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절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리러브 Jun 30. 2020

쓰레기더미집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장소가 삶을 지배한다

별다른 취재 없이 전에 방송을 했던 제작팀의 정보만 입수한 채 촬영에 들어갔다. 전화로 소통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피디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경기도 외곽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로 들어선 순간, 나는 움찔했다.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들로 가득 쌓인 집이었다. 그곳에 부부와 어린 아들 셋이 산다. 초등학교 저학년 2명과 미취학 아이 셋은 그 쓰레기 더미에서 먹고 자고 논다. 그 모습은 난지도 쓰레기 더미에서 건진 것들을 팔아 생활하는 넝마주이 아이들보다 더 비참해 보였다.



집이지만 더 이상 삶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 공간에 사람이 산다. 남편은 근근히 일을 하고, 아내는 지금 생각해보니 정신분열증 환자이다. 한 시설에 봉사활동을 간 남편이 그곳에 살던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이르게 됐다. 남편은 연민이 컸다고 한다. 그 감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한데 아이가 셋씩이나 있으니 이건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단 나는 그 집의 상태를 진단했다. 일단 집이 너무 더럽다. 이 쓰레기를 어떻게 치워야 할까. 쓰레기를 집으로 모으는 이들은 반복적으로 동일한 행동을 반복한다. 어디선가 쓰레기를 입수하고, 그 경로를 따라 매일 반복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아내는 길거리를 다니면서 온갖 쓰레기들을 다 들고 온다고 한다. 남편도 처음엔 열심히 버렸다고 한다. 누군가는 모으고, 누군가는 버리는 동어반복적인 지루함. 결국 남편은 포기했다. 그리고 집은 쓰레기 더미가 됐다.



바닥에는 바퀴벌레가 바글바글하다. 어마어마한 벌레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어 차에서 잔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의 인권은 누가 지켜주는 걸까. 인권에는 기본적인 의식주 제공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보호받고 있지 못한다. 정신분열증에 걸렸어도 아이들에게  엄마 뿐이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내내 붙어 다닌다. 엄마도 아이들 손을 꼭 잡는다. 식사는 아이들 몫으로 나오는 식권 카드로 편의점이나 동네 분식점에서 해결한다. 김밥이나 라면 정도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은 또래보다 작고 말랐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견적을 뽑았다. 이 집의 상태를 방송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별 수없이 지역 봉사 단체와 관련 직종의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일단 무료로 도배를 해주는 봉사 단체에서는 기끼어 집을 정리도 해주고, 도배도 해준다고 했다.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하니 알겠다고만 말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의 정신 상태가 심각하니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꽤 규모가 있는 병원의 전문의께서 무료 진료를 해주시기로 했다. 또한, 아내는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예민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치통 때문이다. 동네 치과에 문의했더니 얼른 데려오라고 하셨다. 다행히 지역 분들의 도움으로 일단 어느 정도 문제의 심각성을 해갈해 줄 것 같았다.



먼저 가장 심각한 문제인 집 상태. 도배를 하고, 집을 정리해야 한다. 아내를 설득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집에 살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일단 아내가 일보 후퇴를 하고 집 정리를 하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도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 같았다. 전문의는 굉장히 중증이라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액 무료를 힘드니 30%라도 비용 지불을 해주면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입원이라는 말과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수긍하지 않았다. 남편도 자신의 돈이 나간다하니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약 정도는 먹었으면 하는 것 같았는데 아내가 강력하게 거부했다. 하여, 이 부분은 추후 설득하기로 하고 치과에 갔다. 치아 상태는 예상대로 엉망이었다. 치과 전문의는 정신과 전문의보다 자신의 감정을 어느 정도 노출시키는 분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얼른 하자, 내가 무료로 다해줄 테니 결정되는 대로 오라고 아내를 설득시켰다.



의사와의 만남은 1차적으론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와 동행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더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았다. 어쩜 어떤 희망이란 걸 봤던 걸까. 정말 우리 집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이들에게 그 집은 굉장히 특별한 장소일 것이다.(부정적인 의미로)  먼 미래까지 생의 주기를 예상해봐도 다시는 이런 집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 집을 떠올리면 괴로움에 치를 떨 수도 있다.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그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기약 없는 미래와 대책 없던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라는 점. 둘째는 틱이 있다고 한다. 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장소이다.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될 수 없는 장소에서 살고 있으니 없던 병도 생길 판국이다. 이런 조건에서 아이들이 살고 있다.



이제 와 생각 보니 그때 나는 아이들을 구출했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도배가 아니라, 아내의 병원 치료가 아니라, 아이들의 온 생을 지배하는 그리고 지배하게 될 그 온전치 못한 집, 그 특별한 장소라 불릴 수 있는 끔찍한 곳에서 아이들을 빼내야 했다. 부모들 역시 자신들의 처지에 절망만 하고 있고, 그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상태였다. 남편은 언제든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은 폭력만 없었지 정서적인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아동학대와 다름 없다.



그 집은 촬영 내내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일주일 안에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무슨 솔루션을 해줄 수 있는 것일까. 그때는 그런대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본질을 망각했던 것이다. 그때 그 집의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방송 후, 남편 말에 의하면, 집은 정리됐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쓰레기 더미가 됐다고 하던데. 남편은 우리 방송보다 더 큰 도움을 주는 방송을 찾고 있는 뉘앙스였다. 저분은 아예 집까지 바뀌길 바라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매주 방송을 준비하면서 그때 그 일을 기억 속에 접어둔 채 잊고 살았다. 가끔 쓰레기 더미 집과 유사한 사연이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그때 그 집은 어떻게 됐을까? 정도로 아주 잠깐씩 생각했다.



거의 15년이 지났으니 꽤 오래전 일이다. 막내를 제외한 두 아이는 성인이 됐을 나이이다. 늦었지만, 부디 그 아이들이  무사히 잘 자랐기 바라는 마음 뿐이다. 애초에 그런 집은 싹을잘라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가 그만큼 부족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물론 지금도 어두운 집 한편에서 서럽게 울면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뭘까? 쓰레기머디 집 아이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그들에게 쓰레기 더미 집은 잊고 싶은 과거일 것이다.  마치 판타지를 꿈꾸듯이 깨끗한 집을 상상하며 그때를 견뎠을지도 모른다.



지금 사는 나의 집을 둘러본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런 감정은 굉장히 불편하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나의 행복을 발견한다는 식의 깨달음을 극도로 저주하는 나이니까. 때론 장소가 삶을 지배한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과 나쁜 환경의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시작부터 다르다. 인생의 스타트 지점부터 다르니 경쟁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개인의 극복으로 해결될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이다.가난 앞에 순간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종종 발생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