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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ug 09. 2020

침묵의 순례길을 걷는 중

나다워지는 방식, 침묵의 시간

여름이다.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아파트 사잇길은 바람이 차다. 생각보다 덥지 않은 여름인 것 같으면서도 예상보다 후덥지근한 여름인 것 같기도 하다. 둘째의 자전거 타령은 중고 자전거를 구입과 함께 사라졌다. 대신 둘째는 온 종일 달리고 싶은 모양이다. 비록 홀로 끌지 못하는, 엄마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자전거지만, 아이는 자유를 가지게 됐다. 시도때도 없이 원할 때마다 자전거벨도 울릴 수 있다.


자전거를 끌고, 오전 나절 동네를 다녔다. 씽씽카였다면 불가능했을, 다소 긴 여정의 산책이었다. 아이는 점점 더 말이 줄어들고 있다. 졸음이 찾아오는 중이다. 덩달아 나 역시 말을 감추고, 걷는다. 바람이 나를 감싸는 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무들도 고만고만 자라고 있는 이 동네에서 나는 잠시 순례를 꿈꾼다. 진정한 순례의 기본은 침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공공주택에 살고 있다면, 침묵이란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약속인지 알게 된다. 알게 모르게 인사를 해야만 관계들이 있다. 긴밀하진 않아도 아는 얼굴을 모른척 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가끔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이도 보인다. 그녀는 항상 불평이 많아보인다. 뭔지 모를 불만은 짙은 화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뜨거운 여름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입이 댓발 나온 그녀가 출몰했다. 그녀의 자녀들은 늘 그렇듯 달려와 빠르게 놀이터를 장악했다. 그녀는 이내 아는 얼굴을 만났다. 다짜고짜 속내를 풀어놓는다. 아무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꼭 하고 싶은 그 말을 풀어놓기 위해 이 놀이터를 찾은 것처럼.  얘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헤친다.


"그래서 내가 저녁 먹고 오냐고 물어왔더니 아무 말 없더라고. 그런데 저녁에 애들 저녁 먹이고 정리하고 있는데 차량이 도착했다고 뜨네. 금새 왔더라고. 아무 말 안했지 뭐. 그냥 밖으로 나왔어."


두서 없이 뭐라뭐라 떠들어대고, 듣는 이의 표정도 괜히 심각하다. 나는 어쩌면 그날이 내가 홀로 집 근처 패스트 푸드점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던 그때가 아닐까 연관지어본다.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한 여성이 올라온다. 2층엔 나 혼자였다. 고요를 가르고 올라온 그녀는 햄버거를 먹기 시작한다. 마치 햄버거를 작살내겠다는 심정으로 우걱우걱 씹어댄다. 그녀는 혼자였고, 누구와도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아는 얼굴 같지만 선뜻 먼 자리에서 그녀를 알고 있다고 일어나 반길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녀 역시 친하지 않는 이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할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녀는 내내 누군가에게 그날의 불만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 대상이 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아는 관계도, 모르는 관계도 아닌, 결론적으로 별다른 관계가 아니다. 별수롭지 않게 그녀는 금새 먹고 일어나 자리를 뜬다. 길가다 별다른 관계를 만나면 그녀는 쌓인 얘기들을 쏟아낼 것 같은 무게감을 지닌채 원치 않은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나는 노트북 속으로 다시 집중했다. 최근 나는 별다른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이를 테면 스스로 순례기간이라 지정한 것인데 그것이 티베트인의 오체투지만큼 운명적이진 않지만, 내 인생에서 한 번쯤은 찾아올법한 침잠의 시간임을 인정한다. 진정한 순례라면, 물리적인 변화의 길 위에 있어야하지만, 여건상 나는 여행을 떠날 수 없다. 나는 내 사정에 맞는 순례 중이다. 그것은 침묵이라는 순례길이다. 한때 나는 한 번 통화를 하면 2시간 가까이 떠들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2시간 가까이 떠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주 통화를 했던 친구와 더 이상 통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녀와 나의 별다른 관계가 끊어진 건 아니다. 각자의 침묵의 강을 건너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침묵을 고수하는건 나 뿐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와의 2시간 통화가 단순히 나와의 대화를 위해 시간을 사용한건 아니다. 그녀는 그녀만의 순례길에서 잠시 빠져나와 휴식을 취하는 건데, 그것은 침묵을 깨기 위한 행위였다. 내가 아니더라고 그녀는 자신을 위해 2시간을 제공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알면서도 그녀의 전화에 항상 응답했다. 충실하게 나는 대답하고 들어주고 반응했다. 나는 나의 불만을 어딘가에 토로해야했고, 바쁜 그녀가 그 역할을 해준 것이다.


