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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꼰대였다

이 시대 꼰대의 슬픈 연대기

by 델리러브

사실 나는 꼰대였다. 이걸 인정하는 순간, 이불 킥을 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한 꼰대는 자기 말만 하고, 후배를 무시하고, 자신의 과거를 구구절절 안주삼아 자랑하는 이들, 주로 남자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나에게도 꼰대의 시절이 있으니, 아마도 아침방송 메인작가가 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새로 뽑은 후배가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일 끝나고 따로 불러 술을 사줬으며, 편안하게 얘기해보라던 후배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던 이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문자나 카톡으로 업무 보고하는 것도 내심 기분 나빠했다. 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하려고 했고, 그것이 사생활의 영역까지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결국 섬처럼 나는 갇혀 지냈다.

사무실이라는 섬에서 종일 일만 하다

파도가 길을 내주는 밤이 되면, 육지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 팀 작가들이 모여서 내 험담을 한다고 한다. 그 자리는 항상 3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였다. 아마도 나를 안주삼아 얘기하다 보면 쉽게 끝날 수 없는 자리였을 것이다. 나 역시 서브 작가 때 메인 팀장과 메인 작가 욕을 하면서 동료애를 키운 적이 있었다. 사실 방송 바닥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누구 한 놈만 걸려 봐라 하는 심정이 된다. 그 한 놈이 보통 윗 상사가 되는 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소문의 진상은 파악하지 않는 게 삶을 덜 피폐하게 한다. 그런데도 당시 나는 울컥하면서 참아왔던 꼰대력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어떤 이유로 나를 안주삼아 도마 위에 올려놨는지 물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불편한 취조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내가 그들보다 선배이기 때문이다. 마치 검사가 피고인을 심문하듯 나는 소문 속 주인공들을 한 명씩 불러서 물어봤다, 마치 이런 태도로 말이다...


'얼른 불어라~ 다 알고 왔다'


어떤 후배는 억울하다며 울고 불고 난리 쳤고, 어떤 후배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아니라고 했다. 또 어떤 후배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가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성숙한 꼰대가 일으킨 대참사라 할 수 있다. 욕은 먹는다는 게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아님 내가 어딜 봐서 욕먹을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 나처럼 이렇게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찐 꼰대)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매일 아침마다

가입 문의 전화를 받으면

끝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윗선을 바꾸라던 모방송사의 부장.


그는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마치 미친개처럼. 수화기를 붙잡고 나의 번호가 어떻게 당신들에게 입수됐는지 그 경위를 알고 싶으니 말해달라, 그건 좀 힘들다고 상대가 전하면, 그렇다면 윗선을 바꿔라, 내가 직접 통화하겠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통화로 과도한 소음을 제조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면, 점심 전까지 아무도 대화할 상대가 없었던 그 부장.


점심시간이 되면, 후배들에게 점심 먹자며 순회하러 다니는데 성공률은 30% 정도였다. 대부분 점심시간 전에 그의 후배들은 이미 자리를 비우거나 자리에 있어도 점심을 거부했다. 정규직들에게 거부당하면, 비정규직인 작가들에게 들러붙지만, 서브 작가들도 점심 먹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일찍 나오는 나와 막내가 가끔 끼워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아마도 외로워서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 자체가 외로운 일이니까. 함께 세월의 기차를 탔던 지인들도 시간의 터널을 지나 하나씩 하나씩 각자 내릴 역에서 하차를 한다. 플랫폼으로 내리던 이들의 뒷모습이 결국 마지막인 경우가 허다하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 자기 연민과 자기 합리화를 되새김질하면서 그렇게 꼰대가 되어간다.


내가 앞으로 글 쓴다면, 내가 만난 꼰대들과 내가 꼰대였던 시절들을 돌이켜보고, 4차 혁명 어쩌고 하는 시대가 도래할 미래를 상상해보려 한다. 일단 배척보다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가정한다. 먹고살다 보니 별의별 방어력이 다 생기는려구...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나아가 당신의 꼰대력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나아가 꼰대가 사회의 미래에 미치는 역기능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내가 만난 꼰대와 나의 꼰대 시절을 회고해본다?(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자신 있는 건 단 하나! 나는 다양한 꼰대의 유형을 파악하고 있다. 그동안 만난 꼰대를 회고하는 일은

엄청난 데이터를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료가 많다는 건 그만큼 내가 만난 꼰대들이 많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들에게서 인생의 여러 이면을 배웠다. 그러니 괜찮다. 이제 나는 다시 꼰대의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꼰대들에게 휩쓸려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한 마디는 미리 하고 싶다.

'인간이 되지 못할 망정, 짐승은 되지 말자'

- 영화 생활의 발견 중 대사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부터

꼰대력 극복이 시작된다.

문제는 꼰대가 아니라, 예의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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