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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l 23. 2020

헤매고 싶다면, 종이 지도를 이용하라~

아날로그 여행의 필수품, 지도에 대한 단상

나는 종이 지도를 좋아한다. 종이 지도는 예측가능하다. 목적지를 찾으면, 그곳에 포커스를 맞춘다. 지도는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한 눈에 들어온다. 스마트폰 속 지도맵은 광활하다. 어떤 면에선 나의 시야를 그곳에 맞춰야한다. 마치 군중 속에서 길을 찾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종이 지도와 나는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같이 존재한다. 따라서 지도를 해독한다는 건. 블록을 하나하나 늘려간다는 의미이다. 그 블록들을 연결하면, 또 다른 지도가 완성된다. 머릿속에 블록처럼 연결된 지도는 잘 잊히지 않는다. 이는 도시가 내 안으로 체화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종이 지도는 도시의 모든 지형물에 대해 안내해줄 수 없다. 지도가 소화가능한 정보들만을 압축해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행자들이 쉽게 흡수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닌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도의 모든 길들과 지형물들이 다 내게 입력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지도의 언어와 내가 소통되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한다. 지도를 옆구리에 끼고, 가이드북 사이에 넣고, 잠자리 머리맡에 두면서 나와 지도의 소통을 늘려간다. 결과적으로 이런 노력을 통해, 지도를 독해하는 시간도 줄고, 여행 중 길 찾는데 허비되는 시간도 줄어든다.



이제 종이 지도가 필요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스마트폰 길 안내 기능을 통해 우리는 신속정확한 정보만을 취한다. 지도 뿐아니라 가이드북, 여행영어 회화책이 없어도 여행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여행의 짐도 함축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짐만 함축되는 게 아니라 여행의 의미도 함축되는건 아닐까? 우리는 더 이상 모험을 할 수 없는 여행을 한다. 모험은 더 이상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니다. 구글맵만 켜면, 쉽게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내가 다녀온 길을 기억하는 건 내가 아니라 구글맵인 것만 같다. 내가 헤맨 길들을 통해 진화하는 건 내가 아니라 구글맵이다. 내비게이션 없던 시절의 운전처럼 말이다. 내비게이션의 진화로 오히려 길에 대해 더 모른다. 우리가 알던 길도 잃어버렸다. 온전히 그 도시를 내 것으로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뺏긴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서 다음번 여행을 가면, 현지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려 지도를 수집할 것이다. 지도가 내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해독할 것이다. 나의 속도에 맞춰 그 도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속도가 여행의 양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순 있지만, 속도가 빠르다고 여행의 질이 좋다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종이지도를 고수할 것이다. 계속해서 길을 헤맬 것이다. 느리고 깊게 도시를 탐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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