말을 쏟아부을 수록 그녀의 글은 빛났고, 말을 쏟아 부을 수록 나의 속은 타들어갔다. 도통 이해불가능한 이 결과에 대해 그 어떤 토도 달 수 없다. 말을 줄여야 숨을 쉴 수 있는 나와 말을 늘릴 수록 활기를 찾는 그녀. 우리가 세상을 견디는 방식은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내가 그녀를 따라할 수록 나란 존재가 소멸되어가는 것처럼, 내가 나답지 않을 때 가장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어쩌면 순례를 본연의 자아를 만나는 길이다.


나의 순례는 고요를 표방한다. 내 안의 언어가 밖으로 누설되는 순간, 불안은 내 영혼을 잠식한다. 타인을 갈구하는 순간, 나의 불안은 온전히 그 타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다. 홀로 햄버거를 먹으며 아는 얼굴을 구하는 그녀를 보면서 불안해소를 위해 타인에 기대는 행위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는다. 순례는 불안을 잠식시키는 마음 가짐을 기본으로 한다. 내면이 길을 평평하게 다지는 일을 기본으로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진다. 비밀지도처럼 암호해독이 필요하지만 침묵을 지켰다면, 해독이 가능하다.


언젠가 길 위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 중인 티베트인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일평생 꼭 한 번 순례길에 오른다. 그때 나는 그 불편해보이는 순례의 의미를 몰랐다. 온 몸으로 순례하는 그들은 왜 이런 고행을 하는 걸까 생각했다. 문득 어느날, 나는 오체투지를 하면서 세상 앞에, 신 앞에 무릎을 끓는 그 거룩한 행위를 수긍했다. 그리고 그들의 깊지만 온화한 주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본다. 종교가 곧 삶인 이들은 종교와 자연과 삶의 방식이 일치한다. 자연의 뜻이 곧 신의 뜻으로 알고 살아온 이들에게 순례는 자연스러운 삶의 한 여정이다.


나는 문득 평생에 한 번 자신을 들춰볼까말까하는 우리의 시간을 반성했다. 자신을 다그칠 줄만 알고, 불안을 탑재한채 달리는 줄도 모르고, 제 자신이 누군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상태와 취향에 대해서도 모르는 삶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그 부당함이 부당한 줄 모르고, 말로 떠들어대던 부끄러운 과거.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나는 부당하다고 느꼈던 일련의 소소한 사건들을 더이상 그녀와 전화로 나누지 않는 것에 안도한다. 부정의 언어들을 내뱉는 순간, 나는 부정의 감정에 지배되는 기분이 든다. 이는 침묵이 필요한 이유고, 순례가 이를 순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할 때 롯지를 묶을 때면 항상 밤마다 다음날 아침 메뉴를 미리 주문 받는다. 그들은 미리 주문 받은 음식들을 찬찬히 흩어본다. 그리고 불의 세기가 높은 음식을 먼저 조리한다. 먼저 짜이를 끓이기 위해 불을 지핀다. 물이 끓을 정도로 불 세지면 고기를 굽는다. 이어 면요리를 한다. 그 다음 계란 요리를 한다. 남은 잔불로 토스트를 한다. 마지막으로 치즈를 녹인다. 잔불까지 이용해 최대한 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고산지대에 올라갈 수록 땔감을 구하는건 더 어렵다. 자연을 꺾어다가 마음대로 활용하지 않고, 자연이 준 것들 속에서 최대치를 활용하는 지혜는 오래 전부터 고수해온 히말라야인들의 생존방식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순례 방식이 곧 자신의 철학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순례를 꿈꾸는가. 아니 어떤 순례길에 올랐는가. 그렇다면 철학은 멀지 않은 곳에서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생을 꿈꾸는지, 나는 이번 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철학이 부재한 행위는 도돌이표처럼 불안을 생산한다. 그 대열에 끼지 않기 위해 나만의 순례, 그 방식을 고민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자. 다행히 나는 지금 침묵의 방식으로 순례중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들춰보는 방식으로, 점점 더 나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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