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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ug 15. 2021

엄지공주의 눈물

보름날, 푸르른 이슬방울, 그리고 세상 속에 던져진 엄지공주

숲 속에 숨어 사는 여인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키가 컸던 그녀는 거인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약도, 그 어떤 처방도 들지 않았다. 결국 20살이 되던 해, 그녀는 숲 속으로 들어와 혼자 살고 있습니다. 종일 집안에만 있다만, 밤이 되면 숲을 헤매 먹을 열매와 땔감을 구해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못 위 연꽃 위에 잠을 자고 있는 작은 생물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날따라 보름달은 유난히 밝았습니다. 작은 생물체를 유심히 살펴보니 작은 여자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작은 여자아이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침대에 눕혀보니 엄지 손가락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여자아이를 엄지공주라 부르고, 딸처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엄지공주는 작고 예쁜 외모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엄지공주는 해가 지나도 키가 그대로였습니다. 엄지공주의 새엄마인 그녀는 엄지공주가 더 이상 키가 크는걸 원치 않았습니다. 엄지손가락 사이즈만 한 캡슐 방을 만들어 그 안에 엄지공주를 넣고, 마치 인형놀이를 하듯 엄지공주를 애지중지했습니다.


작은 캡슐 방에 사는 엄지공주는 더 넓은 세상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새엄마는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처럼 키가 크는 병에 걸리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도 엄지공주를 집 밖에서 못 나오게 막았습니다. 엄지공주가 10살이 되던 어느 밤, 나무를 캐러 새엄마가 집을 비우자, 작은 캡슐 방의 빈틈으로 엄지공주가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문이 열렸습니다.


엄지공주는 난생처음 세상 속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거실 바닥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두더지가 위협을 하고, 들쥐가 수근 대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꺼비가 웃으면 말했다.

“그 문, 내가 열어둔 거야. 어서 우리 집으로 함께 가자”


엄지공주는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야 하나’


엄지 공주에겐 세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습니다. 두꺼비와 현관문으로 나가던가, 다시 캡슐 방으로 들어가던가 아니면 달빛이 밝게 빛나는 창밖으로 도망갈지 엄지공주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열린 창문 사이로 부엉이가 날아와 엄지공주를 낚아챘습니다.


엄지공주는 노란 보름달을 보면서 하늘을 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고마워요, 부엉이 아저씨”


부엉이 아저씨는 껄껄대며 웃었다.

“얘야. 세상에 공짜란 없는 거란다. 네가 우리 애들 좀 맡아줘야겠다”


엄지공주는 부엉이 아저씨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부엉이 아저씨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 안엔 10마리의 부엉이 새끼들이 우글거렸습니다. 새끼들이 엄지공주에게 달려들어 엄마엄마를 외쳤습니다. 좁은 어깨 안에 열 마리의 새끼들이 엄지공주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엄지공주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새끼들이 밀치는 바람에 나무에서 떨어져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보름달은 여전히 환했습니다. 길 가에 놓인 돌들을 따라 엄지공주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엄지공주는 새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엄지공주야 어디 있니? 어디 있니 엄지공주야”


구슬프게 자신을 찾는 새엄마의 목소리에 엄지공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더 이상 엄지공주는 새엄마가 그립지 않았습니다.


산은 어둡고, 엄지공주를 노리는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엄지공주는 개미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개미처럼 몸을 숙여 기어 다녔습니다. 개미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고, 개미처럼 굴을 파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개미 친구들은 다행히 너무 바빠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여왕개미가 엄지공주를 탐탁지 않아했습니다.


“엄지공주의 피부는 왜 빛이 나지? 눈이 부셔서 도저히 못 살겠어 당장 쫓아내라”


엄지공주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숲 속엔 여전히 그녀의 새엄마에 거대한 발자국들이 남아있었습니다. 공룡처럼 거대한 새엄마의 모성애은 위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냇가에서 작은 배를 발견했습니다. 엄지공주는 배를 타고 드디어 숲에서 벗어났습니다. 바다는 넓고 고요했습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니 적당한 출렁거림에 오히려 엄지공주는 흥분이 됐습니다.


다시 보름달이 뜨던 어느 날, 작은 배는 작은 섬에 도착했습니다. 섬 안에선 꽃봉오리 속에서 자고 있던 작은 이슬방울들이 동시에 점프를 하며 그녀를 반겼습니다. 봉오리 안에  있던 이슬들은 엄지공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푸르른 이슬, 바로 너구나”


꽃잎 위에 살던 이슬들은 바로 엄지공주를 알아봤습니다. 눈물과 만나면 생명체가 된다는 이슬의 전설을 들려주니 엄지공주는 그제야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분의 눈물을 맞고 작은 생명체로 태어난 건가요?”


이슬들 중에 가장 큰 이슬방울이 한 마디 했습니다.


“그건 아무도 몰라. 인간의 눈물일 수도 있고, 두꺼비나 들쥐가 흘린 눈물일 수도 있어”

“전 아무 기억도 나지 않은걸요”

“얘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란다”


그때 이슬 방울 하나가 땅으로 추락했습니다. 불현듯 엄지공주는 처음 세상 속에서 눈을 뜨던 그 순간을 기억해냈습니다.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던 어느 새벽, 하늘에서 떨어진 이슬 방울이 푸르른 방울 위로 떨어졌습니다. 엄지공주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나의 눈물일지도 몰라”


그날따라 유난히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던 엄지공주는 갑자기  몸이 나른해졌습니다. 바로 작은 꽃봉오리 위에 몸을 혔습니다. 꽃봉오리 밖으로 엄지공주의 다리가  삐져나왔습니다. 꽃봉오리는  이상 엄지공주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엄지공주는 눈을 감으며 생각합니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날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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