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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l 19. 2020

내 여행이 소설이 될 수 있다면

여행은 육체의 미로이다 


**



바다를 '소금으로 빚은 술'이라고 했던 뮤지션(이규호)의 노래를 듣는다. 바다를 보면 취한다고 했던가. 나는 어릴 때부터 산보다 바다를 좋아했다. 지금은 산과 바다가 다 좋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질문처럼 의미가 없다. 산은 산이라서 좋고, 바다는 바다라서 좋다. 



지도를 보다 바다를 색깔로 표시한 곳에 눈을 둔다. 홍해와 흑해. 홍해는 이집트 여행 때 가봤어야 하는데 사막으로 향하는 바람에 홍해를 저버렸다.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를 요원한 곳이지만, 마음속으로 품고 산다. 그런데 흑해는 의외의 수확이었다. 흑해는 정말 검다. 진짜 검은 바다였다. 터키 북쪽엔 흑해가 있다. 이스탄불에서 트라브존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제대로 검은빛의 바다를 만났다. 왜냐하면 깊은 밤, 해안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처음  흑해를 만났기 때문이다. 헤이즐넛의 주산지라는 삼순이란 곳에서 처음 흑해를 영접했다.



검은빛 바다가 반짝반짝 빛난다. 그 빛은 검지만 선명했고, 고래의 거대한 몸체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손을 뻗어 바다를 매만지는 생각을 한다. 당신의 수려한 곡선, 그 자태에 내가 빠졌다고 고백한다. 나의 손짓은 바다를 향한 부질없는 연서의 다른 표현이다. 내가 당신에게 빠진 이유는, 당신은 한자리에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는 것. 변치 않으면서도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당신의 매력이 무한대인 이유는 당신이 곧 세상의 전부이고,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터키 해안가 도시는 우리나라 해안 도시와도 비슷하다. 특히 우리나라 동해안 도시들처럼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은 관광도시들을 연상케한다. 흑해에서 부는 바람은 따끔따끔하다. 소금기를 머금은 공기가 내 볼에 닿는 촉감에 괜히 울컥한다. 익숙한데 낯선 이 느낌은 뭐지? 와봤던 곳 같은데 처음인 이곳은 뭐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거지? 트라브존과 리제, 그리고 아이데르로 이어지는 여행길에서 든 생각이다.


해안가 마을에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바다를 지척에 두고 생을 이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바다를 업으로 둔 이들의 생에서 자연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생각한다.  바다가 관장하는 비와 구름과 바람, 그리고 물고기들까지. 부질없는 생각 놀음이다. 처음부터 소유가 불과했다. 바다는 나의 소관이 아니다. 내가 바다의 지배를 받고 있다. 바다는 모든 걸 압도한다. 온다고 막을 수 없고, 멀어진다고 잡을 수 없다. 바다라는 절대적 가치는 변치 않는다.



밤이 되면, 촉각이 지배한다. 나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바다는 늘 그렇다.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준다. 나를 안아준다. 내가 만난 바다가 전한 이야기들을 잊고 싶지 않아 집착한다. 글과 멋진 음악과 그리고 내가 있는 풍경에 바다만 있다면, 늘 그렇듯 완벽하다.



****



리제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았다. 중심가 광장 근방에 있는 숙소였다. 이름은 AKSU 호텔. AK은 터키로 중앙, SU는 물이다. 그곳에서 제대로 된 베드 버그를 만났다. 그 벌레들은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내 몸에 무늬를 냈다. 내게 없는 장식구를 만들어줬다. 하룻밤 새 내 목엔 목걸이가 하나 걸렸다. 그 목걸이에는 분명 유통기한이 있다. 넉넉잡아 한 달 안엔 사라질 것이다. (다시 베드 버그가 같은 곳을 공략하지 않는다는 계산하에) 이 말인즉슨. 나는 한 달 가까이 이 목걸이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고 살아야 한다. 거추장스러운 건 질색인 성격이란 몸에 무언가를 달고 사는 게 익숙지 않다. 그래선지 내 몸 주변을 자주 매만진다. 뭔가 낯설다. 



