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안 가서 마냥 신 난 둘째
코로나로 다들 힘들다고 하는 시국에 우리 집엔 코로나로 재미를 보고 있는 최대 수혜자가 있다. 올여름 밖에서 곤충 채집을 하며 놀다가 마스크를 쓴 볼 부분만 하얀 요 아이. 올해 4살 된 둘째다.
유독 어린이집 가는 걸 싫어해 아침마다 평화 모드가 불가능한 집이었는데 코로나가 심각해질 때마다 보내지 않았더니 눈을 뜨면 해맑게 웃는다. 작년 겨울, 코로나가 심해질 때 쉬다가 다시 올 3월부터 보냈는데 올해 7월부터 코로나 4단계 격상 후 보내지 않게 되었다. 4개월간의 어린이집 생활에 이제 적응이 됐나 싶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시간을 내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부족하다, 언제 집에 들어오냐고 물었다. 남편은 특히 8월부터는 너무 바빠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하숙생처럼 잠깐 왔다 가니 육아며 집안일은 나 홀로 해야 했다. 그런데 끝마쳐야 할 원고가 있었다. 일할 시간은 분단위로 쪼개져 나오니 도저히 완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한 마디 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어때?"
나는 일단 그건 모르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남편 말대로 둘째를 어린이집 보내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첫째는 방학 중이지만 돌봄이 가능했고, 곧 개학이니 그나마 괜찮다. 둘째는 종일 엄마 옆에 붙어 있으니 나의 시간은 안드로메다 어딘가에서 헤매서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린이집에 가자, 당장은 아니지만 이제 곧 가야 한다고 했더니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왜 가야 하는데"
엉엉엉.... 울다 지쳐 일찍 낮잠에 드신 둘째.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며 서럽게 울어댔다.
결국 나의 의지로 해결하는 방법뿐일까? 하지만 밤마다 아이들 재우고 일해야지라고 다 김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일단 새벽 기상도 5시에서 5시 반으로 밀린 상태. 졸리고 졸린 몸, 피곤에 쩌든 몸으로 새벽 기상도 겨우겨우 실행 중이다. 그런데 밤에 일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의지력 문제가 아니까. 잠을 자야 에너지를 충전시켜 내일이란 시간을 버틸 수 있으니까.
의지력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나를 자책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나를 부정하고, 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정은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님을 안다. 사실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글 쓰는 시간은 나와의 소통이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갑의 의도에 맞게 윤색하는 작업이다. 나 혼자, 나의 만족감으로 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시간이 많이 든다. 결국 일을 한다는 건 어느 정도 시간의 할당량이 필요하다. 그것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번처럼 낯선 장르의 일은 더욱 그랬다. 일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 중요하고, 환경설정의 많은 지분이 일할 시간이다.
하지만 둘째는 요지부동이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 어린이집을 당장 보낼 수는 없었다. 이것 역시 환경 설정이 필요하다. 오늘부터 달력에 체크를 하고, 아이에게 주지 시켜야 한다. 예를 들러 9월부터 너는 어린이집 가야 한다라고, 사전 예고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아이는 전처럼 매번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쓸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나의 꼬인 스텝에 대부분의 이유인 코로나19의 상황이다. 더 심각해지지 않길 바라며 확진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길 바랄 뿐이다. 4단계가 아닌 단계도 떨어지면, 그때 되면 좀 더 마음 편하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이래저래 아이도 싫고, 나도 불안한 건 사실임은 분명하다.
그나저나 코로나로 인해 아이도 힘들 것 같다. 행동 제약이 많으니 이래저래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맘껏 놀 수 있는 집 말고 또 맘 편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맘이 짠해진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지 4년째. 그 절반 가까운 시간을 마스크와 함께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이집을 가지 않아 수혜를 입은 건 분명 하나 놀이적인 측면에서 코로나는 분명 아이들의 성장을 발목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