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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l 18. 2020

음악이 생에 전부는 아니지만....

여행과 음악의 상관관계


*


졸리네 젬베 하우스에 놀러 갔다. k는 그곳에서 젬베를 배우고 있다. k는 졸리의 소개로 하얗고 뽀얀 소가죽과 털로 맞춘 젬베도 구입했다. 나와 h는 k가 도대체 그곳에서 뭘 배운다는 건지 궁금했다. 그녀의 젬베 실력은 하루하루 똑같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젬베라는 악기가 학원에서 배운다고 실력이 급등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모나리자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하던 현지인도 같이 대동했다. (어쩌다 다 같이 가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졸리가 젬베를 두드린다. 나름의 내공을 지닌 실력이다. 흥이 절로 나는 리듬이다. 젬베의 리듬은 규격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자유롭게 두드리면서 각자의 리듬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연주자에 따라 소리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와 함께 온 인도 청년도 졸리와는 구면이었다. 인사를 하더니 신나게 젬베를 두드린다. 한 번도 젬베를 배운 적 없는 인도 청년의 몸속엔 이미 젬베의 리듬이 육화돼 있었다. 두드리는 순간, 연주가 된다. 하지만 나와 h, 그리고 k는 뭔가 어설프다. 나와 h는 리듬 자체도 서툴러서 노래방 탬버린 소리와 별반 차이 없는 소리였다. k는 그나마 리듬을 배웠기에 조금씩 따라 하는 것 같지만, 소리에 깊이가 없다. 타악기의 리듬은 혼이 실려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 혼이라는데 학습적인 접근을 통해 발동되는 게 아니라, 대대로 이어온 민족의 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극동 아시아에서 온 여행자가 이곳 서남아시아의 리듬에 익숙할 순 없고, 아프리카의 혼까지 이해하기엔 너무나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졸리가 한국인 3명이 모였으니 너희 음악을 들려달라는 것이다. 그때 k가 생각한 노래는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게 한다. 당시 내 mp3에 들어있던 곡으로, 우리가 숙소 옥상에 올라가 자주 들었던 노래이다. 바로 마이언트메리의 '공항 가는 길'이다. 이 앨범은 마이언트메리의 영혼이 실린 명반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이 인디의 역사이자 한국 모던록의 발자취이다. 이 점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k는 나의 빨간 아이리버에 스피커를 연결해 자주 들었다. 틈만 나면 들었고, 이 노래가 우리에겐 굉장히 보편적인 노래였다. 


졸리의 표정이 미묘하다. 마치 이게 뭥미?? 이게 한국의 대표곡?? 이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어설프게 부르다가 내가 한 마디 했다.



"이건 좀 보편성이 떨어지잖아"


k는 


"그럼 이 노래할까?"


그녀가 생각한 노래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급작스럽게 우리의 장르는 모던록에서 민요로 급변경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여행과 음악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좋은 풍경을 보면, 그에 걸맞은 음악을 떠올리게 된다.  풍경 그 자체가 음악이 되고, 나의 발걸음이 선율이 된다. 다급하게 어떤 지점에선 음악이 필요하다. 맥주를 마실 때나, 밤이 될 때, 그리고 밤에 맥주 마실 때 더더욱 음악이 그립다. 음악을 안주 삼아 우리가 숙소 옥상에서 들었던 무수히 많은 음악들을 떠올려본다. 그중 '공항 가는 길'은 정물화처럼 우리들의 풍경 속에 조용히 걸려있다. 고정된 음악이랄까. 음악은 흐르는 것 같지만, 빙글빙글 돌기도 해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공항 가는 길'은 내게 뫼비우스의 띠 같은 그런 음악이다.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흘러들어온다. 그 신호를 나는 기껏이 잊지 않고 기억해낼 것이다. 






터키에서 일행과 떨어져 혼자 동부로 갔다. 당시 첫 여행이었던 나는 음악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mp3가 없었고, cdp는 무거워서 따로 챙기지 않았다. 음악 없는 여행을 떠난 나는, 여행 내내 음악이 그리웠다. 이어폰을 끼고 듣는 음악이 그리웠다. 다행히 동부 여행을 같이 한 동행자에게 cdp가 있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나는 그의 cd 속 음악을 들었다. 나와는 전혀 취향이 맞지 않았지만, 다행히 딱 한 곡이 내 귀에 꽂혔다.



그 노래는 바로바로바로~~~  god의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면, 말라티야에서 넴룻 투어를 하러 가던 새벽 버스가 생각난다. 털털거리는 버스가 마른 산을 오른다. 나무들이 마치 바닥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자라는 것 같다. 다들 키가 작다. 산으로 오를수록 바람이 거세다.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나무들의 성장이 멈춘 것 같다.  이곳에서 일출을 기다린다.  목만 남은 거대 석상은 처량해 보인다. 괜한 애수에 잠긴다. 음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가 다시 플레이된다. 



가사를 들으면 그냥 애틋하다. 시작도 못한 사랑을 부여잡고, 기사회생을 노리는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당시 나는 연애를 하고 있진 않은 상태였다. 20대와 30대 대부분 연애 상태였지만, 이때 잠시 휴지기였다. 그래서 더 홀가분하게 여행을 즐긴 건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버스 이동이 많은 터키에서, 특히 터키 동부 여행을 떠올리면,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자동 재생되는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첫 곡이다.  그리고 좀 먼 여행은 온전히 혼자일 때가 가장 좋다는 깨달음. 여행은 혼자여야 제맛이다. 여행은 철저하게 낯섦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 새로운 자극이 되어준다. 





헝가리에 가면, 막연하게 헝가리무곡이 듣고 싶었다. 그 소원이 이뤄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낮의 부다페스트 시내를 헤매던 우리는 공원 안 노천카페를 발견했다. 부다페스트에 오면, 한국 여행자들이 대부분 들린다는 세체니 온천 건너편에 있던 공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온천엔 흥미가 없었다. 온천 외경만 구경하다가 어디 낮술이나 할까 둘러보던 차에 발견한 노천카페. 그곳에서 나는 헝가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발견했다. 



나이 지긋한 음악 하는 할아버지들이 연주를 한다. 관악기, 현악기가 골고루 섞여있다. 클래식 넘버를 연주하는 그들의 음악은 차원이 다른 평온함을 준다. 여유가 넘치고, 뭔가 풍성하다. 연주를 즐기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홀짝홀짝 마신다. 볕은 찬란하다. 나와 일행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맥주만 마셨다. 드디어 신청곡을 제기할 시점을 간파했다. 헝가리 무곡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했다. 나는 지체 없이 다가가 "음~음으음~~ 음흐흠~~~" 허밍으로 신청했다. 어설펐지만, 그들은 눈치챘다. 



이어서 바로 '헝가리 무곡'이 흘렀다. 천막 안을 꽉 채운 정체 모를 희열감. 열망이 현실로 이뤄지던 감동적인 현장이다. 어떤 영화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음악을 배경은 주인공인 격렬하게 춤을 췄던. 춤을 부르는 연주였지만, 우리는 춤을 추기에는 너무 취했다. 아니 오히려 덜 취했는지 모른다. 



음악을 듣고 해가 지기 전엔 숙소로 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 바로 옆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오바이트가 몰려와도 뭔가 충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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