나의 새 목걸이에 놀리는 일행들과 함께 아이데르로 간다. 터키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이다. 아이데르에서 약간의 등반을 하고, 나무로 지은 숙소에서 뒹굴 댔다. 차를 마시고, 카드 게임을 하고, 음식도 만들어 먹으면서 여행 중에 잠시 소풍을 즐겼다. 늘 그렇듯 밤이 찾아온다. 여행의 밤은 지루하다. 이미 낮에 마실 만큼 마신 차와 맥주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더니 숙소 주인의 딸이 내게 관심을 보인다. 나의 긴 머리에 관심을 가지며 머리를 묶어주려고 한다. 9살 정도 되는 소녀이다. 그녀는 이내 심심했는지 내게 일어나라고 한다. 일행들은 이미 졸고 있다. 꾸벅꾸벅 고개를 움직이다 한 명씩 바닥에 웅크린다. 물곰들처럼 조용히 꿈틀댄다.



밖으로 나와 밤의 아이데르를 만난다. 물기 가득한 밤이다. 소녀는 동네의 한 집으로 나를 안내한다. 온 동네 아줌마들이 다 이곳에 모였다. 분명 남자와 여자가 섞여있었는데 내 기억엔 히잡 쓴 아줌마들이 모인 풍경만 선명하다. 그녀들은 함박미소를 지으며, 술이 없는 밤의 세계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마치 나 보라는 듯- 일깨워주고 있다.


흑해 연안의 전통춤이라고 한다. 둥그렇게 커다란 원을 만든다. 이 공간 안에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원형을 만든다. 음악에 맞춰 각자 춤을 춘다. 가지각색 품새인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같은 동작이다. 무속이 살아있던 시절의집단의식 같다. 기우제 같은 제가 펼쳐진다. 저 가운데 있는 분이 제사장인것 같다. 아이데르 사람들은 매일 밤, 무엇을 하늘에 비는 걸까? 비가 그치질 바랄까? 날씨가 좀더 자신들을 따뜻하게 대해달라 비는 걸까? 이대로 살게 해달라고 비는 걸까? 알 수 없는 의식의 미로 속으로 나는 입장을 시작한다.



헤매는 내게 소녀가 제대로 지도한다. 틀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한다. 간단한데 어렵다. 나는 일련의 군무 같은 이 동작에 집중한다. 단순할수록 인간의 집중력은 높아진다. 복잡하면 산만해진다. 복잡함의 경로에 따라 정신을 분류하고, 이어서 하나의 맥락에 하나의 생각을 흘려보낸다. 결국 그 총합은 산만함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게 좋다. 단순하게 춤을 추며 밤 늦게까지 시간을 소요한다. 내 몸과 마음은 단순해지고, 단정해진다. 명쾌하게 내 남은 길을 생각한다. 아이데르의 시간만큼은 도려내 다른 폴더로 붙여넣기를 한다. 다르게 기억하고픈 나의 바람을 담았다.



춤이 춤을 부르는 공간에서 나는 춤을 춰요.

포근한 몸매의 터키 아줌마들이 나를 보며 웃어요. 

나는 분명 이방인인데 오늘 밤은 잘 모르겠어요. 

나의 고향이 먼 타국이에요

나는 언제 돌아갈까요?

돌고 돌아 이 춤이 끝날 때쯤 돌아갈까요?

나의 여행은 어쩜 새처럼 날아갔을지도 몰라요.

오늘 오후, 등산길에서 만난 새들에게 던져졌을지도  몰라요.

시간은 내가 있어야 존재하죠.

존재는 시간을 되묻지 않아요.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다시 여행을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때의 여행은 지금과는 다른 결이겠죠

어쩜 혼자가 아닌 여럿일 수도 있고, 내가 나를 떠나보내야 할지 몰라요.

당신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아파했던 그 시간들이 

다른 시간으로 부활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내가 아파요

오늘 밤은 아파요



 ** 소설은 정신의 미로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되뇌인다.    

     여행은 결국 육체의 미로인가? 

     그렇다면 내 여행도 소설이 될 수 있다. 

     내 인생도 소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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