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의 불가침성에 대하여

내 방황의 원류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by 델리러브

사춘기 소녀의 허영에는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나는 라디오와 음악들(&뮤지션), 이 두 영역에 집중했다. 그 영역은 실로 너무도 단단해 그 누구도 쉽게 접근이 불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친구는 나와의 대화를 포기해야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친구는 너와는 할 수 있는 대화가 한정돼 있다고 했다. 분명 나의 말은 범람 중이었는데 어디로 새는 걸까? 이처럼 수도꼭지 틀어놓고 계속해서 물을 대고 있는데 그 말들은 어디로 갔을까?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물은 결국 내 안으로 흐르고 있었다. 분명 밖으로 틀어놨는데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발생한 모양이다. 물은 예상을 뒤엎어도 다시 내게 흘러들었다. 나는 바다로 합류하지 못한 말들의 물줄기를 보면서 안쓰러워했다.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나의 허영을 공표하는 건 너희들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다른 표현이라고.


마음이 그렇지 않다면, 좀 더 나는 단순하게 접근해야 했다. 내 안으로 들어오려면, 내가 포진해 둔 라디오 나날들과 지극히 내 취향으로만 응축된 음악의 관문에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통로와 통로 사이엔 또 다른 문이 존재했다. 어렵사리 여러 문들을 통과하면, 그 끝에 내가 서 있었다. 하여, 굳이 나란 존재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외면하면 그뿐이었다. 따라서 번거로운 작업에 무관심한 이들이 더 많았다. 그 작업에 성공한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우정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마치 사춘기 소녀에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종의 허세이다. 그 문을 통과한 친구들도 자신만의 영역이 있었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관심이 서로에게 자기장 역할을 한 것이다.


스포츠에 빠졌던 적도 있다. 당시 나에게 스포츠란 남성성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었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과 심장을 쿵하게 하는 몸놀림, 그리고 집중의 시간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처음 시작은 농구였으나 결국 배구에 정착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집착해온 야구에 대한 열정도 이어갔다. 그러다가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 시즌을 지나면 종목이 하나씩 추가됐다. 국가대표 핸드볼의 골키퍼에도 잠시 빠지기도 했다. 당시의 덕질은 잡지와 스포츠 신문 스크랩이 주이다. 간혹 여유 있는 아이들은 비디오 녹화를 했다.


당시 나의 광기는 뜨거운 태양을 닮았다. 붉은 아침 해가 이글거리던 지중해 어느 해변의 풍경처럼 뜨겁다 못해 따가웠다. 결국 나의 일탈은 언니에게 들켜버렸다. 해가 어슴푸레 질 무렵, 집에 들어서자마자 언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엄마가 고생하는데 너는 뭐하냐고 다그쳤다. 이렇게 집안에 들어서면 현타가 온다. 밖에서 에너지를 발산했던 그 순간순간이 마치 판타지가 같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얻는 순간, 대학이라는 정해놓은 외줄 타기를 해야 한다. 외줄에서 많은 친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쉽지 않은 레이스이다. 누구나 통과할 수 있다면, 이렇게 외롭진 않았을 것이다. 내 허영이라는 장벽도 이렇게 높진 않았을 것이다.


방으로 들어와 음악을 튼다. 음악이 내 몸 안에서 살던 시절이다. 음악이 내 온몸에 퍼진 핏줄 하나하나로 스며든다. 그것은 마치 삼투압 현상 같다. 고농축 된 내 우울함이 음악을 끌어들이고 있다. 음악들이 에워싼 방 안에서 나는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 나를 스쳐간 판타지를 다시 꿈꾼다. 꿈이 반복되고, 재생되고, 부활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