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엄마와의 일방통행 심리전이 펼쳐지던 그 때를 추억하며
너에게 특별히 어떤 불만은 없다. 다만, 매일 같은 너의 시도가 나를 식상하게 할 때가 있다는 것. 너는 너대로 불만이 많겠지. 매일매일 어떻게 달라지니. 그건 마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와 같아. 어떻게 변하니. 어떻게 매일 변하니. 어떻게 매일 새로운 시도를 하니. 나의 불만에 너는 매일 한 가지씩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해왔어. 나는 어땠을까. 나도 변했을까? 하루하루 너를 만나면서 나도 달라졌을까?
너를 품고 가는 길이 험난하기도 했어. 흔들리는 만원 버스 안에서 네 속이 빠져나올까 걱정하기도 했어. 너는 주변의 압박으로 흠씬 두들겨맞고 눈물을 살짝 흘렸을지도 몰라. 비닐봉지 안에 물기들이 너는 습기라고 말하고, 나는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상황을 두고,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듯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눈높이에 맞춰, 숨 쉬고, 걷고, 달리고, 노래해.
차디차게 식어도, 한 겨울에도 네 속을 열면, 어떤 온기들의 뭉치들이 내게 전해져. 형태를 찾을 순 없지만, 형태를 상상할 수 있어.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고, 엄마의 사랑이기도 하고, 엄마의 진심이기도 한, 그날그날 엄마의 속사정이 네 안에서 펼쳐지지.
바로 이런 거야. 가끔 김치와 계란 프라이를 마주하면, 그때 나는 생각해.
"오늘 엄마가 피곤했구나"
비엔나소시지가 일렬로 줄지어 누워있고, 종종 마늘종 위에 적당한 깨가 뿌려져있으면, 나는 미소를 지어.
"엄마가 내 얘기를 들어줬구나"
너로 짐작하던 엄마와의 심리전. 물론 일방적이고, 상대에게 의중을 묻지 않았기에 정확도는 떨리지만, 나는 엄마의 온기가 점심까지 이어져 나에게 전해지는 게 신기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상대의 심리와 감정 상태들. 그것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세월의 강물 위에 나를 놓아두어야 했지만 너는 그렇지 않았어. 너를 통해 나는 엄마를 직관할 수 있었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엄마라는 숭고한 타이틀에 대해.
엄마가 됐지만, 나는 아주 가끔 도시락을 싸. 어떤 엄마는 간혹 동네 김밥 집에 그 전날 주문해서 아이에게 전잘하기도 한대. 하지만 나는 그럴 순 없었어. 새벽녘, 부스럭대며 부엌에서 들리던 엄마의 소리들이 악기처럼 두두둥 내 몸을 통과했던 기억을 품고 있다면 그건 불가능한 선택이야. 게다가 소풍날 아침,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엄마의 김밥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었지. 김밥을 감싸고 있는 너를 가방에 담아 나는 달렸지. 그 기억에 있다면, 타인의 수고에 나의 진심을 내어주고 싶진 않았는지도 몰라.
달리면서 나는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아. 그저 달리고 마냥 신나던 내 어린 날의 풍경들. 너와 함께 했던 무수히 많은 기억들, 엄마가 창조하던 놀랍도록 배부른 그 세계에서 나를 살 찌운 건 단순한 음식들이 아니었음을. 음식의 외피와 음식의 내면, 그 간극 안에 녹아진 어떤 풍요. 매일매일 형체를 달리하며, 내게 일깨워줬던 생의 감각과 애정의 카테고리들. 나의 성장에 밑바탕이 되어주던 너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다만, 엄마가 된 내가 스스로 내게 전해야 할 진심의 순간들이 기다리지. 아주 가끔이지만, 나는 나에게 어떤 진심을 전해야 할까. 그것이 겉으로 보기엔 다이어트 용이라고 해도, 건강을 위해 저탄고지로가는 스타일이어도 나는 나에게 감사해한다. 나의 수고스러움이 빚어낸 결과물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너를 마주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도 놀라워. 내가 어른이 된 것도 놀라운데 내가 누군가의 끼니에 이렇게 골몰하게 될 줄 몰랐으니까. 게다가 상대가 너라는 건 더욱 놀라운 사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 우리 수다를 떨자. 외형만 바뀌었지 우리의 용도는 거의 동일해. 나는 채우고, 너는 비우는 관계. 그러니 우리 친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