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이의 예민한 감정, 그 울음에 의미에 대해
4살 때 구입한 킥보드는 이제 닳고 닳아 탈 때마다 굉음 소리가 난다. 어느 날, 하굣길에 아이는 새로운 킥보드를 구입해야겠다고 말했다. 바퀴가 많이 깨진 것 같다면서 킥보드 교체 시기에 대해 그제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4살 때부터 타기 시작해 지금 8살이 되었으니 오래도 탔다. 4살 때는 그다지 많이 타지 않았는데 5살 때부터 줄기차게 타기 시작한 주황생 킥보드. 특히 지금 동네로 이사 오면서 킥보드는 아이의 전용 이동수단이 되었다. 흐리거나 맑은 날이거나 유치원 등 하원의 동반자가 되어준 킥보드가 삐걱거리기 시작하자 나는 조만간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아이가 킥보드를 새로 사야겠다고 했던 그날 밤, 아이와 함께 새로운 킥보드를 고르려 했던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섰다. 아이는 지금 쓰는 킥보드와 똑같은 제품을 원했다. 그러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 킥보드 버리지 마. 버리지 마"
새로운 킥보드가 와도 지금 킥보드를 쓰겠다는 것이다. 기분에 따라 새것과 헌것 사이에서 매번 고르겠다는 의지였다. 나는 고민이 되었다. 8살이니 이젠 유아용이 아닌 주니어용으로 골라야 하는데 지금 쓰는 킥보드를 그대로 구입하는 게 맞는지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킥보드 구입을 유보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맛, 새로운 옷과 신발 등 아이는 유독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요한다. 낯선 것들에 대해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에 힘들어한다. 그런 줄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는 요새 울음이 잦아졌다. 작은 일에도 강렬하게 반응하며 운다. 감정 상태가 예민해진 것 같다. 그러면서 새로운 물건 구입에 대해 회의적인 경우가 많아졌다.
즐겨보던 책에 밥풀이 떨어져(본인이 밥 먹으며 책 보는 습관 때문에 벌어진 일) 눌어붙는 바람에 책 안에 살짝 흠집이 났다. 아이는 새책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나는 다른 부분은 너무 멀쩡해서 새책을 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이는 책이 찍어져 속상했고, 그 감정을 계속 울음으로 표현했다. 울음에도 수위가 있는 법, 대성통곡에 가까운 울음이라 상위 레벨에 속하는 울음이다.
결국 이번에는 사는데 동일하지만, 다음번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절대 새로 사지 않을 것이고 얘기했다. 앞으로 밥 먹을 때 책을 보는 습관부터 고민해보자라고 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자마자 알겠다고 하더니 지금 책을 어떻게 하지 물어봤다.
"알라딘에 팔까?"
나의 이 한 마디에 아이는 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밥 먹을 때 볼 거고, 새책은 밥 안 먹을 때 볼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책을 옷장 속에 꼭꼭 숨겨놨다. 자기가 없는 사이 엄마가 팔까 걱정이 된다면서 말이다. 이것은 강박증인가 결벽증인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린 시절, 나를 떠올리며 유사점을 발견하고는 일단 마음을 추슬렀다. 나 역시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과거에 대한 강한 향수로 살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과거를 그리워했던, 과거지향형 인물이었던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이니 나라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감정의 격동기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의 마음은 연골과 같아 지금 한창 성장 중인가 보다. 영원을 꿈꾸는 이 아이는 이사도 싫고, 지금 집에서 오래 살길 바라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들이 많은 변화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급변하는 환경에 아이의 불안도는 높아질 것이다. 예민한 촉수를 이런 식으로 키워하는 걸까. 아이의 마음 성장판이 아마도 급격하게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개학 후, 다시 만난 친구들과 놀다가 삑사리도 난다. 그동안 다른 주파수 영역대에서 놀다가 어긋나는 것 같다. 학교 알림장에도 선생님이 쓴 글에도 아이들이 개학 후 어색한지 처음엔 낯을 가리는 것 같다고 써놨다. 자주 봐야 친해지는 법인데 근 한 달간 만나지 못했으니 아이들도 어색한 모양이다. 그 와중에 우리 아이는 또 얼마나 어색해했을까.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래 아이들과 노는 모습에서 가끔 배회하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관계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스스로 이 격동의 파도를 딛고 물살에 몸을 맡겨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파도를 서빙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오르락내리락하는가. 그런 시간들 속에서 아이도 성장하겠지. 나의 내향적이고 예민한 면모를 이어받은 아이가 나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아이는 엄마보다 좀 더 경쾌하게 파도를 가르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부모로서 옆에서 지켜봐 주고 지지해줘야 한 것 말고는 없지만,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 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할 때 또 일이 발생했다.
"엄마 큰일 났어"
아이가 또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 애적이(애사슴벌레) 죽었어"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실컷 울게 내버려 뒀다. 엄마의 역할이란 아이가 슬픔에 기꺼이 가슴을 내어주는 것이겠지. 아이는 슬픔이란 감정에 자주 직면하면서 그 슬픔의 결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크면서 아이가 느낄 슬픔과 비통함, 애절함, 회환 등의 여러 감정을 깨닫게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성장이란 관문을 통과하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지만, 엄마로서는 안쓰럽기 그지없다. 평생 엄마의 아이로, 아기로 그대로 멈춰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평생 아기를 키우는 마음으로 엄마가 세상 모든 고통들을 막아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물론 이런 상상에 불과하고, 그 사이는 아이는 이미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세상 속에 발을 디딘 아이를 지지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엄마의 역할이 한, 부모의 역할이란 아이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다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의 성공적인 독립을 위해 엄마는 서서히 하나씩 아이에게서 손을 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오늘도 아이의 등교를 준비하면서 나는 아이와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젠가 완전히 내 품 안에서 멀어질 그날이 오겠지만, 그만큼 우리는 또 어떤 면에서 가까워져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