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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ug 28. 2021

우리 집에 엄마를 좋아하는 남자가 하나 있다고?

둘째의 달콤한 고백, 달달한 기쁨

둘째는 말을 잘한다. 그냥 말을 잘한다로 표현하긴 어렵다. 말의 뉘앙스를 잘 활용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아침부터 둘째가 남자, 여자 구분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자야?"

"아빠는 남자야?"

"형아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

"우리 집엔 왜 여자가 별로 없어?"


질문 공세를 하다가 한 마디 한다.


"우리 집에 엄마를 좋아하는 남자가 하나 있어"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물어봤다.



"누구?"

"바로 나야"


마흔 넘어 아이에게 받은 고백에 심쿵한다. 이렇게 스윗한 고백을 도대체 얼마만 해 받아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 안 간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둘째와 온종일 붙어있다 보니 엄마 껌딱지가 되어버렸다. 원숭이처럼 엄마한테 잘 매달린다고 하니 내 다리 하나 붙잡고 대롱대롱 잘 매달린다. 둘째는 뽀뽀도 잘해주고, 틈만 나면 엄마 좋아를 연발한다. 이런 스윗한 놈을 보았나.



그러더니 어제는 "엄마 너무 좋아"라며 좋아 앞에 부사를 하나 더 붙여줬다. 아이의 말이 나는 매번 놀랍고 신비롭다. 폭풍우가 오기 직전, 첫째를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가 한 마디한다.



"엄마! 나뭇잎이 위험한 데로 가고 있어"


그러고 보니 도로 한가운데로 나뭇잎 하나가 대굴대굴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또 한 마디 한다.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슅틈이 또 한 마디 한다.


"초식동물들이 먹을 거야"


아이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있을까. 가끔 이런 표현을 들을 때면 아이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그럼에도 아이에겐 말조심을 해야 한다. 둘째 언니와 통화하다가 아이가 물어봤다.


"작은 이모 몇 살이냐고 물어봐줘"


언니는

"이모는 4살이야."라고 답했다.


아이는 이 말을 깊이 새겨두고 있었나 보다. 놀다가 내게 한 마디 한다.


"엄마, 작은 이모 나랑 나이 비슷하지?"


이모의 장난이 진짜인 줄 아는 꼬마 귀염둥이. 가끔 아이의 말을 수집하다 보면 그 말들엔 그늘이 없어 눈이 부실 정도이다. 


4살 아이에게 말이란 어떤 의미일까? 종일 궁금한 점에 대해 왜?라고 묻는 통에 가끔 진이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가끔 되묻기고 한다. 남편이 아이와 얘기하다가 아이의 말에 되물었다. 


"아빠 왜 니이가 많아? 왜?"

"은준이는 어떻게 4살 됐어?"


아이가 당연하다는 듯, 그것도 모르냐는 듯 한 마디 한다.


"떡국 먹었잖아"


어른들이 애들에게 하는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둔 둘째. 떡국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진짜로 받아들인 아이. 아이의 말에 웃고, 심쿵하고, 놀라기도 한다. 4살 아이만의 특권일 것 같다. 5살만 되어도 좀 더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아이가 내게 주는 이런 기쁨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수집해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의 언어는 명암도 많고, 불분명할 때가 있어 그 의미를 간파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이의 언어를 떠올려본다. 언어가 순수하게 표현되는 시기, 발화하는 순간, 꽃으로 피는 아이의 언어. 그래서 아이와의 대화가 즐겁다. 내게 항상 웃음을 주는 아이라는 언어의 세계 속에서 내 마음은 특별한 광합성의 시간을 갔게 된다.


꽃과 빛의 시간이 도래 중이다. 

일광욕하듯 나는 온몸에 긴장을 풀고, 아이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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