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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May 03. 2020

성장통

아프다고 마냥 울 수 없었던, 한 시절의 통과의례

첫째가 잠을 계속 설친다. 다리가 저려서 편안하게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누워서 한 손으로 하나씩 다리를 주무르니 화를 낸다. 한쪽씩 해야지라며 투덜댄다. 일어나 두 손을 뻗어 한쪽 다리를 마사지한다. 아이는 가끔 자다가 다리가 저리다고 힘들어한다. 올해 7살 된 어린이의 흔한 성장통이다. 물리적인 성장통을 통해 아이는 한뼘 더 자라겠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첫째를 본다. 아이의 놀이도, 아이의 감정도, 아이의 생각도 점점더 섬세해진다. 세심하게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아이는 삐뚤어지게 행동한다. 과도한 행동과 과도한 목소리로 주변을 괴롭힌다. 분명 커가는 과정 중 하나인데 엄마는 보기가 불편하다. 


물리적인 성장통에 그치는게 아닌, 아이의 내면도 점점 자라고 있다는 증거는 혼자 노는 시간이 좀더 길어졌다는 것. 둘째 낮잠 시간을 맞아 나는 책을 읽고, 아이도 책을 읽는다. 어느 정도 쉬운 한글을 읽을 줄 알기에 혼자서 책도 읽는다. 놀이도 점점 진화해 매번 새로운 놀이를 구상한다. 몸의 에너지도 과하다보니 좌충우돌 부딪히지 일쑤다. 아래층에서 올라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물리적인 성장통의 원인으로 뼈의 성장 속도와 근육의 성장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뼈가 먼저 자라고, 근육이 그 속도에 맞춰 자라야하기 때문에 근육에 통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라면서 우리는 모두 성장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 시기와 형태, 기간은 제각각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성장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몸이 훌쩍 컸지만, 내면의 성장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모든 성장 역시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것이다. 너무 일찍 자라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몸만 훌쩍 크고 아직은 어린 아이같은 경우도 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발판을 두고 성장하고 있지만, 그 토대가 균질성을 지닌 건 아니다. 누구에게는 거칠고, 누구에게는 매끈한, 모두에게 제각각인 성장의 토대. 어떤 토대이냐에 따라 성장의 질감이 달라진다. 까칠할 수도, 부드러울 수도 있는 그 질감은 생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토대는 사막이었다. 손으로 집으면, 손가락 사이 틈으로 우수수수 떨어지던, 무수한 감정들이 가득한 토대. 탄탄하지 못했고, 바람이 불면 날아갔다. 한없이 가볍다가도 한없이 무거웠던,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던 지구의 일부분에서 나는 성장했다.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해 그 이후 부유하는 삶을 영위하기도 했다. 그리고 항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삶을 동경했다. 사춘기 때까지 1차 물리적인 성장통을 겪은 내가 2차 성장통을 겪은 시점은 20살이후부터였다. 친했지만 더는 가까워지지 않았던 동기들과 좋았지만 집중할 수 없었던 전공과목, 쓰고 싶지만 더는 쓰지 못했던 글들. 어중간한 포지션으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그 시기. 나의 몸과 마음이 따로 성장하고 있던, 몸의 성장은 멈췄는데 마음은 더 크고 싶어 안달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떠난 몇 번의 여행과 마지막 영혼을 불태웠던 인도까지. 여행 중 만난 지형적 토대는 다양했다. 바다였다가 흙길이었다가 사막이었다가 시골길이었다가 버스 안이었다가. 둥둥 떠다니던 영혼의 정착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바라나시 쿠미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처럼 나도 옥상에 누워 공상에 젖었다. 아침부터 꿈을 꾸고, 이성을 마비시켰는데 마치 시간을 잠시 스톱워치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그림이와 윤과 나는 바라나시 뱅갈리토라 골목에 만난 소들처럼 미친 게으름의 나날들을 즐겼다. 흙탕물이라는 토대 위에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림이와 한달 간의 여정을 마치고 콜카타로 가던 날, 이른 아침, 바라나시 곳곳을 다니며 안녕을 고했다. 언제 올지모르지만, 언젠간 만나겠지라며, 내 청춘의 8할의 토대를 다졌다. 


기차로 콜카타를 간다. 기차로 대충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걸린다. 그림이는 디저리두와 젬베, 베낭까지 짐이 너무 많았다. 같이 짐을 들고 인도 3등칸에 올라섰을 때 머리가 쭈볏했다. 다시 지옥의 시간이다. 기차 안에 온갖 삼라만상이 다 있다. 아니 어쩌면 아수라장 같다. 온갖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10시간 기차를 탔던 이후 두 번째 인도 기차이다. 악명 높은 기차를 타다보면, 환경과 도덕 규율에 대해 생각해본다. 창밖으로 쓰레기 버리는 건 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온갖 쓰레기들이 기차 안에 가득하다. 누구는 그 와중에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한다. 작은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담긴 짜이를 마시며 한 숨 돌린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자 사람들은 질서를 찾아간다. 2층 칸에 자리를 펴는 순간, 그나마 나는 천상계로 향한다. 지상의 근심과 혼란은 잠시 나와 격리된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좁은 자석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이렇게 밤이 지나면, 내일 아침이면 콜카타 하우라역에 도착한다. 다시 현상계로 돌아오는 시간, 현실을 직시하고 온 몸에 긴장을 세운다. 혼돈과 방황, 자유와 과도한 열정으로 점철된 성장통은 안나푸르나를 내려올 때 진정되기 시작했다. 


다시 새로운 여행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나의 성장통은 거기서 끝이 났다. 더 무모하게 나를 가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와 현재의 시간으로 자진해서 들어왔다. 마치 붓다가 세상을 수행하듯 돌아다닌 것처럼 나도 일탈이란 방법으로 거친 수행을 하고 온 것 같다. 꽤나 마음이 커져 들어왔지만, 되돌아온 현실 앞에선 다시 쪼글아들었다. 


낮게, 낮게, 낮은 보폭으로, 낮은 걸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일을 하고, 보험도 들고, 운동도 하고, 운전면허도 따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으례 거치는 과정을 스쳐 지금에 이르렀다. 결혼도, 두 아이도, 철저한 계획 하에 수행된 미션은 아니었다. 생의 한 과정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무모했지만 찬란했던 시간의 빛이 사그라들면서 나에겐 더 이상 성장통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그립다. 그리고 더 이상 그립지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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