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조율과 나의 미래
시간과의 사투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매번 지고 이기고를 반복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왜 그렇게 시간이 없다고 입에 달고 사는 걸까? 시간이 없다는 건은 불분명한 문장이다. 정확한 주어가 필요하다. 바로 내 시간이 없다- 이것이다. 육아의 시간은 길다. 어떨 때는 끝나지 않는 것 같고, 시간은 왜 이리 내게 모진가에 대해 한탄도 했었다. 결국 나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것이다. 나 혼자 호흡하고, 나 혼자 빈둥빈둥할 시간, 그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육아병은 바로 혼자 있지 못해 생긴 병이라고 결론 내렸다.
혼자만의 시간이 유독 필요한 사람이 있다. 20대 시절, 나는 사회친화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 쏟아붓고 나면,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주말 혹은 공강 시간 중간, 자체 휴강하던 어느 날, 홀로 극장을 자주 찾았다. 신촌에 있는 시네마 카페에서 아이스 녹차를 시키고 홀로 영화 '러브레터'(개봉 전)를 보았고, 지금은 사라진 코아아트홀과 씨네코아는 내 단골 극장이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좋았다. 그리고 감정이 내키면 그 즉시 표를 끊어 영화를 보았다. 러브레터가 첫 개봉하던 날, 볼까 말까 고민하다 종로를 지나는 순간 불현듯 표를 끊어 극장 맨 앞자리에서 보았다. 영화는 불현듯 내게 찾아오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므로 나는 그 순간을 매우 아꼈다. 대부분 블록버스터 영화나 흥행률 상위 랭크한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보지만, 아트영화는 대부분 혼자 봤다. 가끔 나의 노선과 비슷한 경우 같이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혼자 영화를 보는 게 좋다.
그런데 2014년 이후, 나의 영화 연대기는 끝이 나버렸다. 도통 영화가 눈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 중 가장 큰 난제였다. 내 영혼을 탈탈 털어 아이에게 옮기는 작업이다. 내 영혼과 아이의 영혼이 만나 엄마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형성되기에 한곳에 집중하기 바빴다.
결국 나는 내 삶에 시들시들해졌다. 엄마로서의 삶은 연명 중이었으나 나의 삶은 시든 화초처럼 시들시들해져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실로 내가 얼마나 불행한가를 실감하게 했다. 나는 살아오는 과정 내내 뭔가에 홀릭해있었다. 어릴 때부터 연예인, 스포츠, 음악, 라디오, 문학 등에 빠져 그곳의 세계에 집중했다. 그런데 내 삶에서 그 부분만 도려낸 것 같다. 나만의 흥미, 나의 특기,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게 뭘까? 그게 뭐였지?
아이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에만 집중하다 보니 나란 존재를 희미해지고, 점점 나란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시간도 소멸되기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스케치된 풍경 속에서 멀리 소실점으로만 남은 나의 욕망. 그 욕망을 발견하기 위해 새로운 작업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내 시간을 가져와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가져와야 하나.
아이들에게 쓰는 시간에서 뺏았는 게 아니다. 그건 내 불안과 엄마라는 역할 속의 욕망 안에서 가져와야 한다. 툴툴 털어도 되는 미래에 대한 잡념, 아이에 대한 고민, 경제적인 불안 등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 시간에 허비하는 내 감정을 더 이상 소비하는 것에서 멈춰야 한다. 감정을 멈추면, 내 시간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고기 한 덩어리가 통째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국거리나 찌개용으로 잘린 작은 네모난 큐브 모양의 시간이다. 그리고 나의 임무는 이 큐브를 끼워 맞추는 것이다. 큐브 놀이를 하듯 내 시간을 만든다. 하루의 시간 중 내가 날아온 큐브조각을 의미 있게 쓰면 된다. 사전에 마음 가짐을 하지 않으면 큐브조각을 발견하는 건 꽤 어려운 작업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힘들었다. 하교 후 곤충채집을 하는 첫째와 함께 온갖 채집용 장비와 둘째까지 끌고 다니니 몸에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나는 점점 기력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코로나도 심각해지면서 둘째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고, 첫째는 방학을 했다. 방학을 했지만 돌봄 교실을 나갈 수 있었던 첫째가 어느 날 눈에 다래끼가 나면서 일주일간 나가지 않았고, 그다음 주는 돌봄 방학이었다. 결국 나는 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내 모든 감정들을 소진했다. 그 어디에서도 큐브 조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큐브조각이 작게나마 주어지긴 했지만, 나는 체력 비축이란 이유로 큐브를 모으지 않았다. 온 정신으로는 내일을 맞이할 수 없었고, 잠에 쓰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잠 속을 헤맸다.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밤을 보냈다. 결국 피로는 누적되고 나는 현기증을 호소했다. 모든 시간을 날려버리고, 내게 온 잠깐의 큐브조각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는 제로상태. 제로가 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한때나마 큐브 놀이를 해봤으므로 어느 정도 맞출 자신이 있다는 것. 다시 하면 되니까 괜찮다.
요새 자주 80년대 감성팔이 중인데 그때 떠다니던 기표들이 지금의 내가 새로운 기의를 부여하는 작업 중이다. 하나씩 80년대 기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80년대 감성들이 내게 준 기호는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어떤 결이기도 하고, 색감이기도 하고, 무형의 감정들이다. 그 시간들과 큐브 놀이를 하면서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또 오늘 열심히 생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견고하게 틀을 만들진 않을 것이다. 틀은 고정된 것, 고정된 틀 안에선 창의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내 지나온 경험에 의하면 그랬다. 내겐 틀이 맞지 않다는 것을. 나란 인간에겐 틀보다는 적당한 틀, 이를 테면 느슨한 가두리 양식장의 틀 같은 것이다. 양식장에서 가끔 이탈하는 광어가 바다를 휘저어 새로운 생을 사는, 그런 반짝이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정주민과 유목민 사이라고 말하면 뭐하지만, 내 감정의 지분은 대부분 유목민에 가깝다. 유목민의 정서에서 줄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고는 자유롭게, 시간은 탄탄하게. 그런 시간들이 내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