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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l 30. 2021

건조기보다 자연 건조가 좋은 이유(faet. 폭염)

폭염이 주는 유일한 이로움?

*


올여름은 폭염이 극에 다다를 모양이다. 장마는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점을 찍고 사라졌다. 몇 주째 더위만이 점점 더 뜨거운 입김을 탑재하고, 우리의 일상을 가격한다. 폭염에는 장사가 없다. 맞짱을 서도 안된다.  삼십육계 줄행랑치는 것도 위험하다. 숨는 게 상책이다. 천천히 호흡하고, 그늘 아래로 나를 감춰야 한다.  이건은 생존의 법칙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신 난다. 종일 안팎으로 활기차게 노는 두 아들은 하루 내내 많은 양의 빨랫감을 만들어낸다. 땀에 젖어 1일 2회 이상 옷을 갈아입고, 자주 샤워를 하니 수건도 많이 나온다. 밥 먹고 난 후의 흔적을 닦아내느라 가재 수건의 사용 빈도수도 많아진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2회 이상 세탁기를 돌린다.



빨래를 빨랫줄에 너는 속도도 빨라진다. 요즘 같은 더위엔 건조기가 딱히 필요 없다. 습한 날씨엔 세탁기에 건조 버튼을 누르는 게 기본인데 폭염엔 아침에 널고, 그날 오후에 바로 걷으면 된다. 우리 집엔 건조기가 없다. 드럼 세탁기에 탑재된 건조 기능을 이용하는 게 다이다. 그래서 내가 폭염에 더 감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탁월한 기능을 지닌 건조기로 빨래를 말렸다면, 요즘 같은 폭염에 주는 이로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자연건조가 좋다. 음식 건조기를 구입하려다가 그만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면 자연의 기운이 그대로 옷에 베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뽀송뽀송한 느낌에 따사로운 햇볕이 더해지면, 희한하게도 포근한 잠이 몰려온다. 반면 건조기에 빨리면 자연스러운 느낌이 없다. 뭐든 시간을 통해 결실이 맺는다고 믿는 나의 보수적인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계의 힘을 이용해 마치 속성 과외를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빨래는 수거 - 빨래(세탁기) - 꺼내기 - 말리기-수거-개기- 제자리행.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패턴이 완성됐다. 그것이 내 몸의 습관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집안에서도 나를 바쁘게 해주는 이런 움직임이 싫지만은 않다. 나의 움직임이 뭔가 생산적인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마음이 울적해질 때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런데 폭염은 얼마나 그 속도를 가속화하는가.


**


30 초반,  달간 인도와 네팔을 떠돌았을  빨래 말리기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특히 거의 1 내내 눅눅한 맥그로드 간즈에서는 눅눅한 옷을 입으며 돌아다녔다. 체온으로 옷을 말린 것이다. 그러다 다르질링에 갔을  나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청명한 햇살 아래 집집마다 베란다에 널린 형형색색의 옷들.  펄럭이며 손짓하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멀리사 온 여행자를 반겨주는 총천연색 미래처럼 느껴졌다. 비록 물에 넣으면 색이 쭉쭉 빠져 같이 담근 흰옷을 물들게 하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옷을 입겠다고.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목 늘어난 싸구려 티셔츠들이 수건 용도로 바뀐 것도 그쯤이었다. 종일 차밭과 시장통을 돌아다니가 밤에 오면 빨래를 한다.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빨랫줄에 옷을 넌다. 그곳 날씨도 내내 쨍한 날씨가 아니라서 눅눅한 옷을 들고 옥상을 내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인도의 옷들은 색감이 화려하나 빨 때마다 색깔이 빠진다. 그럼에도 그 빛깔들에 혹해 물에 빠지는 줄 알면서도 옷을 샀다.  날은 덥고, 여행자는 살기 위해 돌아다녔다. 염색물이 빠지는 옷들을 입고 말이다. 나라는 여행자의 속성은 걷기를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땀에 찌는 옷을 밤마다 빨았다, 염색물이 빠져나와 빨 때마다 빛깥이 옅어지는 옷을 매일 빨았다. 물론 새벽이슬에 흠뻑 젖었지만, 마치 삼한사온처럼 볕이 좋은 날이 오면, 바삭대는 낙엽처럼 빨래가 말랐다. 그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에 오르면 집집마다 널어둔 빨래가 펄럭였다. 그때 나는 나의 상황을 상기한다.


"나는 여행자다. 걷고 또 걷는 여행자다."


***


오늘도 여름 빨래는 잘도 말라간다. 아이들은 집안에서도 충분히 다량의 빨랫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자이므로. 허물처럼 벗어둔 옷들을 수거해 세탁기에 넣는다. 날은 덥지만, 볕이 따가워 다행이다. 여름 아이들이 만들어낸 여름 빨래들이 빠르게 말라가는 순간. 나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간다. 인생의 감정을 쾌와 불쾌로 나눈다면, 마른빨래는 나를 쾌라는 감정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 자연의 기운이 담긴 옷들을 입고, 또 아이들과 여름의 시간을 보낸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기를 느끼는 순간이다. 이것이 폭염이 내게 주는 유일한 이로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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