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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ug 26. 2022

새벽에 나를 찾아온 사람

새벽일기1

새벽 4시 40분에 눈을 떴다. 저녁 설거지를 못했다. 그릇 정리를 하는 도중 현관문 버튼 소리가 들렸다. 이 신새벽에 나를 찾아온 사람. 정확히는 이제야 집에 돌아온 남편이다. 바쁜 일정 탓에 아침에 집에 온다. 밤새 일한다기보다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하는 식이다. 아침에 할 일이 없으면 집에 와서 아이들 등원을 도와준다. 피곤해보인다. 우리는 그래서 대화 시간도 거의 없다. 만나면 아이들 얘기 좀 하다가 각자 핧 일을 한다. 대부분 남편은 출근을 한다. 1년 가까이 된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남편은 바빠졌다. 나도 바빠졌다. 솔직히 독박육아가 피곤하긴 하지만 견딜만하다. 육아와 집안일로 내 시간을 대부분 내어주기 바쁜데, 남편까지 있다면 그 시간도 내어줘야한다.


집에 있다는 건 어느새 집안에서 가장 시간 많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육아와 집안일은 결국 대부분 내 몫이 되어버린다. 남편이 잠깐씩 출몰하는 집안에선 더욱 그렇다. 피로감에 밤이 되면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 일찍 퇴근해도 쇼파위로 쓰러져버린다. 안타깝긴 하다. 나도 한 때 저런 유사한 삶을 살았다. 일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했던 존재, 마치 기계처럼. 그래서 남편을 보면 안쓰럽다. 그러가다가도 집에 남편이 있으면 숨이 막혀온다. 왜냐하면 나의 시간이 또 줄어들기 떄문이다. 이를테면 오늘처럼 새벽에 들어와 나는 못다한 집안을 하고 있는데 앉아서 얘기를 하자고 할 때. 나는 아이들을 재우면서 자는 내내 새벽을 기다렸다.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이니까. 남편이 와서 얘기하다보면 나는 아내라는 존재로 시간을 소비한다. 그러다 아이들 꺠워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등교를 시킨다. 엄마로 또 보낸다.


그래서 둘째 등원 후 바로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도 월요일은 휴무라 일주일에 4번 정도 갈 수 있다. 간혹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가기도 하지만, 그건 나란 존재가 아니라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한 시간일 뿐이다. 아이들과 함께있을 때 3층 종합자료실로 올라가기도 어렵다. 도서관에서 2시간 정도 보낸다. 나란 존재에 충실한 시간이다. 이른 기상으로인해 10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한다. 많은 것을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새로들어온 책을 확인하고, 관심있는 작가의 책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그러다보면 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도서관 물을 나서면 엄마가 된다. 근처 동네 마트에서 간단히 장은 본다. 그날 메뉴와 간식거리이다. 간식거리는 소량으로 구입한다. 싸다고 왕창사면 버리기 일쑤이다. 아이들은 많은 양을 원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맛을 갈구한다. 그 욕구를 알기에 조금씩 새로운걸 도전한다. 그렇다고 단계를 뛰어넘어 실험적인 간식은 안된다. 아예 먹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과거에 먹어서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리스트업하고, 그중 가장 먼 시일에 먹었던걸 기억해야한다. 아무리 맛있어도 자주 먹으면 안먹는다. 반찬도 마찬가이다. 이런 저런 고심 끝에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안일은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방청소, 아침 그릇 정리, 빨래 돌리기, 빨래 개기, 물걸레질하기, 책 정리 등 이걸 하다보면 2시간정도 걸린다. 후다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저분한 곳은 매번 그대로다. 좀더 가열차게 치워햐하는데 에너지가 없다. 왜냐하면 점심을 안 먹어서이다. 청소하다 부랴부랴 점심을 챙긴다. 계란 프라이를 하고, 김치를 볶고, 접시에 담긴 밥에 같이 세팅한다. 혼자먹지만 빨리 먹어야한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바쁘다. 하원 시간에 맞추려면 쉴 틈이 없다. 그래서 간혹 새벽에 일어나 집안 정리를 한다. 바닥에 매트도 다 세워놓는다. 낮시간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오면 자기전까진 꼼짝없이 함께 보내야한다. 그런데 한때는 이런 시간들에 무기력해지도 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즐겁다. 아이들이란 존재에게서 배우는 것들이 많다. 첫째는 요새 새에 빠졌는데 물떼세쪽을 좋아한다. 저어새는 우연히 실제로 보기도 했는데 그땐 이름을 몰랐다. 최근에게 사진을 보고 저어새임을 확인하는 순간, 우린 환호성을 질렀다. 곤충덕후였던 아이에게서 곤충과 자연의 세계를 배웠다. 이제는 새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더불어 나의 영역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유용해지는 순간이다. 저어새와 따오기, 황새, 두루미 등 이제는 멸종위기종들이라 자주 볼 수 없고, 대부분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따오기는 창녕의 복원센터가 있다. 황새는 거의 사라졌고, 두루미가 학인데 학은 이제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다) 같이 즐기면 나에게도 이롭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같이 책을 보고 아이의 설명을 듣곤한다.


어제 빵집에 가는 도중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하늘소를 만났다. 사진을 찍어 첫째에게 보여줬다. 아이는 자기방으로 들어가 품종을 찾아봤지만 찾지못했다. 다신 한 마디했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데 흔치 않은 일이야, 하늘소를 본건"


둘째는 요새 포켓몬에 빠졌다. 덩달아 첫째도 난리다. 포켓몬은 1999년도 1기가 우리나라에 방영됐을 때 내가 좋아했었다. 다행히 아이들과 포켓몬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0년도 넘은 시절인데 오늘 푸린이 생각난다.


'그렇지, 푸린의 노래'


부르면 한 시간 이상 부르는 푸린. 들으면 주변 사람들은 잠을 잔다. 그러면 푸린은 뾰로통해진 표정을 지으면 뿌~ 소리를 낸다. 풍선포켓몬인데 풍선 바람 빠질 때 나는 그 소리라고 본다. 아이들은 좋아한다. 나도 덕분에 웃는다.


저녁도 먹이고, 숙제가 있는 날은 숙제도 봐주고,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주면 밤이다. 아이들이 잠을 자면 벌떡 일어나면 좋겠지만 나도 잔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난다. 얼마나 내가 바라던 시간인가.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 시간에 남편이 집에 오면 나는 불쑥 불안해진다.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시간 사수를 위해서이다. 오늘은 남편에게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나의 시간이 이토록 소중한 줄 몰랐다. 그동안 흘려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아까운지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럼에도 현재를 즐기기위해 새벽에 꺤다. 다행이다. 새벽 기상, 책 읽기와 글쓰기만으로 나를 회복할 수 있다. 다행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이제라도 깨닫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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