 숨이 막힐 것 같아 미칠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내 안의 우울감을.  나는 나를 옥죄는 모든 것들에서 해방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육아의 시간이 빠르게 스쳐간다. 약간의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다. 하지만  시간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그것은 어쩜 지나온 나의 과거일지도 모른다. 내 과거들이 쓸쓸하게 저무는 광경을 온전히 내 시야에 담는다. 다만 사라져 간 내 시간의 궤적들. 그  안에서 육아로 쏟아부은 시간은 불과 10년도 안됐는데 나는 백 년도 더 산 사람처럼 신음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처럼 긍정의 시선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 때론 아이처럼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단조로운 일상이 내게 얼마나 맞지 않는  옷인지 이제 깨닫는다. 그렇다고 나의 상황을 부정할 순 없는 법.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변화를 꿈꾸는 이중적인 마음 상태를 인정한다. 내 마음이 그렇다. 



하지만 마음은 온전히 내가 될 수없다. 마음은 감정과 더 가깝고 이성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니 나의 마음에 내가 너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그저 물 흐르듯 흘려보내도 좋지 않은가. 아이처럼 단지 지금 상황이 내게 최선이고 최고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리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아이를 돌보며 비록 내게 귀 기울이는 시간은 대폭 줄었지만,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니까. 나만 바라보며 사는 생이 더 단조로울 수 있다.



매미 소리가 요란한 친정집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아이는 여전했다. 집도 좋고, 할머니 집도 좋은 아이. 집이든 할머니 집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삶의 즐거움이란 스스로 불을 지피는 것. 너무 뜨겁지도, 너무 시들시들하지도 않게 적당히 지금의 생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그 즐거움에 때론 푹 빠져 지내는  시간들 속에서 내가 있다는 것을 아이는 벌써 아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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