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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Sep 05. 2020

그 시절, 김떡순은 어디에

지난 시절, 김떡순의 따뜻한 위로

김떡순이 사라졌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김떡순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데 어디로 갔을까. 종로를 걷다가 헤맨다. 김떡순을 찾아야 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김떡순은 김치전과 떡볶이, 순대로 구성된 완전체이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김떡순이 될 수 없다. 가끔 김치전이 아니라 김밥을 껴서 팔기도 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김떡순이라 할 수 없다. 김말이도 김치전을 대신할 수 없다. 맛의 조화를 위해 셋은 절대 해체되거나 결별을 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김뗙순은 살아있었다.

종로역과 종로 거리 일부에 남아있다는 근황을 확인했다.

우리 때는 3천원이었는데 지금은 가격이 오른 것 같다.(4500원)


한때 종가역에서 종로 4가까지 이어지는 거리엔 김떡순 포장마차가 즐비해있었다.. 그만큼 그 시절, 그 거리엔 김떡순이 필요했다. 단돈 3천 원이면 세 가지 맛을 볼 수 있었으니, 노량진 컵밥만큼이나 획기적이었다. 당연히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김떡순에 환호했다. 김치전을 포장마차에 먹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떡볶이와 순대 사이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주니 최고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어떤 순서대로 맛을 봐야 할까? 매번 고민한다. 일단 먼저 떡볶이를 먹는다. 사실 김떡순의 주연은 떡볶이다. 쫀득한 식감과 매콤한 맛이 조화를 이룬 맛. 설탕과 고추장과 그 외 재료와 양념들이 비빔밥처럼 섞인다. 오래 끓이는 것이 더 좋지만, 이곳에서 철판에서 달달달 익히고 데운다. 어떤 떡인지도 중요하다. 밀떡은 간이  잘 벤다. 쌀떡은 식감적으로 더 뛰어나다. 나는 밀떡과 쌀떡 사이를 고민한다. 밀떡이냐 쌀떡이냐를 논하는 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로 고민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순대는 논란이 많은 식품이다. 한때 하이타이로 돼지 창자를 씻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위생상 만드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신의주 순대니 뭐니 해도 포장마차에서 파는 당면 순대가 가장 맛있다. 오징어순대처럼 과하지 않고, 무겁지 않은 맛이다. 떡볶이 국물에도 좋고, 소금도 좋고, 그냥 먹어도 좋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나는 염통이나 다른 부속물은 못 먹는데 간은 먹는다. 어떤 에세이를 보니 행복하게 죽은 돼지의 간은 구멍이 없다고 한다. 반대로 고통받으며 죽은 돼지는 간에 구멍이 많다고 한다. 구멍 뚫린 간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 이제 순대만 먹는다).



떡볶이로도, 순대로도 배를 채울 수 없다는 분석 끝에 김치전이 등장했을 것이다. 사실 전을 부치는 건 쉽다. 반죽에 김치만 넣으면 된다. 김치에 베인 간 때문에 따로 간을 추가할 필요도 없다. 적당히 태우지 않고 잘 익힌다. 가장자리에 바싹 구워진 그 부분이 맛의 화룡정점. 난 간장보단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는 게 좋았다.



내 1020시절은 김떡순과 함께 했다. 내 생의 소울푸드라 할 수 있다. 남들이 가는 길로 가지 못해 불안했던 그 시절의 나. 불안에 떨던 나. 괜스레 잠을 설쳤던 나. 마치 무병을 앓을 듯 시름대던 나. 그 시절,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겼을까?



시험을 망쳤을 때, 실연을 겪었을 때, 술 마시고 집으로 쓸쓸히 가던 길에, 학원에서 되지도 않는 토익 공부를 할 때.., 나는 약속이나 한 듯 김덕순을 찾았다. 인생이 괜히 서러워질 때마다 찾아갔다. 어떤 말도 없이 토닥여주던 익숙한 위로.



외롭고 쓸쓸했던 그  시절, 내게 위로를 해주던 김떡순. 나의 추억 속에서 잊히지 않고 매일매일 재생되는 그리움의 맛. 그 맛은 씁쓸하기도 하고, 달달하기도 하다. 나의 과거가 좋고 나쁨의 롤러코스터에서 한 번도 하차하지 않았던 것처럼 맛은 항상 상하로 반동을 일으켰고, 나는 그 진동을 따라 혀의 감촉에 최대한 몰입한다. 맛은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 추억하는 것이다.



김떡순이 내게 와 말을 건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준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무엇이 될지,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할지 막연했던 나의 청춘이  흐느낀다. 이내 떨리는 어깨. 삶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는다.

하나는 외롭고, 둘은 섭섭하다. 셋은 외롭지 않고, 단단한 결속력을 갖춘 기분이 든다. 그래서 둘보단 셋이 좋다.



종로에 가면 나는 어김없이 김떡순을 찾아간다.

나는 혼자지만, 너희들은 셋이니 외롭지 않겠다고.

김떡순이 준 따뜻한 위로를 되새긴다.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준 맛의 기억.

추억은 힘이 세고, 그 맛은 깊고도 애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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