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식판에 밥알이 그대로 붙어있다는 것이다. 밥알의 형체와 식판의 무늬는 구분하기 힘들다. 색깔보다는 입체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의심적인 형체가 포착되면 손가락으로 확인하다, 백발백중 밥알이 붙어있다. 의심하는 순간, 현실이 되는 것이다. 주인의 딸은 매번 그런 의심을 하면서 일을 한다.
어쩌라고 이런 걸 자꾸 내놔. 여기가 어떻게 먹어!
홀에서 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인을 나타나 따뜻한 물에 불여야 일하기 편하다면, 하루에서 수차례 내게 얘기한다. 주방이모도 나타나 식세기에서 나온 따뜻한 물을 세제물에 부어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또한 수차례 내게 했던 말이다. 식판만 씻으니 편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밥알이 복병이었다. 밥이 질게 된 날은 식판 전체적으로 밥알이 라이스페이퍼처럼 얇게 붙어있다. 밥이 꼬들꼬들한 날은 밥알이 하나하나 힘을 주고 서있는 것처럼 잘 떨어지지 않는다. 설거지물속에서 헤매는 내 팔뚝은 거세게 헤엄치는 정어리새끼 같다. 범고래에게 쫓겨 혼자 무리에서 이탈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미미한 존재. 언제 잡혀먹을지 모르는 운명을 지닌 채 유영 중이다. 밥알 민원이 계속 들어오면, 지금 이 자리도 위험할 수 있다. 나는 언제든 주인이 나오지 말라고 하면 별 수없이 그냥 철수해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이다. 내가 쓰던 비닐 앞치마, 장화, 고무장갑은 또 다른 주인을 기다리겠지. 등골이 갑자기 오싹해진다. 오늘 아침부터 추위가 시작됐는데 이곳은 이미 내겐 겨울이었다. 한기로 인해 패딩조끼를 입고 일을 하는데 그때마다 반팔만 입고 홀을 누비는 주인집 딸이 한 마디 한다.
어머, 안 더워? 어머나 세상에.
상체가 튼실하고, 하체가 좀 더 빈약한 그녀는 양체질임이 분명하다. 목소리가 크고, 손도 크고, 몸놀림도 큰 걸 보면 확실하다. 엄마의 식당에서 주인처럼 일하고 있기에 눈치 볼게 전혀 없는 그녀. 그녀가 눈치를 보는 건 유일하게 딱 하나, 손님들이다. 자주 오는 손님들이 계속 와주길 바라는 마음에 친근하게 대해준다. 목소리를 높여 반겨주고, 농담도 한다.
오빠니까 내가 국 갖다 주는 거야. 오늘 수지맞은 줄 알아.
계란 남았어. 오늘은 다 갖다 먹어도 돼.
단골에게만 건넬 수 있는 멘트를 자주 날린다. 혼자 와서 먹는 남자손님들은 적적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한 끼를 때울 것이다. 건물 2. 3층엔 작은 공장들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 고객인데 메뉴 고민 없이 와서 먹고 가는 분위기이다. 근처엔 식당도 없다. 멀리 가기엔 업무량이 많다. 건물 1층에 식당이 하나 있다. 회사에선 이곳의 식권을 배부해 준다. 먹고 일하는 게 전부인 일상에선 먹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쉬는 시간을 찾아내야 한다. 그들에겐 최적의 식당임이 분명하다. 나도 한때 방송국 짠 밥을 먹으며 일을 했다. 아침방송이 일주일에 2~3번 있는 날이면, 제작사 대표가 식권을 준다. 방송국 지하에서 나오는 아침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다녀였다. 그때 식판은 흰색이었다. 흰색식판이라면 설거지에 좀 더 예민할 수 있으나 밥알이 좀 더 눈에 잘 띄었을 것이다. 김치에 색깔이 배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쩌면 지금 식당의 식판이 흰색이라면, 내 팔뚝과 손은 바빴을 테지만 주인장 딸의 민원은 줄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는 마치 먹이를 포착하기 위해 내 뒤를 수색하는 것 같다. 주인장도 마찬가지이다. 범고래 모녀가 정어리 한 마리 집어삼키는 건 일도 아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