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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ug 09. 2020

글쓰기, 자기 이해의 영역을 넓히는 작업

결국 쓰는 것 말고는 나다워지는 방식을 찾지 못했기에....


열망하는 곳을 향해 이정표를 찍는다. 오늘도 나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둘째의 반복적인 소환으로 글 쓰는 타이밍을 놓쳤지만, 사사로운 일상에 내 열망을 잠식시키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머리를 쥐어짜 내면서 아까 내가 하고자 했던 말들을 다시 곱씹어 분류를 한다. 어떤 말은 내뱉고, 또 어떤 말은 삼킨다. 나의 열망 공장은 이제 8개월째 가동 중이다. 중간에 한 번 본업으로 삼던 일로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공장을 가동했다. 아직도 앞길이 구만 리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천천히 걷는다. 심호흡의 중요성을 몰랐던 내가 20대 때 번번이 좌절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 지나온 일생을 미시적으로 관찰해본다. 한때 나는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고, 시인이 되고 싶었고,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고, 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작사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크게 분류를 하자면, 예술가이다. 예술이란 걸 하고 싶었으나, 열망만 컸지 정작 어디다 불을 지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결국 돈이 가장 안 드는 문학을 하는 작가가 되기로 낙점했다. 하지만 이건 상상 속의 무릉도원만큼이나 허황된 꿈이었다. 문학하는 사람, 예술하는 사람 흉내만 내다 술독에 빠져 지낸 나날들을 보냈다.





문학이 아닌, 내가 상상한 문학하는 사람 흉내내기만 일삼았으니, 당연히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다 두 아이를 낳고 나서야 글을 쓰고 있다. 습작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자신감이 붙는 건 아니지만, 글 근육은 붙는 것 같다. 운동 중독자들이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안달 나는 것처럼, 나도 하루라도 뭔가를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불안하다.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글에 제대로 집중한 지 겨우 5개월째이다. 다이어트는 간헐적 단식으로 가능하지만, 글은 간헐적으로 쓰다가 이도 저도 아닌, 죽도 밥도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크게 열망하진 않는다. 과도한 열망은 과도한 폭망을 부른다. 인생이라는 게 내가 원한 것들은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오히려 나의 바람을 외면한다. 그러다 좀 전에 본 책의 글귀를 마음으로 새긴다.



기회는  뒷문으로 온다




앞문으로 기회가 오면,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뒷문을 타고 오면 잘 모른다.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왔는지. 결국 놓치기 일쑤이다. 하여, 자신을 자주 들춰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의 일환이 글쓰기이다. 하루하루 이 작은 내디딤이 나에게 어떤 미래를 보장해 줄지 아직 모른다. 매일 글을 쓰지만, 내가 진정 작가가 될 거라고 강하게 믿진 않기 때문이다. 수 없이 많은 글쓰기 책에서는 이미 작가라고 생각하라 했지만- 예전의 나도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묵묵히 그냥 써나갈 뿐이다. 글들이 빚은 향연에 나는 나를 유기할 것이다.  오늘도 사유하고, 글을 쓰고,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진정 열망하는 것으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바라건대, 바라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열망하되, 열망하지 않는 삶은 나를 평온하게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숙연하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내 열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 우주의 리듬에 맞춘다. 우주는,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보면, 몇 억만 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만들어진 이 세계 위에서 우리는 먼지처럼 잠시 스쳐가는 생을 살아갈 뿐이다.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외부의 자극에 강한 반응을 보이다간 낭패 보는 게 인생이다. 어차피 우린 소멸한다.




매일매일 세상과 마주한다. 낯익음 속에서 낯선 무엇을 건져낸다. 그리고 글을 쓴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다. 어떤 조합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다 보면, 물이 옷에 스며들듯 나는 작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글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나는 빈손이다. 글을 쓰는 방식으로 나는 나다워짐을 깨닫는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 이해 영역을 넓히는 것, 내가 나다워지는 방식이라는 걸 중년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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